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아버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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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감성충전

이탈리아 피엔차의 발도르차 평원
2019년
ⓒ조혜경
희망의 표징
하나님,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 분노와 환멸이 우리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려 해도 저 덧거친 세상을 떠돌고 있는 마음은 좀처럼 고요해지질 않습니다. 타자의 고통을 대놓고 조롱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던 주님의 마음이 느꺼워져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질서 있게 창조하신 세상이 점점 혼돈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무력감이 흉용한 물결처럼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주님, 그러나 절망을 향해 너무 빨리 돌아서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고난을 짊어진 이들,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이들을 보호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에서 희망의 표징을 보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검질긴 신앙의 승리자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김기석 《아슬아슬한 희망》

7월 메시지

나는 영웅이고 싶습니다
© pixabay
새벽을 깨우는 수탉처럼 그렇게 동터오는 붉은 새벽하늘을 향해
길게 목을 빼고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오늘도 영화 한 편을 뚝딱했습니다. 전쟁 영화입니다.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인류 최악의 비극인 전쟁만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나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이종 격투기 관람을 좋아하고, 전쟁 영화를 즐겨 찾아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 전우애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이기적이지만은 않은 인간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에서 보여준 우리 의료진의 생사를 건 희생의 봉사현장이 그래서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핏빛으로 얼룩진 병사의 옷에서 묻어나는 화약 냄새가 살아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렇게 비일상적인 것들로부터 얻어지는 혼돈과 불확실함이 더욱 강한 영웅의 의지로 일상을 꿈꾸게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쟁 영웅은 어떤 위대한 지도자나 사상가처럼 비범한 인물만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앞서 달려간 전우가 총에 맞아 쓰러져 신음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그를 구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소영웅들이라는 데서 ‘나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하는, 그런 영웅들입니다. 그래서 때론 지구상에 어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전쟁이 있다면 용병으로라도 참여하고픈 생각도 해봅니다.
나는 기독교 변증학의 원조 격인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골(Kierkegaard)을 좋아합니다. 그가 말한 ‘기독교적 영웅주의’란 말에 매료되어 한동안 그의 세계를 탐닉한 적이 있습니다. 백 년 후의 세계를 내다보는 기독교 사상가를 동시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어 세기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에서야 나 같은 사람의 희미한 안목에 그가 말한 바 있는 기독교적 영웅주의가 이제 겨우 신선한 깨달음으로 감이 잡히기 시작한 세기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평범한 삶은 싫습니다. 뭔가 좀 비범한 영웅적 삶이 좋습니다. 어차피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사는 거라면 평범하게 살다 가기 싫습니다. 영웅이 되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장하는 미스터 트롯, 넘버원이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기독교 영웅을 필요로 하면서도 기독교 영웅의 탄생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게 그렇고 그런 ‘원만한 관계의 이웃’으로 서로 탈 없이 존재하기만 바랍니다.
영웅은 시대를 본받지 않고, 자신이 처한 시대를 새롭게 바꾸어 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역설적 진리가 담겨 있게 하고, 역행적 모험의 움직임들이 뒤따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거기엔 아픔이 있습니다.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고통스러운 권태의 지루함이 있습니다. 손흥민이 손흥민일 수 있는 것은 그가 겪어온 매일매일의 지루한 훈련과정을 인내하고 극복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도 막상 신세계의 문이 열리면 도전의 자리에서 물러나 슬그머니 꽁무니를 뺍니다. 변화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판에 박힌 일상의 삶이 지겨우면서도 그 익숙함 속에 꼭꼭 숨어 안주하며 스스로 고인 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엔 그 어떤 생명의 신선함도, 그 어떤 기대감도 없이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삶을 따르는 기독교 영웅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삶의 형태이며, 얼마만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죄의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그 죄를 일상 속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우리는 그 죄와 아무런 갈등이나 싸움도 없이 아주 천연덕스럽게 킬킬거리며 사이좋게 공존하는 타협점을 찾기 위해 분주할 뿐입니다. 피 터지는 치열함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의미하는 세상은 천국 시민이 되기 위한 훈련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훈련장은 인기가 없기에 치료소인 병원만 짓습니다. 모두 환자인 듯합니다. 도대체 무슨 전쟁을 치르고 왔기에 그토록 치유가 필요할까요? 사실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한 거룩한 전쟁은 상처 그 자체가 영광이기에 예수의 십자가를 따르는 제자로서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할 '예수의 흔적'인 것입니다.
영웅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자신과 이웃에게 큰소리로 외쳐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웅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다가 죽어갔노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내가 존재함도 스스로 깨우치고 싶습니다.
비겁한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용기 있게 사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영웅은 못 될지라도 적어도 이쯤은 기본으로 살아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코로나19의 역병 태풍이 휘몰아친 후 일상의 삶을 다시 회복하려는 시점에서 ‘나는 영웅이고 싶다’고 말하는 나 자신은 아직 영웅이 되지 못하기 때문임을 스스로 탄식하면서 말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수탉처럼 그렇게 동터오는 붉은 새벽하늘을 향해 길게 목을 빼고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아직 나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아직까진 그래도 이 탁류를 헤쳐나갈 용기가 남아 있다고. 아닙니다! 용기는커녕 첫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비겁함을 생각하며 긍휼히 여겨 달라고 그렇게 울며 기도할 것입니다.
조규남 목사 일산아버지학교 8기 수료

아버지의 시선

질문 수업 | 고수는 이렇게 질문한다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나? 찬찬히 살펴보니 나의 됨됨이를 알겠다. 나이 들면 절로 지혜롭고 사리에 밝아지려니 했건만 여전히 철부지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떡해야 나의 나 됨을 알고, 욕심 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더불어 즐겁게 일할까? 이런 고민에 빠졌다면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질문’을 공부해야 한다. 기업경영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 힘쓰고 있는 한근태 대표를 만나 ‘진정한 고수는 무엇을 묻는지’ 한 수 배워보자.
나를 채우는 질문 ;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
질문 있습니까?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질문이다. 질문도 근육처럼 계속 써주어야 발달한다. 나는 무엇을 알고 싶을 때 질문한다. 아니, 무엇을 모르는지 아니까 질문한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의 차이를 줄이려는 욕구가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되는대로 살다 보면 호기심을 잃는다. 삶에 대한 질문도 삭아서 없어져 버린다. 질문을 잃은 인생에 생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인생이니까 별 질문 없이 산다면 나의 ‘무지’를 의심해야 한다. 뭘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 없이 사는 지경을 알아채면 ‘왜 이러고 살까?’ 질문이 박동한다. 그 리듬에 맞춰 텅 빈 마음을 채우면(공부하면), 숙성한 질문의 맛을 경험할 것이다. 그저 남에게 보이려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있다. 이목에 집중하여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참으로 심심하고 공허한 여행(인생)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여행을 가려 한다면, 나를 채우는 질문을 가진 사람은 먼저 타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공부할 것이다. 궁금증을 가득 안고 또 다른 세계로 가는 여정에서 그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만끽한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묘미, 그것이 알 수 없는 인생을 사는 즐거움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갇혀 있나? 이렇게 물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갇혀 있는(경직되고 닫힌) 사람은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훗날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날이 와도 도무지 영문을 모를 것이다. ‘당신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 했다. 남의 말을 안 듣고 공부도 안 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온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지, 다양하고 유연한 관점을 가졌는지, 아니면 한 가지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지” 자문해보라. 지금 당장 남들이 혹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 통념, 상식, 원칙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고, 하나하나에 ‘물음표’를 붙여보자.
고수는 이렇게 질문한다② <나를 채우는 질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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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가는 아버지운동

2021 신규강사선발공고
(사)두란노아버지학교 강사 운영 및 심의 규정에 의거하여 아래와 같이 신규강사 (목회자, 평신도)위촉을 위한 2021신규강사 선발 일정을 공고합니다.
모집인원
목회자, 평신도 ◯ ◯명
전형방법
1차 - 서류전형
2차 - 면접 및 시범강의
3차 - 강사아카데미 이수
신청자격
(사)두란노아버지학교 강사 운영 및 심의 규정 제6조 1항에 부합한 자로 지부 실행위원회 결의를 거쳐 지부장의 추천을 받은 자(추천서양식참조)
제출기한
2020년 8월 31일(월) 18시 도착
서류 접수처 주소
06752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27길 7-11 4층(양재동70-2 대송빌딩 4층)
※ 우편 접수에 한함.
문의
김하건 국장 (02-2182-9123)

Fatherschool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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