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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봄'으로 떠나는 여행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8-06-25 17:40:39.0 조회수 82 연월 201806

 


'리스본의 봄'으로
떠나는 여행

기획, 진행 : 김문영 / 이미지 제공 : 뮤제엔터테인먼트



2018년 4월 25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카네이션혁명 44주년’을 맞아 기념 행진이 있었다. ‘리스본의 봄’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은 1974년 안토니우드 올리비에라 살라자르(이하 살라자르)의 장기 독재체재와 식민지 독립운동 탄압에 대한 반발로 터져 나온 무혈혁명 이다. 빌 어거스트 감독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유럽 문학의 현대 고전’이라 불리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한 중년 남자의 우발적인 여행 속, 카네이션혁명 전후 이야기가 조각을 맞추듯 전개된다. 천수림 디렉터와 함께 일상을 바 꾸어놓은 뜻밖의 여행,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줄거리] 어느 날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우연히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는 여자를 구한다.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며 고독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이다. 그의 강의실까지 따라와 잠시 머물던 그녀는 빨간 가죽코트를 남긴 채 떠나버린다.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발견한 ‘낡은 책 한 권과 리스본행 승차권’을 들고서 기차역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어온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쓴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는데….
 


왜 인간은 여행을 떠날까? 우리는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땅에 발을 디딜 때, 어떤 희열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새로운 것을 경계하면서도 타성에 젖은 일상을 깨우려는 모순된 갈망이 ‘여행’에 존재한다. 여행은 자기 혁명의 요구와 연결되지만, 누구나 그러한 요구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행 가운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독서나 영화감상은 그 어떤 여행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당신은 지금 당장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보면서 주인공과 함께 리 스본으로 떠나는 야간열차에 오를 수 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누군가를 찾아가는 그의 여정을 당신의 이야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레고리우스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영화 속 또 다 른 주인공인 아마데우 프라두의 일생과 세계사를 바꾼 아름다운 혁명, 리스본의 봄이 중첩 되는 시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우연은 필연으로 바뀐다.

원작소설의 저자 파스칼 메르시어(본명 페터 비에리)는 스위스 베른 출신으로 철학, 고전문 헌학 등을 전공했고, 1993년 이후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인생의 섬세한 고찰과 매혹적인 문체가 정교하게 구성된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영화에서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중후한 목소리가 더해져 한층 부드럽게 다가온다. 영화와 원작을 오가는 묘미도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삶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자석에 이끌리듯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탑승한다. 잠시 멈칫했지만, 이 내 주저하지 않고 뛰어올랐다. 기차역은 ‘떠나거나 돌아오거나’ 두 가지 의미를 상징하 는 공간으로, 관객에게 ‘과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베른역을 출발한 기차 안에서 아마데우 프라두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꺼내 한 문장을 읽는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한번 규정된 인생에 대한 질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기 혁명의 불씨가 타오른다. 그레고리우스가 우연을 그냥 지나쳤다면,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축적된 갈망이 폭발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인간이 우연을 마주했을 때 망설일 수밖에 없지만, 그 짧 은 순간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나머지’ 우리 인생에 새로운 전환이 일어난다. “삶 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이런 ‘떠남’에 대하여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그게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나의 어떤 부분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목적이 있는 경우(자유를 향한 인간의 욕구)’ ‘불가피한 떠남’ 이 이루어진다. 물론 “현실에서 떠난다고 모두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탈을 시도하거나 상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포르투갈 카네이션혁명의 역사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수소문 끝에 아마데우 프라두의 여동생 아드리아나 를 만난다. 그녀가 오빠의 글을 수집해서 『언어의 연금술사』를 딱 100권만 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마데우는 혁명의 날에 죽었죠. 그래서 모두 빨간 카네이션을 갖고 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레고리우스가 아마데우 프라두의 흔적 을 추적하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포르투갈의 카네이 션혁명’에 포개진다.

1974년 4월 25일 자정 직후, 포르투갈 국영방송에서 민중 저항가수 제카 아폰수의 노 래 ‘그란돌라, 비아 모레나’가 나왔다. 마르첼로 카에타누 총리의 우파정권에 의해 금 지된 곡으로 포르투갈군의 젊은 장교들이 기다려온 혁명의 신호탄이다. 그날 밤, 구국 운동(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MFA)은 전국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한다.

MFA는 국민에게 동요하지 말고 집안에 머무르라고 지시하지만, 리스본 시내로 군중이 운집한다. 빨간 카네이션(꽃말: 사랑, 존경)을 들고 나온 수많은 시민은 거리의 군인들이 들고 있는 소총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었다. 빨간 카네이션은 ‘짓밟히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여린 꽃이 강함을 이긴다’는 비폭력 혁명의 상징이다.

혁명 이전 포르투갈은 40년 가까이 살라자르가 세운 신 국가체제의 독재 아래 신음했다. 아프리카에 집착한 이 체제는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의 게릴라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기도 했다. 혁명 이후, 포르투갈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 어려웠지만, 격동기를 거쳐 1976년 마침내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카네이션혁명은 세계 정세에도 영향을 끼쳐 아프리카, 마카오 등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독재가 현실이면 혁명은 의무다
아마데우 프라두는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라면서 ‘타인의 감옥’에 갇힌 자 아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고뇌하는 인물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그레고리우스가 학생들 에게 읽어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 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구절은 아마데우 프라두의 격정적인 영혼의 떨림을 암시 한다. 완전한 자기 혁명을 갈망하던 한 인간의 분투는 결국 동맥류(아마데우 프라두의 지병)로 막을 내렸다. 그레고리우스가 선택한 여행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미완성으로 끝난 아마데우 프라두의 혁명이 그레고리우스에게로 옮겨진다. 그는 다른 시대, 다른 공간, 다른 언어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자신의 변화를 감지한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여전히 상처를 끌어안고 사 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데우 프라두의 여동생 아드리아나처럼. 맹목적으로 오빠를 숭 배하던 그녀의 인생은 그가 죽은 날 멈춰버렸다. 자유를 위한 혁명도 끝났지만, 그녀는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존재라는 넓은 식민지 안에”_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그녀는 스스로 감금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느닷없이 낯선 이방인이 찾아 온다. 그레고리우스의 방문을 거부하던 그녀가 차츰 그에게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야 기를 꺼낸다. 진심으로 경청하는 그레고리우스의 반응에 서서히 그녀의 굴절된 역사가 치유되고,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엿보인다.



사랑과 혁명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완전한 사랑과 혁명이란 인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과 혁명의 비극이 기도 하다. 영화나 현실이나 그런 비극은 실재한다. 과거에 갇힌 여자 아드리아나와 대 조적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스테파냐는 아마데우 프라두와 운명적으로 사랑 에 빠진 인물이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은 끝내 이별하고 마는데, 단지 외 부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 끝으로 함께 떠나기를 바라는 아마데우 프라두에게 스테파냐는 “당신이 떠나고자 하는 여행에 동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을 완성시켜줄 여성으로서 그녀를 원한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데우 프라두 의 열망을 자신이 충족시켜 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스테파냐는 붙잡아 둘 수 없는 ‘이상향’으로 해석된다.

결국 충격에 빠진 아마데우 프라두는 방황 끝에 길거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런 비극을 통해서 우리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부터 도움을 주고, 그의 여정에 교감했던 안과 의사 마리아나 주앙이 돌아가려는 그에게 “왜 그냥 머무르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영화는 그가 베른으로 돌아갈지 리스본에 머무를지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원작소설의 마지막 장은 “귀로(歸路)”로 끝난다. 리스본에 머무르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그 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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