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및 환영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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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길을 찾아서

    이봉우

    자식들이 다 성장해서 가정을 이루어 열심히 살고, 부모님도 시골에서 건강하게 계셔서 특별히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은퇴할 후 아내와 같이 미래를 설계 하며 또래에 비해 더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식은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여행 다니고 열심히 섬기며 살았습니다. 시골에 계신 아버님만 생각하고 내가 아버지라는 생각은 잊고 살았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생활비 좀 보태고, 하루에 한 번씩 전화로 안부 여쭙고, 명절이나 기념일에 찾아뵙거나 간혹 병원 모시고 가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내 할 도리를 다하니 잘 살고 있는 줄 알고, 아버지로서 올바른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궁핍하지고 않았으며,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가족들이 잦은 술자리를 걱정하면 ‘일 때문에 나도 피하고 싶지만 어쩔수 없었다’ 고 핑계로 일관했습니다. 가정에서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지 진정 어린 대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삶은 가장으로만 존재했지 아버지로서의 삶은 없었습니다. 아버지 학교 내내 자신이 아버지 노릇을 잘 한다고 생각한 것이 큰 착각이라고 알게 해준 귀한 시간이였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수강신청하고, 걱정과 기대감으로 낯선 분들과 인사 나눈 첫날, 왠지 5주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며 나의 아버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청각장애로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는 피하시는데 우리 부부의 바람으로 모든 불편을 뒤로 하시고 기꺼이 교회에 다니시고 세례 받으셨습니다. 그것을 그저 복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자식을 배려한 아버지의 용기있는 결단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하며 존경합니다’ 말씀을 드립니다.

    안아주려고 하면 뿌리치고, 기도하자고 하면 멀리 달아나는 자식들을 이해 못하고 원망했는데, 그만큼 아이들이 나와 친근하지 못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아이들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축복 기도 하며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편지 쓰는 시간에 내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쓸 때는 어색했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를 받고 고마워할 때 보람과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에게는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편지로 다 전달하기엔 부족했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특히 아내와 자녀에게 ‘사랑스러운 20가지 이유’를 쓸 때 아내와 아이들 모두 20가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자랑거리가 많음을 안 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제대로 알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진작에 이런 반성을 했으면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았을 텐데 아쉬움이 컸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부분이 잘 못 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바른 길을 찾은 것 같아 지금은 기쁘고 위안이 됩니다. 이제 삶의 지표를 새롭게 찾은 만큼 저 자신을 좀 더 귀하게 여기고 대접받는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봉우 님은 늦었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바로 알고 실천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자고 각오를 다지며 다 큰 자식들이라 다소 어색하더라도 안아주고 축복 기도하는 일을 꼭 지키겠다고 하십니다.
  • 오롯이 부부가 되는 순간

    황숙영

    부부학교, 근사했지만 뭔지 모를 부담이 와서 선뜻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성격상 주변에서 세 번이나 강하게 추천하는 바람에 첫 발걸음을 떼었다.
    4주라는 기간은 견딜 만한데 5시간의 강의는 다소 부담스러웠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유난히 낯을 가리는 우리 두 딸이었다. 5시간 동안 엄마와 떨어져서 잘 버틸 수 있을까? 봐주시는 선생님이 계셔도 울며불며 엄마를 찾지 않을까? 7살 5살 아직 어리기만 한데 긴 시간 동안 잘 지낼까? 온갖 염려와 불안이 짜증과 원망으로 바뀌면서, 첫 주는 무슨 내용을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고 온통 아이들 생각에 잠겨 있었다.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3층 유아실로 올라가 아이들을 부르니 벌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두 딸이 달려왔다. 그런데 아이 입에서 나온 첫 말이 “여기 또 와도 돼요?”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부부학교 온 것은 우연이 아니구나! ‘뭔가가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 우리 부부가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이나 싶었다.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여서 더운 의심스럽고 돈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강의 들을 떄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첫날 서로를 바라보며 눈 맞춤을 시키는데 10년을 같이 산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눈을 겨우 맞췄을 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여정이 시작되었다.

    과제로 오랜만에 둘이 앉아서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는데, 대화의 주제가 아이들이나 경제 문제가 아닌 오롯이 부부가 될 수 있다는 점과 상대한테만 집중하며 이야기 하는 것이 놀라웠다. 염원하던 가정예배를 드리게 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니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아이들 없이 우리 둘만 ‘데이트’라는 명목으로 밖에서 만나 점심도 할 수 있었다.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묘한 기분이었다. 그냥 밥만 먹고 나왔는데도 연애할 떄처럼 설렘이 느껴졌다. 우리 부부 사이에 분명 놀라운 변화였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시간조차 사치이며 불필요하다고 늘 생략하며 지냈다. 불만이 없었지만 그동안 나도 모르게 허전했나 보다. 행복한 부부였지만 ‘뜨거운 부부’는 아니었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어색하거나 창피하단 이유로 애정표현을 하는 남편을 밀어냈는데 외면했던 감정이 다름아닌 우리 부부에게 있어야 할 ‘뜨거운 사랑’이었다. 사랑은 표현하고 알아봐주는 것임을 꺠달았고 남편도 나를 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기면서 대화가 늘기 시작했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들 다 키우면 졸혼이다’ 말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바람이야 여자에게는 남편밖에 없지” 하신 엄마의 말씀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부부로 사는 것은 축복이다. 사랑 때문에 결혼했으니 사랑이 식으면 이혼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의리로 살아야지’ 하고 이혼도 쉽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불행하고 어리석은 결말일지 부부학교를 통해 깨달았다.

    부부학교는 결혼의 의미와 유익함을 재점검해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하는 안일한 마음을 끄집어내 정확하게 우리 부부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자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꺠달아 더 없이 기쁘다.

    황숙영 님은 두 딸을 기르며 지쳐있을 때 부부학교에서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하며 소중한 존재로 여겨져서 생복했다고 합니다. 불같은 남편을 더 이해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니 사랑이 더 깊어지고 감사할 거리가 많아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