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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자리를 찾아서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시 2018-04-25 18:25:17.0 조회수 342 연월 201804


행복의 자리를
찾아서

김문조 |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취재 글 편집부 / 사진 김승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려도 행복하다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대신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떠오른 것이 ‘소확행’,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주목하자는 움직임이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행복을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추구했을까? 한국인의 행복론을 강의해 온 고려대 사회학과 김문 조 명예교수는 우리를 성찰하고 저마다 행복의 가치를 다양화하여 실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은 행복을 찾는 이유
행복 개념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인류는 오랫동안 ‘고통을 오히려 인생의 진수’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4대 비극에서 삶의 진정성은 주로 비극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다. 또 희극배우 채플린이 ‘멀리서는 희극 같아 보이는 삶도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 고 토로한 것처럼, 고난우위론은 20세기 초까지 면면히 이어져왔다. 고생 끝에 즐거움을 맛본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논리가 성행하던 시기에 일상적 행복은 ‘과분한 사치’였다. 그런데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물질적 풍요가 확산되자, 행복은 어쩌면 실현 가능한 ‘기대 요소’가 되었다. 차후 중산층이 늘어나고 민주화가 촉진되면서 행복은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같이 ‘당당한 권리’로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권리를 넘어선 ‘삶의 필수요소’로 간주된다. 이처럼 행복이 ‘사치재’에서 ‘당연재’를 거쳐 ‘필수재’가 되면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 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의미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소확행은 소소한 일상의 감동과 기쁨을 발견하며 다양한 가치를 추구해 풍족한 마음에 이르자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작지만의 ‘만’이라는 말을 주목하는데, 작은 행복을 추구하자면서도 비트코인 열풍처럼 여전히 대박 심리가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여건이 충분치 않은 현실에 타협하여 소확행에 머무는 것은 아닐까라고 추론해 볼 때, 소확행은 소비주의 가끼어들 여지가 상당히 많은 용어라고 생각한다. 또 ‘행복’의 추구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릴 ‘성숙한 자세’를 갖추었는지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의 행복
한국사회에서도 행복의 의미는 큰 변화를 거듭했다. 대다수 한국인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자식을 낳아 교육, 취직시킨 후 결혼시켜 집까지 마련해줘야 잘 살았다고 평가하고 만족해한다. 거기에 해외여행과 같은 여가활동이 덧붙여지면서 행복의 조건, 기대치가 늘어났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내 집 마련은 물론, 자녀교육, 취직과 결혼도 힘들어졌다. 따라서 아버지로서 자식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자괴감이 어느 나라보다 큰 곳이 대한민국이다. 자녀를 키운 수고에 상응하는 보상도 따르지 않으니 행복감이 줄어든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주로 가계주의, 가족주의에 원인이 있다. 가계 계승의 주역이자 책임과 권한을 아버지가 행사하는 가부장제를 받들고, 아버지의 권위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아버지는 가족이나 사회 활동의 궁극적 주체였다. 자녀의 일생까지 책임 지려는 가부장적 책임감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둔 우리의 불안은 서구인보다 더 크고, 장래가 불안하니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우리가 행복을 찾은 유래도 서양과 매우 다르다. 서구사회는 ‘물질을 지향하며 살기 보다 마음의 풍요를 누려야 한다’는 반성에서 시작했다. 미국은 산업화가 절정에 달 한 1960년대에 산업 역군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삶인가 반문하며, 자연을 찾고, 경쟁을 기피하는 히피운동이 퍼졌다. 이것이 1990년대 R. 잉글하트가 지적한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으로 이어져 삶의 질에 눈뜨며 ‘소유에서 삶으로from having to being’ 시선을 옮겨갔다. 내 삶의 태도와 의미를 묻는 성찰의 소산이었다 고할수있다.
우리나라는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기’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 1990년대말 외환위기를 회복하면서 “부자되세요” 말이 유행했다. 경제난을 극복한 데에 가속이 붙으면서, 물질적 부와 조화를 이루는 정신적 풍요도 누려야 한다는 행복을 향한 열망이 싹텄다. ‘풍성한 마음의 귀족주의’에서 행복을 그리며, 자신 감에서 행복을 추구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출발점 차이는 행복을 구체화하는 과정 에서 내적인 조절장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드러난다. 성찰을 거쳤다면 스스로 절제하고 걸러내는 자세가 따랐을 텐데, 우리는 절제 대신 다다익선多多益善, 보다 크고 많은 것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불공정 사회에서 갑을 꿈꾸는 을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을 열망하는데 왜 불행하다고 느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생활에 대한 불만이다. 불만의 원천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한국 사회는 다른 OECD국가에 비해 심한 ‘저신뢰 국가’로 사회적 공정성이 낮다. 일상생활에서 불공정을 자주 겪으면 불신과 불만이 커져, 나의 위치나 노력과 상관없이‘ 나는 더 잘될 수 있는데 부당한 처우로 능력 만큼 평가 받지 못한다’는 열패감이 깊어진다. 과거와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이 쉽지 않으니, 분노가 쌓이 다 폭발한다. 운전 중 접촉사고만 나도 불공정 사회에서 밑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느라 피곤하고 분주하다.
이러한 현상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는 태도로 연결된다. 삶이 불공정 게임이라 여겨지면 은연중 ‘내가 남보다 혜택을 더 누리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빠진 다. 그러니 반성하기 보다 잘될 때는 내가 잘한 것이고 안 될 때는 남의 탓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갑을甲乙 관계가 그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의 모든 국민이 을이라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다. 한국사회는 지도층이나 일반인 이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거대한 마이너 리그다. 반면 우리 사회는 갑질이 만연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 많은 갑 질은 소재가 묘연한 극소수 갑이 아닌, 을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을들이 병영, 직장, 지역사회는 물론 가정이나 동호회 등지에서 기회만 닿으면 갑질로 입지를 확보하고 혜택을 얻고자 매달리니 삶이 얼마나 피곤한가? 자신이 을이라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회, 더구나 을로 자처 하는 사람들이 갑질을 하며 자신이 힐난하던 갑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를 성찰 했더라면 환란을 겪으면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옳은 삶이었나’ 하고 되짚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과거 성장시대를 그리 워하며 급속한 성장을 위한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니 삶은 더욱 각박해졌다.지금은 탈성장, 저성장시대다. 고도성장 시대의 논리를 수정해야 한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절제 없이 누리려고 하면 불행해진다.

성찰을 통한 가족주의의 극복
행복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옛말처럼, 우리의 의식과 인성이 달라져야 한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북유럽 같은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를 성찰하지 않으면 ‘깨진 독에 물 붓기’이다. 따라서 새로운 물을 담을그릇, 튼튼한 마음의 그릇을 갖춰야 한다.
일차적으로 배타적 가족주의를 극복하자. 한국의 뿌리 깊은 가계계승주의, 가족주의 문화는 가장의 과도한 책임을 요구한다. 내 자식을 우선적으로 챙긴다는 편협한 가치관으로 근친적 인간관계를 앞세우다 보면 불공정해도 참고 부당해도 침묵하게 된다. 요즘 떠들썩한 미투 운동이나 대통령과 가신의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드러난 지도층의 위장전입, 위장상속, 축재 문제는 정실주의情實主意라는 왜곡된 가족주의나 그 파생물인 위계적 권위주의 때문이다. 이것이 사라져야 정상적 가치, 합 리적 보편주의, 성숙한 시민정신, 박애사상이 작동하는 사회로 진전할 수 있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 문화로 바꾸자. 상하를 강조하는 관행이 나 제도가 잔재하는 한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아버지와 가족 구성원 모두 나이, 성별을 떠나 동등한 인격체로 관계를 재조정해야 삶이 자유롭다.

행복을 어떻게 추구할까
한국을 단선적 경쟁 사회라고 칭하듯 우리 사회는 행복의 원천이 매우 제한적이다. 예전엔 복의 원천을 부富, 귀貴, 수壽, 다남多男으로 꼽았다. 현대 소자녀小子女 시대에 다남多男은 그 가치를 상실했고 나머지 중에서 가장 포괄적인 것이 귀貴다. 귀인貴人이 되면 수壽와 부富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한결같이 출세에 연연하니 자족하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 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첫째, 행복 주머니, 행복을 일으키는 요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우리와 달리 서구 는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한다. 오래 전 산업심리학자 F. 허즈버그는 삶의 불만요인 과만족 요인은 서로 다르다는 ‘두요인이론’을 제시한 바있다. 임금이나 작업조건 같은 불만요인은 적어도 불만스럽고 넘쳐도 만족하지 않는다. 반면 일에서 얻는 보람과 같은 만족요인은 많을수록 만족감을 증진 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삶에 만족감을 주는 내적 만족요소를 늘리는 것이 행복의 관건이다.

둘째, 행복 주머니 크기를 작게 해야 한다.
행복 주머니가 작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적정성 원리’가 작동한다. 서열주의가 강한 한국은 ‘무엇을 잘하나’보다 ‘몇 등이냐’를 물으며 자주 비교한다. 외국인은 빠르다고 감탄해도 우리는 느리다고 서두르는 것처럼 대다수가 스스로 닦달한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는 ‘예전에는 주인이 노예를 착취하는 시대였다면 요새는 자기가 자기를 착취하는 자기 착취, 자기강박의 시대’라고 말한다. 삶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할 때, 남과 비교하거나 곁눈질하지 않고 자족할수있다.

셋째, 일상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자!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이 있다. 소박한 일상속 숨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 큰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서양 속담이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결정적 요소는 재질이 아닌 빛이다. 마음의 빛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비출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 행복의 나라를 향한 또 다른 지름길이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깨달음이 주는 쏠쏠한 부가가치가 있다. 세상 이치를 배우면서 학문을 연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과 같은 초超연결시대에는 타인을 존중해 야 나도 바로 설 수 있다. 나 역시 어린 제자들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나이, 역할을 떠나 서로 존중해야 불필요한 자존심 게임을 벌이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 자신의 ‘존재 이유raison d’étre’를 확보할 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무얼 원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가 뚜렷해진다. 따라서 행복을 찾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타인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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