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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는 쿠바음악의 힘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8-05-25 12:10:53.0 조회수 100 연월 201805

 

역사를 기억하는
쿠바음악의 힘

기획, 진행 : 김문영 / 이미지 제공 : ㈜퍼스트런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년 작)>은 전 세계에 쿠바음악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는 미국의 음반제작자 닉 골드와 라이 쿠더가 잊혀가는 쿠바음악의 숨은 실력자를 찾아내고, 단 6일간 즉흥연주와 노래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앨범을 완성하는 여정을 담았다. 그들 음악은 ‘세계 대중음악사에 유례없는 기적’으로 찬사를 받는다. 그리고 2017년 루시 워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 아디오스>가 고별인사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다. 천수림 디렉터와 함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시원(始原)으로서 ‘쿠바음악에 녹아든 세계사’를 읽는다.

 

[줄거리] 1996년 단 1장의 앨범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2016년 5월 15일 쿠바 아바나의 카를 마르크스 극장에서 ‘아디오스(Adiós) 투어’를 마지막 무대로 작별을 고한다. 전작에서는 공개하지 않은 50시간 분량의 영상, 70~90대 원년 멤버 각 개인의 삶으로 한층 더 들어간 인터뷰와 안타까운 부고 소식 등. 영혼을 울리는 쿠바음악의 진수가 다시 한 번 깊이 스며든다.

최근 미국에서 ‘나의 DNA 찾기’가 유행이다. 유튜브 홍보 동영상에서 진행자가 DNA 테스트에 참여한 영국 백인 남성에게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나라가 있는지” 묻자, ‘독일’이라고 대답한다. 또, 쿠르드족 출신의 한 여성은 “터키가 싫다”고 말한다. 2주 후 참가자들은 뜻 밖의 결과를 받고 놀란다. 영국 남성의 DNA 5%는 독일인이고, 심지어 쿠르드 여성은 ‘터키인’으로 밝혀진다. ‘100% 토종 한국인’이라 확신한 한국인 기자의 DNA를 두 군데 연구소로 보낸 결과, 한 곳에서는 90%가 한국인, 8.8%가 일본인, 그 밖에 중국인, 동아시아인, 아메리칸 인디언이 섞인 것으로 나왔다. 다른 곳은 아예 한국인은 없고, 45.1%가 일본인, 31.1% 가 몽골인, 이하 중국인, 베트남인, 아메리칸 인디언 순으로 나왔다. 인간의 유전자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발견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DNA 검사결과에 나온 나라를 찾아가 그곳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편견을 깨는 여행을 즐긴다. 젊은 세대가 다른 민족을 타자로 배척하지 않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아우를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까? 인간 근원이 밀접하게 연결된 사실을 인정하면, 세계사를 뒤덮은 참혹한 억압과 차별의 역사를 치유하는 길도 열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바음악’은 인간 본디 자리, 시원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 아디오스>를 통해 ‘음악이 곧 삶이고, 기억이고, 역사가 된 사람들’의 애절한 목소리, 그 무구한 영혼의 결을 느낀다.

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인가?
도입부에 쿠바 역사를 정리한 영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흑백 영상자료로 ‘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쿠바 역사에 중요한지’ 배경을 보여준다. 스페인 왕실의 후원으로 신대륙 탐험에 나선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를 발견했을 때, 중앙아메리카의 섬에 타이노족이 살았다. 음악적 재능이 타고난 원주민으로, 적당히 먹고 일하는 농경생활을 해왔다. 콜럼버스는 담배나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생산, 경영하는 재식농업(플랜테이션)을 감행하면서 타이노족에게 종일 일을 시키지만, 반발하는 부족을 욕심껏 부리지 못한다. “금화를 줘도 그들에게는 필요 없는 ‘부’였기 때문이다.”_존리더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2013), 휴머니스트

1492년 스페인의 점령이 본격화되고, 노예가 된 타이노족은 사금(砂金) 채취와 농장일로 혹사당한다. 원주민은 스페인에 저항하다가 혹은 유럽에서 건너온 악성 유행병으로 죽어갔다. 타이노족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않고, 자식이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아 아이를 낳지 않는 등 스페인 점령 100년도 안 되어 멸족했다. 1451~1870년까지 유럽의 설탕 산업을 위해 아프리카 노예 9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너야 했고, 도중에 죽은 노예만 수백만 명에 달했다. 그 가운데 카리브 해로 끌려간 노예만 약 43% 이상이니, 유럽의 탐욕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처참한 역사 속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쿠바음악’이다. 아프리카 노예의 슬픔을 담은 쿠바음악은 인간 심장소리에 가장 가까운 타악기 리듬과 연주법에서 매우 독창적인 색채를 지니게 되었다.


내 슬픔을 꽃들에겐 보이지 않으리
1880년대 ‘아프로-큐바(아프리카+쿠바) 뮤직’이 ‘유럽음악’과 융합을 이뤘고, 쿠바 동부에서 ‘손(SON)’ 음악이 일어났다(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대표곡 ‘찬찬Chan Chan’을 예로 들 수 있다). 1899년 스페인에서 독립하지만, 1900년대는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콩가를 비롯한 드럼 사용을 금지당했고, 1922년에 와서야 라디오로 손 음악이 송출되었다. 1950년대 미국 재즈가 더해진 쿠바음악은 춤을 위한 살사, 맘보, 차차차, 룸바 등으로 황금기를 이뤘다. 그리고 1990년 말, 전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힘입어 쿠바음악에 새로운 부흥이 일어났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원래 흑인 노동자들이 모이던 장소로 흑인 뮤지션이 공연도 하고, 춤을 추는 등 인생을 즐기던 곳이다. “쿠바인에게 음악은 음식이나 마찬가지죠. 아주 어려웠던 시기에도 다양한 음악을 창조하면서 음악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했죠. 손은 노예제가 폐지된 18세기 말 마지막 노예들의 음악이에요. 손은 춤을 출 수 있는 모든 라틴음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어요.” <부에노 비스타 소셜 클럽2 ; 아디오스> 중에서
원년 멤버인 콤파이 세군도(1907~2003)는 “기억한다는 것은 다시 사는 것”이라 했다.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는 리듬, 인류의 시원을 갈구하는 노래, 절망을 넘어선 몸짓(춤)이 없으면 어찌 살겠느냐는 의미가 아닐까? 왜 이토록 그들의 음악이 애절했나, 면면의 이야기를 들으면 개개인의 인생 자체가 쿠바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독한 인종차별로 발레리나의 꿈을 이룰 수 없었던 여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 는 이브라힘 페레르(1927~2005)를 ‘좋은 사람’이라 부른다. 그가 성품처럼 고운 목소리로 ‘치자꽃 두 송이’를 부를 때, 그녀는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브라힘은 12살에 고아가 되어 150kg의 설탕자루를 나르는 노역을 감당해야 했다.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평생 가난했던 그의 인생은 카리브 해의 비극이 녹아있는 사탕수수 농장의 역사다. 슬픔이 가득 찬 눈동자에서, 애절하지만 맑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영혼을 흔드는 감동을 느낀다. 쿠바음악은 태생 자체가 비극이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 지혜가 녹아있기에 더욱 고귀하다. 이브라힘과 오마라가 함께 부른 노래처럼. “내 슬픔을 꽃들에겐 보이지 않으리. 우는 내 모습을 본다면 시들 테니까.”



음악과 혁명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면, “쿠바 혁명군 사령관 피델 카스트로(1926~2016)가 서거했습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정부는 9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쿠바혁명을 주도한 피델 카스트로는 인종차별을 없애고 쿠바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여 넬슨 만델라만큼 존경받는 인물이다. 피델은 혁명을 완수하는 동안 ‘혁명 퀸텟(5중주)’을 두어 산에서 공연을 하도록 했다. ‘음악과 혁명의 역사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하여 음악을 중시했던 것이다. 당시 정치 상황은 불안했지만, 뮤지션이 공연할 곳은 더 많았고, 쿠바음악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혁명이 성공하자 피델은 “모든 이는 혁명과 함께 춤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혁명의 지지 기반이 아닌 상류층 백인들이 미국 마이애미로 떠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들을 ‘정치적 망명자’로 둔갑시켜 공산화된 쿠바를 공격할 빌미를 얻고자 했다. 일명 ‘피터팬 작전’이라고 하는데, 미국은 쿠바에 남은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항구를 개방하고, 배로 실어 나르는 작전까지 펼쳤다. 반세기만인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공연을 관람하며 두 나라 간 교류가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미지수가 되어버렸다.

한 사람의 역사에서 세계사를 읽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를 통해 세계사를 읽지만, 이는 한 인간의 역사를 읽는 것이다. 세계사를 왜 읽어야만 할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함은 아닐까?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눈을 뜨기 위함은 아닐까?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역사, 한 인간의 역사, 눈물겨운 사람의 역사를 읽고자 함이 아닌가!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에 녹아든 세계사를 읽을 줄 모르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배제와 차별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사람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음악을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음악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아무리 억눌러도 끊임없 이 이어져온 역사다. 이브라힘 페레르는 마지막 무대에서 2곡을 부르고 나면 산소 호흡기를 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공연을 마친 5일 후에 죽음을 맞았다. 영화는 자신을 ‘고목에 핀 꽃’이라며, 늦게라도 꽃을 피웠으니 지는 일도 고맙다는 거장들의 아디오스, 작별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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