두란노아버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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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감성충전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한 아이로 클까?
문제가 생기면 마주 보지 말고 시선을 겹쳐 같은 방향을 보세요. 부모는 대체 인력이 없습니다. 부모는 그 자리에 있어 줘야 할 사람이죠. 아이에게 부모는 나무예요. 더울 땐 와서 땀도 식히고 힘들 땐 기대기도 하고 바람 불면 뒤에 숨고, 튼튼하게 버텨주면 부모가 실수해도 아이는 금방 용서해요.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을 땐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한 아이로 클까’ 그것만 염두에 두세요.
오은영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아버지 칼럼

착각의 자유 그리고 가짜 뉴스
대개 자기중심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것들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
사회심리학에서 바넘 효과(Barnum Effect)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막연하고 일반적인 특성을 자신의 성격이라고 지적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특성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것일수록 강해지는데, 이처럼 착각에 의해 주관적으로 끌어다 붙이거나 정당화하는 경향을 말한다(NAVER 지식)."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통용되는 객관적 사실을 추려내어 두리뭉실하게 보따리를 만든 다음 그 보따리를 어느 특정인 앞에 풀어헤치면 그는 자신만의 특성인 양 착각한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성에 대한 오해를 비롯하여 사주, 관상, 점성술 등이 그렇다. 이 이론의 주인공인 P. T. Barnum은 19C 말 미국의 유명한 서커스단 흥행사로 크게 성공한 사람인데, 그는 오늘 대중심리학의 근간을 이룰만한 명제를 남겼다. "대중은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는다."

대중은 무엇을 믿고 싶어하는가? 위의 논리대로라면 '무엇을 착각하고 싶어하는가?'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자기중심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것들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 자신의 욕심과 아집이 객관적 시야를 흐리게 하여 분별력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로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대중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성은 이웃 주변 국가와의 전쟁에서 유다의 승리를 믿고 싶은데 반해,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승리의 착각을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월간지<신앙계>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내용은, 현대 사회 전반의 문화 현상들을 분석하여 이에 대해 오늘 우리의 신앙적 관점을 제시하는 영적 해석에 관한 것이 주종을 차지한다. 꽤 오래전 그 당시 내가 주로 다룬 내용들은 일반 현상에서 벗어나 초자연적인 신비한 사건들로 기독교 정신과 대치되거나 영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데이빗 카퍼필드의 마술세계를 비롯한 우주 공상 과학영화 그리고 심령술과 뉴에이지New-Age적인 것들이 많았다.

20년도 훌쩍 넘게 그 당시 SBS-TV가 일본의 유명한 염력(念力) 마술사인 Mr.마릭을 초청하여 그의 놀라운 마술세계를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마술은 염력을 이용하여 3미터 이상 떨어진 탁자 위의 유리관을 깨는 것이다. 그가 기(氣)를 모으고, 장풍을 하듯 손을 들어 얏! 하고 소리치자 그 유리관은 퍽~하며 깨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TV로 이것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Mr.마릭의 마술세계'란 주제로 내 나름의 영적 해석을 덧붙여 칼럼을 썼다. 그의 마술(특히 염력)에 대한 나의 결론은 '악한 영'이 그에게 능력을 부여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으로부터 한 1년 후쯤 SBS가 Mr.마릭을 다시 초청하여 또 한 번의 마술쇼를 방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송국 안의 모든 카메라를 총동원하여 그의 마술을 세밀한 각도로 촬영했다. 1년 전과 똑 같은 염력 마술이 시연되었는데, SBS-TV 카메라는 그것이 눈속임수인 트릭인 것을 밝혀냈다. (*이 점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SBS-TV 기획팀에게 경의를 표한다).

트릭은 Mr.마릭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영적 해석한 나에게도 있었다. 개뿔, 아무것도 모르면서 눈속임으로 사람을 속이는 마술사의 단순한 사기극일 뿐인 무대 쇼를 나는 영적 해석한답시고 거창하게 '악한 영'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떠들었던 1년 전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일반 대중은 Mr.마릭의 마술에 놀라워하고, 기독교 대중은 이 일에 대한 나의 영적 해석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와 나 모두 대중을 착각 속으로 빠뜨린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잠시 절필(絶筆)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자신의 영적 무지에 대한 체벌이었다. 사실 대중은 잠시 오락으로 보았던 그 프로그램에 대해 1년 동안 진실 여부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그것이 당장 내 삶에 큰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 한 착각이든, 진실이든 한순간의 '짜릿한 놀라움'을 즐기는 것으로 족할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적 지도자로서 책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내가 볼 수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던 그 '악한 영'에 의해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이때의 기분,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설명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나의 기막힌(?) '영적 해석'을 지켜보며 낄낄거렸을 그 조소 어린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머리끝이 쭈뼛해질 때가 많았다.

무서웠다. 나는 이때야말로 그 '악한 영'의 실체를 접하는 듯했다. 그의 지략은 분명 나보다 한 수 위였고, 내 힘만으로는 상대하기 벅찬 존재였음을 알았다. 나는 그 존재와 행위를 내 멋대로 말하기 전에, 겸손히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뭔가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관해 너무 쉽게 인간적 생각으로 이러쿵저러쿵 판단했다. 사실 성경의 예레미야 선지자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거짓 선지자들은 지금도 있어 대중들을 현혹의 길로 인도한다.
위 사진 배경은 아마 중국의 어느 한 도시 모퉁이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너무 우스워 한참을 배꼽 잡고 폴짝폴짝 뛰며 눈물을 찔끔거리도록 웃었다. 노숙자들 앞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원숭이의 모습이 너무도 우습고 재미있어 보였다. 흔히 집 안에서 기르는 애완견들이 그러한 착각의 실수를 범하듯 저 원숭이 역시 사람들 틈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사람만 보고 지내서 자신이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문제는 같은 사람이지만, 자기는 노숙자의 신세는 아닌지라 그들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뿔싸! 녀석은 지금 자신이 땅바닥에 그어진 원금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그 순간만은 잊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하나의 공통된 시선으로 무엇인가 바라보고 있다. 저들이 공통의 관심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젠장, 빌어먹을! 그것까지 내가 알아서 뭘 하겠나?
어제오늘 가짜 뉴스에 휘둘려 내 심사도 편치 않은데, 어차피 저들은 제각각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볼 테니까. 그것이 착각이든 진실이든 말이다. 그래서 우린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기만의 시대에 진리로 오신 예수가 필요하다. 예수만이 참된 길이요, 공의로운 판단자요, 실로 믿을만한 정보의 진실된 유입원이기 때문이다.
조규남 목사(일산아버지학교 8기 수료)

아버지 공부

김성묵 이사장과 함께 하는 아버지 공부 :
≪ 남자, 아버지가 되다 ≫
남자, 소통을 하다(2)
욕구가 충돌할 때
클로에 마다네스는 《관계, 유연하면 풀린다》에서 “모든 소중한 인간관계의 근본 목적은 자신의 욕구와 의미 있는 상대방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대개의 마찰은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여겨서라기보다 ‘인간의 욕구가 관계 속에서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다네스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여섯 가지 기본 욕구를 안정의 욕구, 변화에 대한 욕구, 존재 가치에 대한 욕구, 사랑과 교감의 욕구, 성장의 욕구, 공헌의 욕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의 네 가지 욕구, 안정, 변화, 존재 가치, 사랑과 교감의 욕구는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욕구이고, 나머지 두 가지 성장과 공헌의 욕구는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여섯 가지 욕구 중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면 상대방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네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면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만일 여섯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시킨다면 상대방은 당신과 영원한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인생 주기마다 바뀌는데, 예를 들면 연애와 신혼 기간에는 변화와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출산기와 양육기에 접어들면 안정과 사랑, 존중의 욕구가 강해지고, 나이가 들면서는 공헌의 욕구가 강해진다고 합니다.

한편,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욕구의 5단계를 주장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인 생리적 욕구를 채우면, 두 번째 단계인 안정의 욕구를 채우려 하고, 그러고 나면 세 번째 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 네 번째 단계인 자기 존중의 욕구, 다섯 번째 자아실현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채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월라드 할리는 《그 남자의 욕구, 그 여자의 갈망》에서 남편과 아내의 다섯 가지 욕구를 대비해서 설명했습니다. 남편이 성적 만족감, 여가 활동 함께하기, 매력적인 배우자, 가정에서의 안식,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아내는 애정 표현, 대화, 솔직함과 개방성, 경제적 부양, 가족에 대한 헌신의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케빈 리먼은 《부부, 심리학에게 길을 묻다》에서 남편은 첫째 존경받고 싶은 욕구, 둘째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 받고 싶은 욕구, 셋째 성적 충족감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는 반면, 아내는 첫째 애정에 대한 욕구, 둘째 숨김없이 솔직한 대화의 욕구, 셋째 가족에 대한 헌신의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내가, 내 남편이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욕구를 먼저 채워 줘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나의 욕구를 채워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성으로 인한 이기심, 즉 자기 중심성 때문에 먼저 자신의 것을 채우기 바랍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관계 갈등의 원인입니다.

마다네스는 “자신의 욕구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의 욕구를 알 때, 우리는 내가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줄 때 받는 상대방은 당혹스럽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쌓이면 실망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정말 가난했던 신혼 시절, 우리 부부의 꿈이자 욕구는 단 하나, 바로 ‘안정’이었습니다. 가구를 장만하고 궁극적으로는 ‘내 집 마련하는 것’이 우리 두 사람의 꿈이었고 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 5년쯤 지났을 때 자그마한 아파트를 하나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에 가려 있던 존중 받고 싶은 나의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아내의 욕구가 충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내는 일로 늦는 나에게 계속 가정에 신경 좀 쓰라고 다가왔지만, 나는 ‘내가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내 집도 마련하고 이제 살 만해졌잖아. 그런데 왜 일하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거야?’ 생각하며 더 일에 매달렸습니다. 사랑받고 싶고, 그 사랑을 확인하려고 다가오는 아내를 밀어내며 “나 좀 자유롭게 놔둬!”라는 말도 내뱉었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이혼 직전까지 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욕구의 차이를 서로 몰랐던 까닭입니다. 만약 내가 아내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채워 줬다면 아내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어서 자유롭고 싶은 나의 욕구를 채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구만 주장하다 깊은 갈등의 수렁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부부는 마주 앉아 서로의 욕구를 솔직히 이야기하고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배우자의 욕구를 이해하고 채워 줄 때, 부부는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발견

<관계 사람 배움 영향 용기 승리> 여섯 단어로 리더십을 발견해보자. 이들은 서로 나뉘지 않고 긴밀하게 연계하고 순환하면서 리더십의 본질에 집중하도록 한다.
[용기]
생색내지 않으면서 계속 희생할 용기가 있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리더가 있다. 그들은 남에게 일을 맡겨도 사사건건 간섭한다. 리더는 자신의 권위,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용기도 필요하다. 어도어 루스벨트는 “가장 훌륭한 경영자는 뛰어난 감각으로 훌륭한 인재를 뽑아서 경영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키고, 그들이 그 일을 하는 동안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리더십은 권한을 위임하는 용기를 통해 성장한다. “위대한 리더들은 권위를 버림으로써 권위를 얻는다(제임스 스톡데일).”

존 맥스웰은 ‘리더십의 핵심은 희생’이라면서 ‘리더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고, 리더로 머물려면 계속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색내지 않으면서 계속 희생할 용기가 있는가? 또한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나의 약점을 인정하고 직면할 용기가 있는가? 실상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하다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리더십이다.
[승리]
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저는 단 한 단어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어떤 공포가 있다고 하더라도, 승리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승리가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리더십은 결국 승리하는 사람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실패를 자양분 삼아 승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앤절라 더크위스의 《그릿GRIT》에 따르자면 “그들은 대단히 회복력이 강하고 근면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결단력이 있을 뿐아니라 나아갈 방향도 알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점은 열정과 결합된 끈기였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그릿(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이 있었다.”

땅끝까지 가는 아버지운동

2020년 12월 온라인 이벤트 행사
슬기로운 신앙생활2
비대면 시대, 두란노아버지학교 온라인 사역을 슬기롭게 준비하기 위한 이벤트에 모든 지부가 참여해주세요.
지부와 함께하는 슬기로운 신앙생활
우리 가족 최고의 찬양
◎ 참여 대상 : 아버지학교 가족 모두
◎ 진행 기간 : 2020년 12월 3일~31일
◎ 참여 방법 :
1) 유튜브 채널 [아버지학교TV] 에서 홍보영상 참고 바로가기 ▷
2) 우리 가족에게 가장 의미 있는 찬양을 골라서 함께 부르는 영상 촬영
- 주제 : 자유롭게 / 영상 시간 : 1절 or 90초
- 연출 : 자유롭게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
3) 촬영한 영상을 FS_행사 이벤트 밴드에 등록(밴드 가입 필수).
- 영상 등록 시, 간단히 가족을 소개하고, 찬양곡 선정 이유를 기재.
- 이벤트 행사 밴드 링크 주소 바로가기 ▷
‣ 주의사항: 영상 파일 용량이 크면 밴드에 업로드 시 제한될 수 있습니다.
4) 이벤트 행사 밴드에 올라온 다른 형제의 가족찬양을 댓글로 응원.
◎ 시상 & 심사기준 :
두란노아버지학교 홈페이지 게시글 참조 바로가기 ▷
강사스쿨(온라인) 안내
2020년 강사스쿨을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
두란노아버지학교 위촉 강사님은 꼭 참여해주시고, 관심 있는 분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주제
비대면(온라인)교육의 이해와 활용
강사
박재현 소장_인생관리시스템연구소 소장
비대면 교육 전문가 양성 강사(국토부, 기업체 다수)
일시
2020년 12월 19일(토) 오전 10시~12시
장소
온라인(ZOOM)
*링크 주소는 교육 당일 문자발송 안내
대상
두란노아버지학교 위촉 강사 및 봉사자
비용
무료
신청
링크 클릭하여 신청서 작성 바로가기 ▷

Fatherschool Family

두란노아버지학교 제천지부의
아낌없는 헌신과 지속적인 후원에 감사합니다.
김수동 지부장, 박병은 부지부장, 정성용 전 지부장, 김영호 총무
(왼쪽부터)
“땅끝까지 가는 아버지운동”을 위해 후원해주시는 교회, 아버지학교 지부, 기업체, 개인사업체를 위한 공간입니다.
홍보 혹은 특별행사, 세미나 등 광고가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02)2182-9171(홍보팀)
02)2182-9130(후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