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화두는 소통과 변화입니다. 소통과 변화 그것만이 이 나라 이 민족이 살 길입니다. 소통은 매우 어렵고, 변화는 두렵습니다. 변화든 소통이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익숙한 환경, 습관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거기엔 여러 어려움과 아픔이 따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과제입니다. 하지만 소통과 변화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내려놓고, 포기하고, 떠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감사’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 감사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소통과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도 소통의 문제입니다. 부부간 소통이 안 되고 부모 자식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에 필요한 세 가지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말합니다. 에토스는 인격과 신뢰감이며, 파토스는 공감과 정서적 호소이고, 로고스는 논리적 뒷받침입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에토스로 설득에 거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불어 파토스는 30퍼센트, 로고스는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주장합니다.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만남이며 정서적 공감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UCLA 교수인 앨버트 메러비안은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각적, 청각적, 언어적인 요소가 그것입니다. 시각적인 요소는 태도, 자세, 표정, 몸놀림 같은 것이고, 청각적인 요소는 소리의 대소, 고저, 음색을 의미하며 언어적 요소는 말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 시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55퍼센트이며 청각적 요소는 38퍼센트, 언어적 요소는 7퍼센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말하는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 말이 틀렸어? 틀린 데가 있으면 말해 봐!” 하고 따집니다. 사실 우리가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태도이고 어투 때문인데 말입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면, 먼저 비언어적인 요소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격적인 신뢰가 뒷받침되고 있는지, 정서적으로 서로 감정이 교류되고 있는지, 표정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건강한 의사소통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 주는 것입니다. 대화는 듣고 말하며 관계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옷이 지저분해져서 속상할 때 “괜찮아. 그냥 가도 돼. 신경도 쓰지마. 누가 당신 옷만 보냐?” 한다면 사려 깊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옷이 지저분해져서 정말 속상하겠네.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하고 말해야 사려 깊게 들은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방이 대접받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나의 감정과 바람을 정중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왜 이제 들어왔어? 전화도 안 하고?”라고 하기보다 “여보, 당신이 아무런 연락 없이 늦으니까 사고 난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어. 다음에는 늦으면 전화 한 통이라도 꼭 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늘 해결책을 이야기하지만, 아내는 공감을 원합니다. 아내가 “여보, 나 아파!”라고 하면 남편은 “약 먹었어? 병원에 가 봐”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해결이 아니라 공감을 원하므로 이런 때는 “많이 아파? 괜찮겠어? 병원에 같이 가볼까?”라고 말해야 하죠.
아내도 감정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남편이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남편에게 자기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감을 받을 수 있죠.
넷째는 부부간의 신뢰 관계를 잘 쌓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며 신뢰를 형성해 간다면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는 만져 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손을 꼭 잡는다든가 안아 주면 최고의 소통이 될 것입니다. 피부 접촉은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갈등이 오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곧 불통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소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들, 남편들이 먼저 손을 내밀기를 권면합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손을 내밀면 진정한 남편이 됩니다. 자녀와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손을 내밀면 존경받는 아버지, 진짜 아버지가 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소통의 참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십시오. 소통하면 변화됩니다. 소통이 되면 모두가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