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아버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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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감성충전

ⓒ김문영
인간의 마음은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부분,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 남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부분,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부분으로 나뉜다.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치부를 감추려고만 하고, 남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단점을 계속 부정하며 살다 보면 인생이 꼬이게 마련이다. 반면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을 용기 내어 남에게 드러내고, 남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부분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성숙해진다.
최명기 《걱정도 습관이다》

아빠맘쏙

꿈이 없는 아이
Q. 내년이면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들 때문에 걱정입니다. 특별히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없다는 것입니다.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아이를 잘못 키웠나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적극성도 부족하고 매사 야무지지 못한 아들이 한심해 보여 울컥 화가 나기도 합니다. 요즘 애들처럼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고 설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되든 안 되든 인생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아예 의욕조차 없어 보여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야단치면 기죽을까 봐 뭐라 하기도 그렇고, 아빠로서 현명하게 가르치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김경신
요즘엔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빡세게 준비해도 될까 말까 한다는데, 지금이라도 진로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대안학교를 찾아봐야 하나? 별의별 궁리를 해보지만, 역부족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저 게임만 좋아하고,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아들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이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박성덕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소장
곁에 있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A. 아들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아들이 초등학생임을 감안하면 뚜렷한 인생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죠.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적극성이 부족할 수도 있고, 진로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아들의 사연을 볼 때 두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춘기에는 대부분 의욕이 없고, 그 시기 많은 자녀가 반항적이고 게임에 빠지거나 부모의 말을 잘 따르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가르치려 하면 무작정 거부할 수 있습니다.
저도 두 아들이 있는데, 사춘기 때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고(흔히 꼬라지 부린다고 하나요?) 자기 세계에 빠져서 의욕도 없고, 아무런 목표가 없어 보였으니까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고민을 풀어보고자 읽었던 사춘기에 대한 책의 한 구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인생을 살면서 두 번의 위기가 오는데 첫 번째는 당신 자신이 사춘기일 때이고, 두 번째는 아들 딸이 사춘기일 때라는 사실입니다.”
사춘기 자녀에 대한 고민이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의 공통된 문제임을 깨닫고,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기다려주어야 할 때인데, 오히려 개입을 많이 해서 그르칠 뻔 했습니다.
두 번째 생각할 부분은 아들이 지금 게임에 빠져있고 무기력하다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 있고, 가족 관계에서도 고립감을 느낄 것입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비난하지 않고 다가와 주기를 바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많이 아버지가 필요한 때일 수 있습니다.
아들의 속마음을 들으려면 지금 아들이 하고 있는 행동, 생각, 반응을 판단하기 보다는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으려는 마음! 어떤 얘기를 해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마음! 아들이 의욕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립감에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아주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애착이론을 만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존 볼비 박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훌륭한 양육자는 유머가 뛰어나거나 학식이 풍부하거나 지위가 있을 필요가 없다. 단지 자녀들과 함께 있어주면 된다!” 아들의 외롭고 우울하고 의욕이 없고 게임에 매달리는 그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있어 주어야 비로소 아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공부

김성묵 이사장과 함께 하는 아버지 공부 :
≪ 남자, 아버지가 되다 ≫
남자, 소통을 하다/ 행간에 숨어 있는 마음을 보세요⑧
행간에 숨어 있는 마음을 보세요
한 부부와 가볍게 상담을 하는 가운데 최근에 다퉜던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아내 분이 대뜸 “이 사람은 내가 그렇게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해도 한 번도 데리고 간 적이 없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분은 “아니, 언제 당신이 초밥을 먹고 싶다고 했어?”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아내가 “여보, 가까운 곳에 초밥집이 생겼대” 해서 남편이 “그래? 요즘 장사가 어렵다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네” 했다는 겁니다. 며칠 후, 다시 아내가 “여보, 오늘 그 초밥집 앞을 지나는데 제법 차가 많던데요?” 하기에 “장사가 잘되나 보네. 잘됐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내가 “여보, 내 친구 정민이 엄마가 그 초밥집 가서 먹어 봤는데 맛이 아주 괜찮대” 해서 남편이 “그러니까 장사가 잘되는구나. 주방장이 괜찮은가 봐” 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말을 마음속에 담아 놓고 여자는 말 속에 마음을 담아 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참가자들에게 아내한테 편지를 써 오라는 숙제를 내주면, 한두 줄로 아주 짧게 써 오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당신 내 마음 알지? 나도 당신 마음 알아” 참 기가 막힌 편지입니다.

달 밝은 밤에 아내가 “여보, 참 달이 밝지?” 하고 물으면 대부분 남편은 “오늘이 보름이야” 하거나 “벌써 보름이 다가오는군” 하고 말합니다. 아내의 ‘달이 밝다’는 말은 ‘당신과 걷고 싶다’거나 ‘당신과 커피 한잔하고 싶다’는 뜻인데, 남편은 그 마음을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한 번은 어느 30대 후반의 부부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요즘은 도대체 5분 이상을 대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사연이 이랬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이 아무래도 권태기에 들어간 것 같아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나 없이도 살 수 있어? 솔직히 말해 봐!” 그러자 남편이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음, 뭐 살기야 살겠지” 하더랍니다. 그러자 바로 아내가 폭격을 가했습니다.

“요즘 행동이 이상하더라니, 이젠 나를 사랑하지 않아? 왜, 싫증났어?” 남편은 어이가 없었죠. “아니, 내가 언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 왜 내가 당신한테 싫증이 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 실랑이하다가 남편이 입을 다물자 아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내가 질문 하나 더 할 테니까 솔직히 말해 봐! 당신 엄마하고 나하고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건질 거야?” 마치 어른들이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듯이 말입니다.

남편은 이렇게 묻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당신은 그걸 질문이라고 해? 우리 엄마는 지금 미국에 계시고, 우린 한국에 사는데 어떻게 같이 물에 빠지냐?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TV나 보자”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답니다.

사실 아내의 질문은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지, 실제 상황으로 상상해보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은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며 사실 분석에 들어갔고, 최선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리저리 궁리합니다. 그러곤 한다는 말이 “당신은 수영 잘하지? 근데 어머니는 수영을 전혀 못해. 그러니까 먼저 어머니를 건지고 당신을 건질 게”라며 나름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대답이 합리적일까요?

나도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 있습니다. 그때 한참 고민하다가 “우리 다같이 죽고 말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의 어이없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또, 아내가 집안일을 남편한테 도와달라고 했을 때, 남편이 구시렁거리거나 꾸물대면 아내는 화가 나서 이렇게 소리를 지르죠. “당신 한 번이라도 집안일 거든 적 있어?” 사실 이 말은 “나 혼자는 힘드니까 함께해요. 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한 번’이라는 말에 감정이 상해서 이렇게 받아칩니다. “내가 한 번도 안 했다고? 지난달에 한 건 뭔데?”

자, 이렇게 되면 문제의 본질은 간데없고, 한 번 했냐 두 번 했냐를 따지느라 기나긴 다툼에 빠져들고 맙니다. 아내가 힘들어서 “우리 이혼해!” 하면 바로 이혼을 준비하는 남편도 있다지요. 아내와 남편의 갈등은 머리와 가슴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는 불과 30센티미터 정도인데, 그 차이가 부부 소통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정말 부부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가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반응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내들은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고 정중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초밥이 먹고 싶으면 “여보, 우리 동네에 초밥집이 생겼네. 언제 시간 되면 당신하고 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달이 밝지?”라고만 하지 말고 “여보, 달이 참 밝네요. 옛날에 당신하고 걷던 생각이 나는데, 오늘 시간 어때요?”라고 부드럽게 말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하는 말 속에 숨은 감정을 읽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머니와 당신이 물에 빠졌다고? 당연히 당신을 먼저 건져야지! 난 당신이 제일 소중해”하고 아내가 진짜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아내의 말을 들을 때는 문제지를 푸는 수험생처럼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들이여 행간에 숨은 아내의 마음을 읽는 훈련을 쉬지 말고 하십시오!
※ 유튜브 채널 <어바웃 굿파더: About Good Father> 많이 구독해주세요!

행복특강

새로운 무대에 선 아버지
이호선  |  숭실사이버대학교 한국노인상담센터 교수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영국의 대문호의 희곡 『햄릿』의 유명한 대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해석된 이 문장을 쓴 극작가는 셰익스피어일까? 쉑스피어일까? 영국의 유명 극작가의 이름을 두고 학계에서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이 덧없는 논쟁은 학회 점심 종소리와 함께 없었던 듯 사라졌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냐만, 영국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름이 어떻게 발음되느냐가 잠깐이지만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우리도 ‘아버지’ ‘아부지’ ‘아빠’ ‘아배’ ‘아바지’ ‘아범’ 등 같은 사람을 다양하게 부르곤 한다. 이름이 이렇게 다양하다면 역할도 그만큼 다양하지 않을까? 하나의 이름에는 하나의 역할이라는 연극의 일반적인 기준을 본다면,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과거에야 내외가 있어, 어머니는 집‘안’일을 아버지는 집‘밖’일을 담당했다. 집안의 ‘소사(小事)’는 어머니가, 그리고 ‘대사(大事)’는 아버지 몫이었다. 역할이 분명했기에 그만큼 책임도 분명했다. 아이를 교육하고 집안을 정돈하는 일은 어머니의 몫으로, 가문의 향방을 결정하고 집안의 수입으로 식솔을 먹여 살리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역할이 분명하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발달심리학자들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했고, 이는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하는데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그러니 역할 혼미는 분명 ‘위기’이고 ‘미성숙’이고 ‘불안정’의 대명사였다.

요즘에는 내외가 없어, 어머니도 집‘밖’일을 하고 아버지도 집‘안’일을 한다. 집단의 ‘소사(小事)’나 ‘대사(大事)’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 공동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어머니가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일도 흔한 일이 되어 버렸고, 아버지가 퇴근과 동시에 청소기를 밀고 마루로 진입하여 식기세척기 작동 버튼을 누르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의 결정과 책임이 줄어들고, 어머니의 돌봄과 책임은 감소하게 되었다는 어르신들의 잔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한다. 아버지는 권위를 잃었고, 어머니는 가정을 방기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듣고 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어떻게 아버지가 설거지 그릇에 손을 담그고, 어떻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콩나물 심부름을 시키는가 말이다. 어르신들 표현이라면 그야말로 ‘말세(末世)’다!

사실 이 ‘말세(末世)’ 라는 말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있었던 일이었다. 역사 기록과 더불어 말세였다. 그런데도 불안과 염려 속에서 세상을 비교적 안전하게 유지하고자 인류는 정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니 어쩌면 이 세상은 ‘불안과 염려’라는 동력으로 ‘문명’이라는 아스팔트를 깔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말세’ 곧 ‘위기’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역할 변동이 있었던 때이다. 행주치마만 입고 있던 여성들이 남편이 사망하거나 전쟁이 일어나면 자식을 위해 남성의 역할을 기꺼이 떠맡고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대신해 농사를 짓고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해내면서 완벽한 역할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물론 그 위기가 지나면 다시 부엌으로 돌아오곤 했다.

현상으로만 보자면 지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 혼미는 과거에는 위기에만 나타나는 징후였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이 현상을 ‘발전’이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권위를 잃는 것이 아니고 책임을 나누는 것이며, 어머니가 가정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 모델이 된다. ‘위기’를 ‘발전’으로 보는 이러한 ‘읽기(reading)’는 누군가에게는 셰익스피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쉑스피어와 같은 논쟁의 주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발전은 ‘불평’이 아니라 ‘선택’을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발전’은 언제든 ‘선택’의 문제였다.

역할 이동이 일어나면서 요즘 몇몇 아버지들은 잃어버린 권위와 남겨진 가사를 ‘위기’로 고민한다. 그러나 책임과 가사를 나누는 일은 ‘발전’임에 틀림없다. 던져진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이고, 이제 새로운 무대에서 아버지는 새로운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들이 이 새로운 시작에 앞서 한 번쯤은 말해볼 수 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즉 “역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와 자녀들은 이리 말할 것이다. “역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셰익스피어 이름 논쟁이 점심 종과 함께 사라졌듯, 이제 책임과 가사를 나눌 것이냐는 아버지 역할도 먼저 가서 청소해놓으라는 아내의 카톡 메시지와 함께 사실상 끝났다. 먼저 가서 청소를 안 해놓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미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면 이건 분명 선택이다. 그 순간 위기는 끝나고 발전이 시작된다. 우리는 발전하고 있지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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