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아버지학교

Sub Title

Weekly감성충전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던 아이가
길에 죽은 듯 누워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고양이 곁으로 냉큼 다가갔다.
나른한 고양이, 고개를 슬쩍 들어 아이를 확인한다.
아이는 고양이가 예쁘다. 쓰다듬고 싶다.
하지만 먼저 아빠를 부른다.
아빠는 그런 아들이 예쁘다.
"고양이는 목을 살살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대."
아이는 조심조심 고양이를 쓰다듬고,
고양이는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아이의 손길을 받는다.​
아빠는 뒤에서 둘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본다.

아버지 칼럼

노화 과정으로서의
PD
(Parkinson’s Disease)
© pixabay
고개 떨굴 필요는 없어. 사는 게 뭐 그런 거니까.
그러나 이제부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어영부영 살기에 벅찬 인생이니까.
얼마 전 도파민 TV 10회 방송에서 ‘누름돌’이란 수필로 상을 받은 C의 인터뷰 내용을 보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은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후회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PD(Parkinson’s Disease) 환자였음에도 당시에는 본인이나 가족마저 PD에 관한 지식이 없어 돌아가실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꾀병으로 알다가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그 후 아들인 자신이 PD 환자가 되고 나서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하며 더욱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다.

위 이야기는 PD를 앓고 있는 많은 환자 그리고 또 다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현대 의학상식이 널리 알려져 있고 사전 건강 예방을 위해 많은 검진과 진료 등 의료복지가 잘 되어 있는 오늘날 우리 상황과는 달리,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예전 어른들(C의 어머니와 같은) 시대에는 PD뿐만 아니라 요즘에야 흔한 질병으로 인식되는 암조차 그 실체를 모르는 상태로 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암을 비롯한 모든 병은 초기 진단이 중요하다. 그러나 초기 진단으로 병의 실체를 알았다고 해서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C의 어머니는 본인이나 가족이 PD 환자였음을 모른 채 단순히 노화의 진행으로 죽음을 맞은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사(自然死)의 형태이다. 노화 과정에서 자연사는 우리가 덜 슬퍼하게 된다. 말 그대로 자신의 수명에 따라 살 만큼 살다 때가 되어 죽는 것이기에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덜하다. 가족이나 이웃이 고인(故人)에게 생존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회한이 남을 뿐 그 죽음 자체에는 큰 미련이 없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것은 육체적인 실체로 느껴지는 ‘고통’보다 억눌린 정신적 ‘괴로움’이다. PD 환자는 초기 증상에 따라 검진 후 확진 판정을 받았던 순간을 악몽처럼 떠올린다. 그 순간은 초기 단계의 미약한 증상이 나타났을 뿐, 실제 육체적인 극심한 신체 고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은 너무 심하여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육체적 실체로 다가오는 고통보다 심적으로 가슴을 무너지게 하는 정신적 괴로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 자체보다 그 파장으로 겪게 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고 절망한다.

사실 일반적 PD 증상인 진전(떨림)이나 서동(느린 동작) 그리고 경직(굳어짐)이나 보행장애 또는 무표정한 얼굴 등은 노화 과정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현대 의학의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그냥 모두 늙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또 그렇게 늙어가다 죽는가 보다 했다. 노화 과정의 불편과 고통은 있지만, 그렇다고 내 신세가 서럽다거나 비참하다며 낙심하지도 않았다. 주위에서도 그런 증상들을 그러려니 하고 특별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늙어 힘이 없어지니 뭘 잡으려 할 때 부들부들 손이 떨리고, 자연 동작도 느려진다. 그리고 나이가 드니 뼈마디가 쑤시고 관절이 아파서 모든 팔 동작이 뻣뻣해진다. 뼈들도 오래되니 기름기가 말라 삐거덕거리고 예전처럼 내 맘과 같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쓴 만큼, 오래된 만큼 굳어진 것은 당연하다. 아무래도 힘이 없고 먹는 것도 소화불량으로 부실하니 하체가 부들부들 떨리며 후들거려 휘청거릴 수밖에 없고, 비틀거리다가 넘어져 깨질 때가 많다.

무표정한 얼굴이라고? 그럼 어떤 표정을 지어야겠나? 이제 인생 살 만큼 살고 웬만한 것은 맛을 다 보았고 더는 경험할 것도 없는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환히 밝은 표정을 짓겠나? 살 만큼 살았으니 별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에게서 생동미 넘치는 얼굴이란 천부당만부당한 바람이 아니겠는가. 또 젊은이들이 끼워주지도 않고 뒷방으로 밀어내 홀대하는 세상에 뭐가 좋다고 희희낙락한 표정을 짓겠는가.

그러나 위에 열거한 모든 예후는 PD 증상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노화의 일반적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의 일종이라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노화 현상들에 대해 비관적이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PD라는 부정적 틀 안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기보다 넓은 틀에서 노화의 과정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작은 틀로서의 PD를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수많은 사람 중 그야말로 나만 재수 없게 PD에 걸린 것 같아서 화도 나고 억울할 수도 있지만, 노화는 인간 모두에게 아니 지구상 모든 생물에게 주어지는 숙명적 생태 고리이기 때문에 억울할 것도 그리고 크게 슬퍼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PD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의사가 낙담한 나의 등 뒤에서 해준 말이 있다. “환자분, 파킨슨병으로 죽진 않아요~”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이겠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이 병으로 죽진 않는다고? 그럼 됐지 뭐. 좀 불편하고 고통스럽겠지만 어쩌겠어? 한 번 견뎌보는 거지 뭐. 지금까지도 사지 멀쩡하게 잘 살아왔는데 뭐 대단한 걸 더 바라겠는가! 고개 떨굴 필요는 없어. 사는 게 뭐 그런 거니까. 그러나 이제부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어영부영 살기에 벅찬 인생이니까. 내가 아프니까 삶이 더욱 귀하게 느껴지고 지금 이렇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감사한 일이니까!
조규남 목사(일산아버지학교 8기 수료)
‣ 위 칼럼은 필자인 조규남 목사와 (사)대한파킨슨병협회 동의 아래, KPDA(대한파킨슨병협회) 소식지 <이른아침 까치소리> 4호(2020년 10월)에 실린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아버지 공부

김성묵 이사장과 함께 하는 아버지 공부 :
≪ 남자, 아버지가 되다 ≫
남자, 소통을 하다(1)
아버지가 살 길, 소통과 변화
이 시대의 화두는 소통과 변화입니다. 소통과 변화 그것만이 이 나라 이 민족이 살 길입니다. 소통은 매우 어렵고, 변화는 두렵습니다. 변화든 소통이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익숙한 환경, 습관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거기엔 여러 어려움과 아픔이 따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과제입니다. 하지만 소통과 변화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내려놓고, 포기하고, 떠날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감사’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에 감사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소통과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도 소통의 문제입니다. 부부간 소통이 안 되고 부모 자식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에 필요한 세 가지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말합니다. 에토스는 인격과 신뢰감이며, 파토스는 공감과 정서적 호소이고, 로고스는 논리적 뒷받침입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에토스로 설득에 거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불어 파토스는 30퍼센트, 로고스는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주장합니다.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만남이며 정서적 공감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UCLA 교수인 앨버트 메러비안은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각적, 청각적, 언어적인 요소가 그것입니다. 시각적인 요소는 태도, 자세, 표정, 몸놀림 같은 것이고, 청각적인 요소는 소리의 대소, 고저, 음색을 의미하며 언어적 요소는 말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 시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55퍼센트이며 청각적 요소는 38퍼센트, 언어적 요소는 7퍼센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말하는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 말이 틀렸어? 틀린 데가 있으면 말해 봐!” 하고 따집니다. 사실 우리가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태도이고 어투 때문인데 말입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면, 먼저 비언어적인 요소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격적인 신뢰가 뒷받침되고 있는지, 정서적으로 서로 감정이 교류되고 있는지, 표정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건강한 의사소통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 주는 것입니다. 대화는 듣고 말하며 관계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옷이 지저분해져서 속상할 때 “괜찮아. 그냥 가도 돼. 신경도 쓰지마. 누가 당신 옷만 보냐?” 한다면 사려 깊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옷이 지저분해져서 정말 속상하겠네.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하고 말해야 사려 깊게 들은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방이 대접받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나의 감정과 바람을 정중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왜 이제 들어왔어? 전화도 안 하고?”라고 하기보다 “여보, 당신이 아무런 연락 없이 늦으니까 사고 난 줄 알고 걱정을 많이 했어. 다음에는 늦으면 전화 한 통이라도 꼭 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늘 해결책을 이야기하지만, 아내는 공감을 원합니다. 아내가 “여보, 나 아파!”라고 하면 남편은 “약 먹었어? 병원에 가 봐”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해결이 아니라 공감을 원하므로 이런 때는 “많이 아파? 괜찮겠어? 병원에 같이 가볼까?”라고 말해야 하죠.

아내도 감정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남편이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불평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남편에게 자기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감을 받을 수 있죠.

넷째는 부부간의 신뢰 관계를 잘 쌓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며 신뢰를 형성해 간다면 의사소통은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는 만져 줌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손을 꼭 잡는다든가 안아 주면 최고의 소통이 될 것입니다. 피부 접촉은 가장 강력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갈등이 오면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곧 불통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소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들, 남편들이 먼저 손을 내밀기를 권면합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손을 내밀면 진정한 남편이 됩니다. 자녀와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손을 내밀면 존경받는 아버지, 진짜 아버지가 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소통의 참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십시오. 소통하면 변화됩니다. 소통이 되면 모두가 살아납니다.

행복특강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욕망이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욕망에 대한 부정적 인상 때문인지, 부모에 대한 기대치 때문인지 ‘부모의 욕망’을 대놓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호선 교수는 “자녀가 부모의 욕망을 읽도록 해주는 계기를 부모가 마련해주는 것이 매우 큰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결핍과 부족으로 인해 좌절한 아버지들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
이호선  |  숭실사이버대학교 한국노인상담센터 교수
자녀도 아버지가 한 인간으로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안의 어두운 부분, 도움을 청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했던 순간들을 기꺼이 털어놓는 자리가 진짜 고백이다. 아내와 자녀에게 “오늘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어떻게 하면 좋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열심히 사는데 솔직히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너희를 사랑하지만, 나도 엄청 사랑받고 싶다” “나한테 물개 박수 좀 쳐주라” “나도 예뻐해 주라, 안아주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약한 인간인데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다. 약한 자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이 사랑이며, 이것이 진정한 고백의 신화다.
아버지의 일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낱낱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일을 겪는지 사실과 감정을 해석하여 전달해야 한다. 인간은 징징대야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다. 아버지도 징징거릴 수 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공감하는 일이 중요하다. 단, 아이처럼 징징대지 말고 이야기, 감정, 해석으로 표현하라.

부모의 결핍과 약함을 읽을 줄 아는 아이가 세상을 끌어안는 사람이 된다. 효자, 효녀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모와 정서적으로 꾸준히 접촉해왔기에 부모에게 잘한다. 아버지의 눈물, 뒷그림자, 한숨을 알아야 연민이 생기고 아버지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마음에 새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결핍된 부분을 보면 채워주고 싶어 한다. 당신의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짐은 한계가 있다. 자기의 수준을 알고, 어디까지 아버지가 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라. 관계는 모두 해석이지 사실 확인이 아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아버지 결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머지 자리를 ‘너희와 함께 채우고 싶다는 청유’가 핵심이다.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노랫말처럼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 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라고 아이들을 아버지 삶의 자리로 초청하는 일이다. 나의 결핍을 털어놓을 때, 아이들이 흘려듣는 듯해도 가끔 답을 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의 우문에 현답을 줄 때가 있다.

결핍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박사도 천재도 결핍이 있다. 다만 결핍이 관계로 이어질 것인지 말 것인지는 고백에 달려 있다. 고백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Fatherschool Family

두란노아버지학교 후원가족의 건강한 성장과 부흥을 기원합니다.
“땅끝까지 가는 아버지운동”을 위해 후원해주시는 교회, 기업체, 개인사업체를 위한 공간입니다.
홍보 혹은 특별행사, 세미나 등 광고가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02)2182-9171(홍보팀)
02)2182-9130(후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