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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묻혀버린 진실을 바로잡을까?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8-06-25 19:06:35.0 조회수 256 연월 201806

 


누가 묻혀버린
진실을 바로잡을까?

박상규 기자 / 박준영 변호사
취재, 글 : 김문영 / 사진 : 윤동혁



박상규 기자
2005년 ‘올해의 인터넷 기자상’과 ‘언론인권상’을 받음. 2014년 취재와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10년 근무한 오마이뉴스에 사표를 냄 2015년부터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 프로젝트 3부작'을 진행했고, 현재 탐사보도 전문 매체 '진실탐사그룹, 설록(newsherlock.com)'을 운영'

박준영 변호사
국선을 하도 만힝 맡아서 '국선 재벌'로 불리기도함. 2015년 제 3회 '변호사 공익대상'을 받았으나 파산할 뻔했고, 2016년 8월 '백수 기자' 박상규와 진행한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기획으로 기사회생. 영화 <재심>(2016)의 실제모델로 더 알려져 한동안 똑바로 살아야 하는 부담이 큼.





왜 재심 프로젝트를 진행했나?
박준영 200년 이상 근대 사법제도를 경험한 미국도 오판 사례들이 계속 나오는데, 100년이 안 되는 사법제도 아래 놓인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 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강요된 침묵 아래 몸부림치는 사회적 약자, 아무도 들어주 지 않는 고통을 안고 결국 세상을 떠난 사람의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분명 ‘재심’이 필요한데, 실상 우리나라에서 재심은 난공불락이다. 확정 판결된 판을 뒤흔 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강력 살인 사건의 경우에는 진범이 잡혀야 재심이 가 능할 정도로 경직된 지대다.

박상규 기자와 함께 다음 스토리펀딩(storyfunding)을 통해 재심 프로젝트 -그녀 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무기수 김신혜 사건),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 사 살인 사건)-를 추진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합당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 만 ‘왜 여론을 통해서 사법부를 압박하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우리는 여론이 재판 에 영향을 주리라는 관점으로 재심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다. 다만 국민의 법 상 식, 그 목소리를 재판부에 전달하는 장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에 걸 쳐 검증된 상세한 사실 기록과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잘못된 재판이라면 재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상식이 통해야 한다고 믿었다.

박상규 ‘기자는 소속 매체가 아닌 기사로 말한다’는 소신으로 10년간 몸담았던 오 마이뉴스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백수가 되어 박준영 변호사를 다시 만났다. 2015년 1월부터 그와 함께 신윤경 변호사, 황상만 전 형사반장과 협력하여 재심 프로젝트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향하는 “저널리즘, 그 이상. 사실의 조각을 모아 진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자, 그 이상. 진실 보도에 멈추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노력하고 책임지겠습니다. 기사, 그 이상.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기사를 쓰겠습 니다”라는 철학이 현실로 만져지기를 바랐다. 어떤 때는 사람인지라 분노가 치밀고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명백한 수사기록, 판결문 등을 거듭 검토하며 중심을 바로잡았다. 재심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과정과 마지막 결론이 나올 때 까지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다. 쉽게 보이지 않는 진실을 오래 관찰하고, 추적하고, 보도하면서 기자의 본분을 다지는 과정이 좋았다. 이 모든 일은 시민들이 공감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나쁜 놈인가’를 판가름하기에 앞서 ‘인간이 참으로 어리석은 존재’라는 사실을 목도했다. 제아무리 최고 엘리트층이라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합리적인 의심조차 의심해봐야 할 상황은 수두룩했다. 그러니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는 데서 출발해야 들리지 않던 이야기가 들린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나?
박준영 최근 어렵게 사는 동생에게 보내줄 50만 원을 들고서 ‘이 돈이면 우리 애들 에게 뭘 더 사줄 수 있고, 나의 편의를 위해 쓸 수도 있는데…’ 하고 망설이는 나를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금해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내 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준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재 나의 자리가 전적으로 나의 몫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 렀고,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내려오니 흔쾌히 동생에게 송금할 수 있었다. 사회적 의 무도 내가 입은 혜택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해야지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성과물 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하면 감당하기 싫은 법이다.

이 좁은 땅에 수없이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친다고 경계 밖 사람들의 문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까? 울타리 밖의 사람을 제대로 돕지 않아서 그들에게 쌓인 분노와 불만이 범죄로 표출되어 경계를 넘어선 다면 그 피해는 누가 입을까? 결국 나와 가족을 지키는 길은 함께 살아가는 타자를 돕는 것이다. 특히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무다. 어떤 정신이상자의 돌발 행동으로 규정짓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사건은 우리 가 귀 기울여 듣고 도와줘야 하는 의무를 등한시 했을 때 터져 나온 분노일 수 있다. 단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차원의 배려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배려가 필요한 세 상이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타인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변호사들은 ‘사 건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사건 당사자에게 감정이입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일부분 맞는 말이지만, 당사자의 고통과 상처에 공감하지 않고 어떻게 열정을 다해 일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감정과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해야지 뭐라도 더 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은 ‘끝까지 함께 간다’는 각오로 가는 것이다. 그 덕에 마음이 시끄러울 때도 많지만, 나의 역량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박상규 우리는 ‘상식적으로 따졌을 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끼리끼리 어울리기 마련인데,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이 주장하는 상식은 다른 분야,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상식과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사회/공동체가 우리 상식선을 벗어나면 잘못되었다고 배척해 버린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 그들의 상식은 언제나 다양 하게 존재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그래서 어렵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상식이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남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어눌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쉽게 뭉개져 버린다. 재심 가운데 판사가 “왜 허위자백을 했나요? 어떻게 경찰 이 때린다고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까? 그것이 엄청 위중한 일이란 걸 몰랐나요?”라 고 묻는다. 억울하게 피의자로 내몰린 이들은 가슴을 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겉 으로 보이는 것만 집중하면 보이지 않는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을 읽지 못한다. 이면 을 들여다보지 않고 감춰진 진실에 접근하기란 어렵다.



정의란 무엇인가?
박상규 2구례에 방 하나를 얻어 사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내가 기자라고 하면 ‘좋은 일 한다’고 말씀하신다. 곰곰이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맡은 본분을 다하면 그것이 좋은 일 아닐까? 나의 일을 열심히 하면, 누군가에게는 ‘좋은 일’ 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평생 농사짓고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좋은 일 하신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있었을까?

재심을 통해 누명을 쓴 이들의 무죄가 밝혀졌을 때, 우리는 감사하면서도 이상하게 씁쓸하고 서글프고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작 오판을 내린 판사, 검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는데, 이로써 정의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조직의 말단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사태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은 때로 정의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조지 위커샴George Wickersham).”

박준영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알려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재조사 특별법’ 이 거론될 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전국의 부랑아 시설이 가진 문제점 아니었냐?’ ‘공소 시효가 지났는데, 이제 와서 왜 그러냐?’ ‘사회적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라 며 생판 남의 이야기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남의 일이 아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고통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안끝났는데 공소 시효가 어디 있느냐?’라고 절규한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 씨는 여의도 광장 차량질주 사건(1991)이 벌어졌을 때, 불끈 ‘나도 한번 질러 버릴까’ 감정이 치밀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분노가 차올랐을 때, 그를 붙잡아준 사람이 있다. 참혹한 기억에 갇혀 ‘괴물’이 되어간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이는 전규찬 교수다. 그의 증언은 『살아남은 아이』에 생생하게 기록되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어선 안된다. 분노의 칼을 쓰지 않도록 어 루만져야 한다. 지옥으로부터 나올 수 있게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사필귀정事必歸正,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가치를 확신한다. 악한 일을 행했다면 법적으로 처벌을 안 받아도 당대가 아니면 후대라도 반드시 벌을 받는다. 자손이 잘 살기 원한다면 내가 잘 살아야 한다. 악인은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되어있다. 그 가치를 믿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본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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