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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희망을 가르칩니다
작성자 송현영 작성일시 2018-04-25 17:32:02.0 조회수 111 연월 201804


새로운 희망을
가르칩니다


김진명 | 여주민들레학교 교장
취재 글 송현영 / 사진 김승범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가장 웅장하면서도 간결한 말은, 복음서가 ‘기쁜소식’을 천명한 몇 마디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도다’”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희망은 새로운 시작, 탄생에 있다고 역설했다.
학교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교육하는 여주민들레학교 김진명 교장은 ‘한 아이라도 포기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에 나갈 그들을 희망이라 불렀다.

덕분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지난 12월 28일 졸업식이 열렸다. 올해 졸업생이 7명이지만, 학부모, 교사, 민들레학교를 후원한 여러 단체장까지 모두 50여 분이 모여 이들의 새 출발을 격려했다. 일 년 중 하루만 제일 많은 손님이 오셔서 학교가 북적거리고 흥이 났다. 다행히 해마다 대학가는 아이들이 있고, 취업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올해도 진학생 1명, 취업생이 3명이나 나와서 기쁘다. 처음 이곳에 보내며 ‘창피하다’, ‘아이가 더 잘못될까 걱정이다’며 주저하던 부모들도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홀로 자립해 홀씨 되어 퍼지며, 자유를 누리게 하며, 남을 돕는 자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정신 아래 설립된 민들레학교는 경기도만 7개 도시에서 위탁 교육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을 교육해 다시 학교와 사회로 돌려보내 는 것이 목표다.
아이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만 지나면 달라진다. 그렇게 말썽을 부리던 아이도 진로가 뚜렷해지니 과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순하다. 식이 무르익고 졸업생 중 한 명이 “선생님 들을 만나 다행이었습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덕분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할 때 주마등처럼 일 년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만난 날 ‘다 필요 없다’고 소리치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환했다. ‘그래! 그렇게 환한 얼굴로 사람들과 어울리면 다 잘 될 거다!’ 두 손 모아 응원했다.

꽃은 흔들리며 핀다
민들레학교에 온 아이들은 상처와 분노가 많다. 문제 부모는 있지만 문제아는 없다고, 그 상처는 대부분 어른이 심은 것이다.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처음 일 년간 몸무게가 10kg 가까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한번은 새벽 3시 에 “너 교장이지. 나랑 한판 뜰래?” 수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녀석이 있었다. 학교를 빼먹어 아버지와 상담한 건데 고자질 했다고 전화로 내게 화풀이를 해대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풀 데가 없으면 할아버지뻘인 내게 이런 폭언을 하나 딱하기만 했다. 자칫 아이들이 문제라고 편견을 갖기 쉬운데,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사랑받지 못한 원망과 분노가 또래와 어울려 일탈로 이어지지만, 이야기만 잘 들어주고 믿어주기만 해도 달라진다.
눈높이를 맞추려고 아이들과 수업을 들었다. 안 되는 몸을 움직이고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며 아이들은 진심을 알아주었다. 어느 날은 한 학생이 이제껏 칼을 들고 다녔다면서 주머니의 칼을 내놓았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만일 문제가 발생했으면 누군가는 해를 입고 학교는 문을 닫았을 텐데 천만다행이었다. 한번은 중2 여학생이 “‘개천에서 용 난다’고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가난은 대물림이에요. 나는 이 판자촌을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라며 눈물을 흘릴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포기하지 말고 꿈을 키워봐라’ 하고 다독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세상은 화려한 꽃을 주목하지만, 작아도 쓰임새가 많은 민들레 역시 가치 있다. 찬찬히 보면 저마다 가치가 있는데 아이들의 개성을 살려주지 못하는 현실이 애석하다. 참고 기다리면 민들레처럼 어디서라도 꽃을 피울 아이들인데....

사랑은 새로운 인연을 열고
선생은 많으나 참스승은 없다는데, 나는 초등학교 시절 김규린 선생님을 만났다. 가난 한 시골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면 운동장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런 아이였는데, 김규린 선생님은 항상 도시락의 반을 갈라 돌아가며 아이들을 먹이셨다. 나는 그때 사랑이 무언지 제대로 배웠다. 김 선생님의 사랑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까지 잊히지 않고 가슴에 심겨, 여주민들레학교의 뿌리가 되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나면 무조건 먹고 싶다는 것을 사주며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준다. 할아버지 같은 내가 잔소리 안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아이들도 마음이 누그러져서 2시간씩 걸리는 통학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교한다. 아이들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양평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다가 우연히 여주 기독자활센터 대표님과 인연이 닿았는데, 실직자 가정 아이들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당시는 단기로 교육했는데, 교육 효과나 현실적인 한계가 많았다. 2010년 여주에서 큰 학교폭력사건이 터졌고 대책을 마련하던 중에 장기적인 대안교육센터로 개편하였다. 적임자를 찾던 센터 대표님이 학교장을 맡아달라고 강권했다. 적임자가 아니라고 고사했지만, 집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뒤늦은 사명처럼 느껴졌다. 기독자활센터에 방 한 칸을 얻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경기도 교육청 특별교육 이수 기관으로 지정받은 2011년, ‘여주민들레학교’로 명패를 달고 문을 열었다. 그때가 65세,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었지만 분명 새로운 인연을 만난 때였다.

나의 스승 김용기 장로님
인연만큼 소중한 일이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민들레학교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데, 나 역시 소중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돌아가신 농촌계몽운동가 김용기 선생님을 만난 것은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선생님을 만나 인생의 목적을 찾았고 지금껏 흔들림 없이 살았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라고 했는데, 나의 사춘기 시절은 흔들림이 심했다. 내 고향은 동해시 인근 농촌으로 형편이 어려워 학교 다니기도 힘들었다. 중학교 3학 년 때 돈 번다고 가출할 만큼 방황을 했는데, ‘사는 게 힘든데 사람은 왜 태어날까? 삶 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며 자주 고민했다. 교장님의 조회 시간에 번번이 늦게 들어가 눈총 받고, 선생님께 괜히 반항하는 삐딱이였어도, 무사히 학교를 마쳤다. 제대 후 건설회사에 취직했지만, 음주에 젖은 기업문화가 도저히 맞지 않아 몇 달 만에 퇴사했다. 그즈음 한 영화가 내 인생을 바꿨다. 김희갑 박노식 신성일 윤정희 등 당대 인기 배우가 총 출연한 영화 <새마을 만세>로, 새마을운동의 정신적 모태가 된 ‘가나안농군학교’가 등장한다. 영화의 감동이 매우 커서 그 길로 무작정 가나안농군학교 설립자 김용기 장로 님을 찾아가 교생으로 받아달라고 청했다. 김용기 선생님은 거친 임야를 개척해 농사를 지으며 국민적 각성을 일깨웠다. 전국 방방곡곡에 농촌계몽 운동의 불을 붙인 선구자이셨고 사회 곳곳으로 제자들을 내보내 지역과 사람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도록 했다.

온전한 반쪽을 만나다
존경하는 선생님 밑에서 새벽이면 ‘개척의 종’을 울리며 훈련 교관으로 내무과장으로 원주 신림가나안농군학교 건설을 맡아 밤낮으로 일했다. 끼니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민족을 세우는 이상촌을 건설한다는 꿈에 젖어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김용기 장로님께서 농군학교 내 교회 전도사님의 외동딸을 소개해 주셨다. 일하다 말고 불려 나가 노동복을 입은 채 아내와 만났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아내는 신학을 공부하는 처자였는데 가난한 나와 연을 맺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주도로 한 달도 안 돼서 결혼식을 올렸다. 나중에 아내의 이야기에 따르면 선생 님께 결혼이 겁나서 못 하겠다고 했다가 불호령만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결혼한 아내는 온전히 나의 반쪽이 되어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마음을 다해 도우며 잘 따라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내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인연이다.

사람이 우선이다
어려운 환경에 절망하고 열등감에 젖은 아이들을 모아서, 누구나 존중받는 행복한 학교, 하고 싶은 일하며 자기 인생을 꾸려가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고 싶다. 여러모로 부족한 나 자신과 재정난으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아서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 하다가도 ‘선생님, 우리 아이 한 번만 받아주세요’라며 애원하는 학부모를 만나면 마음이 약해진다. 민들레학교가 좋아서 떠나기 싫다는 아이들은 ‘우리를 알아주고 우리와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고맙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건 학문이 아니라 사랑이구나. 사람이 우선이구나’를 깨닫는다.
황무지를 일구며 ‘민족이여 내가 있다’ 하고 외치던 김용기 선생님처럼, 배고픈 아이들을 먹인 김규린 선생님처럼, 남편의 일이라면 무조건 도운 아내처럼,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은 언제나 영혼을 물들이기 마련이다. 군대 가기 전에 인사하러 오거나 혹은 장가간다고 전화하는 졸업생을 접할 때 ‘그래도 민들레학교가 잘 왔구나’ 안도하며 남몰래 뿌듯해한다. 초등학교를 임대하고 나서 더욱 일이 늘고, 직원 한 사람 월급 주기도 어렵지만,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뿐이다. 물론 몸은 전보다 훨씬 힘들고 신경 쓸 일도 한둘이 아니지만 갈 때까지는 열심히 가자고 다짐한다. 꽁꽁 얼었던 운동장에 아지랑이가 피면, 곧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닐 것을 그려본다. 세상에 널리 퍼질 아이들의 꿈이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 희망을 북돋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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