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성격 차이 때문에 힘들 수 있죠. 그러나 과연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결혼을 결정할 때, 반드시 보는 것이 있습니다. 왜 저 배우자를 선택했느냐 물으면 대부분 “성격이 좋아요” “성격이 저랑 잘 맞아요”라고 하죠. 남녀를 불문하고 ‘성격’은 배우자 선정 기준에 상당히 중요한 영역을 차지합니다.
실제로 강의에 참석한 부부들에게 “연애할 때 배우자와 성격 때문에 다툰 적이 있었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우물쭈물하다가 “없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요? 배우자와 성격이 잘 맞는 것 같나요?” 물으면 망설임 없이 “안 맞아요!”라고 대답하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성격이 잘 맞고 좋았던 배우자가 왜 단 몇 년 만에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맞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의 성격이 순식간에 돌변했을까요? 과연 ‘성격 차이 때문에 이혼한다’는 말이 맞을까요?
놀랍게도 내 배우자의 성격은 연애할 때나 결혼하고 나서나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람 성격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왜 연애할 때는 성격 차이가 문제 되지 않았을까요? 그만큼 둘 사이가 행복했다는 뜻입니다. 왜 행복했을까요? 서로 상대를 배려하고 맞춰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좋았다는 얘기입니다. 즉 이혼 사유가 ‘성격 차이’라는 것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결혼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성격이 아니라 바로 ‘관계’입니다.
레이먼드 조가 쓴 <관계의 힘>이라는 책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자네 등 뒤에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져 있네. 그 끈들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네. 정말 그게 전부야.” “무슨 거창한 끈이기에 인생의 전부라고 단언하십니까?” “관계”
성경에는 황금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관계에 대한 명언입니다. 인간은 섬처럼 혼자 살 수 없는 존재, 즉 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도 행복도 관계에 달려 있으며,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도 관계입니다.
관계를 맺는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접근과 반응’입니다. 지속적인 접근과 반응을 통해 정서적 교류가 일어나며, 정서적 교류의 질이 관계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의 질이 결국 삶의 질을 결정하죠.
관계가 깨졌다는 것은 이 접근과 반응을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접근과 반응 중 하나라도 잘하지 않으면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접근과 반응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접근과 반응 사이에는 ‘감정’이 있습니다. 접근하는 태도에 따라 감정이 일어나죠. 사람은 보통 그 감정에 따라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이 상하면 관계가 깨지고, 관계가 깨지면 감정은 더욱 상하고 맙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감정이나 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아내의 감정이 좋을 때는 남편이 밥을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예뻐 보여서 이거 더 줄까? 저거 더 줄까? 하지만, 감정이 상했을 때는 ‘식충이 같이 밥만 먹나?’ 하며 꼴도 보기 싫습니다. 남편의 감정이 좋을 때는 집안 정돈이 안 되어도 ‘아내가 몹시 바빴던 모양이네, 힘들었구나’ 생각해서 “이거 내가 다 치울 게. 당신은 좀 쉬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상했을 때는 “하루종일 뭐 한 거야? 도대체 살림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라며 화가 나서 아내 얼굴도 보기 싫어집니다. 감정이 악화되면 관계는 더욱 경직되고, 접근과 반응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갈등이나 불화가 심해지면 대개 두 가지 현상만 남습니다. 한쪽은 접근하고 한쪽은 피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좋을 때는 두 사람의 접근과 반응이 아주 자유롭습니다. 여자가 “오빠~ 나 아파” 하면 남자는 “많이 안 좋아? 얼굴색이 안 좋네. 내가 만져줄까? 자기 배는 아픈 배, 내 손은 약손” 하며 깊은 관심을 갖고 반응을 합니다.
그러나 관계가 깨지면 ‘또 뭘 먹고 저러는 거야?’ 하면서 “약 먹어!” 하고는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그러면 관계는 더 소원해지고 감정은 더 나빠지겠죠.
사랑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성격 차이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감정도 좋고, 관계도 좋으니 누구 하나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죠. 다시 말하면 접근과 반응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결혼 후 갈등이 생기면서 관계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한 사람은 소리를 지르며 접근하고, 한 사람은 침묵하며 피하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당신이 그러니까 내가 이럴 수밖에 없잖아’ 하며 상대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과연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애당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과 반응의 패턴 즉 관계의 패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이 몹시 상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격 차이 때문에 못 살겠다는 이야기는 핑계일 수 있습니다.
잠언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접근과 반응 태도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격 차이라고 핑계를 대기 전에, 나의 관계를 맺는 페턴에 무슨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봐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잡으면 됩니다. 접근과 반응의 태도, 그것이 영성의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