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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아버지의 소리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8-03-13 19:02:11.0 조회수 444 연월 201803

부드러운
아버지의 소리


이기훈 | 온누리교회 목사
취재 글 김문영 / 사진 윤동혁

시인 황영선은 ‘꽃이 피는 것’ ‘새싹이 큰 바윗돌을 밀며’ ‘어린 새가 맨 처음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부드러운 혁명’이라 부른다. 그렇게 ‘온통 꽃밭을 점령하는’ ‘꽃잎의 몸짓을 받아 적으며’ 시인은 ‘자연의 부드러운 혁명에 물들고 싶어’ 했다. 이기훈 목사는 부드러운 아버지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보며 자랐고, 그 사랑 안에서 사람의 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를 배웠다. 그리고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부드러운 힘’이 더욱 절실한 시대를 감지한다.

아버지, 부드러운 힘의 내용
시골교회 목사님이셨던 아버지는 늘 조용하셨다. 뭔가 시끌벅적 나서는 모습을 본 적 없다. 교회 직분을 맡은 분들이 창의적으로 일하도록 한 발 물러나 지켜보셨고, 일이 잘 되면 격려하고,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을 지셨다. 조건이나 환경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셨던 아버지는 더불어 일하는 즐거움을 누리셨다. 집에서도 아버지의 바람을 강요하는 법이 없으셨고,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삼십 대 초반, 내가 목사 안수를 받는 날에는 목사 선배로서 편지를 하나 건네주셨다. ‘목사로서 경계하며 살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가운데 “평생 공부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라. 성도의 칭찬에 우쭐하지 마라”는 세 가지가 아로새겨졌다.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스스로 바른 길을 가도록 이끌어주신 아버지를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다. 여전히 그 사랑 안에서 사람의 도리를 배운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이 ‘부드러운 힘의 내용’이다.
2002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의 소리>라는 시를 썼다. “여름날 초저녁 마루에 등을 대고 누워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 구성지게 연주하던 피리 소리, 새벽이면 어김없이 예배당에 엎드려 교인들을 위하여 중보하며 세상을 깨우던 기도 소리, …강단 위에 서서 빡빡하게 쓴 노트 장 넘겨가며 열정적으로 말씀을 외치던 소리,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웃음을 함께 주는 … 불뚝 내뱉으시는 우스갯소리, 아버지의 소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축복의 소리, 행복을 창조하는 긍정의 소리, 마음을 치료하는 생명의 소리”

나를 사랑할 수 없어서
부드러운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사랑한다. 자기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 EBS 부부상담 프로그램 <부부가 달라졌어요>는 위기의 부부가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을 서로 관찰하면서 상담을 이어가는 방송이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는데, 영상을 살펴본 상담가가 출연자 여성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지금의 남편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시죠?” “네, 그래요” “그런데 제가 관찰해보니까, 당신은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불행하게 살았어요. 당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불행을 남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겁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비밀이 들통 난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남편에게 기대했던 그녀의 좌절과 상처가 그렇게 불행한 모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줄은 부모로부터 온다. 부모는 조건 없이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데, 점점 까다로운 조건을 자녀에게 들이대어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디서 저런 게 나왔냐?’ ‘저게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는 등의 말로 비수를 던져 자존감을 망가뜨린다. 그런 말을 품고 살아온 자녀는 자신만 아니라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봄바람이 언 땅을 녹이듯
나처럼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찾아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걱정 되어 어려서부터 엄격하고 강하게 키웠는데,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허약해지더라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는 그에게 “그동안 반대로 하셨네요. 아이들이 강하게 살아가려면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으면 돼요. 그러면 어디를 가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아버지가 좋은 관계 속에서 부드러운 힘을 길러주면 자녀는 세상을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
큰아들 온유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한 대 때린 적 있다. 그런데 아이는 분명 자기가 잘못해서 맞은 건데도, 제 잘못은 기억 안하고 맞은 사실만 기억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동생(양선)에게 “넌 행복한줄 알아. 형은 너만 할 때 아빠한테 야구방망이로 맞았어”라는 말을 잊을만하면 꺼내고 또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아서 “온유야, 그때 아빠가 너를 완벽하게 키우고자 하는 잘못된 열정 때문에 어리석게도 상처를 주었다. 그날 아빠도 울었어. 아빠가 미숙해서 그런 거니까 용서해주라” 했더니 더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강한 힘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언 땅을 녹이고 새싹이 돋아나게 한다. 부드러운 힘은 강함조차 크게 감싸 안는다.



넌 목사 아들이 아니고, 아버지 아들이다

목사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속마음과 다르게 ‘연기’를 한다. 특히 한국사회는 자기감정을 표현하면 미숙하다고 했다. 힘들어도 참고 아파도 견뎌야 성숙하다고 평가하면서 감정을 억눌러왔다. 하지만 거짓된 부드러움을 분별하려면, 먼저 내가 무슨 연기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살다 보면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할 때도 있지만, 잘 분별해서 정당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집안에 어려움이 있는데 아이들 맘 고생할까 봐 부모만 자녀들 모르게 끙끙 앓고 있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그 어려움을 아이들에게 폭발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과 감정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부모와 자녀가 희로애락을 나누고, 함께 의지하고 도울 수 있는 삶의 구조, 즉 ‘부드러운 힘’이 작동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교육과 상관없이 교인들 앞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내가 잘못하면 부모님이 욕먹는다고 늘 조심하며 살았기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자유롭게 자라길 바랐다. 그런데 둘째 양선이 십 대 시절, 교회를 다녀와서는 성경책을 냅다 집어던지며 “성경 어디에 염색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 목사 아들은 염색도 하면 안 돼?”라고 화를 냈다. 우리는 이미 ‘그 나이 때 이것저것 해보고 싶겠지’ 하면서 허락을 해준 상황인데, 교회에서 한 권사님이 “너 목사님 아들 아니니? 쯧쯧…” 했다는 것이다. 잔뜩 화가 난 아들을 다독이며 “넌 목사 아들이 아니고, 아빠 아들이다. 아빠가 허락한 건 누가 뭐래도 상관없으니까. 당당하게 다녀라” 하고 편을 들어 주었다.
나는 아들들이 부드러움을 흉내 내는 정도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더욱 기도에 힘써야 했다. 우리 자신이 부드러운 힘을 발휘하는 부모가 되게 해달라고.

나는 감화를 주는 사람인가?
본래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 부드럽기가 쉽지 않다. 법 없이 살 만큼 착해 보여도 그 내면에 거친 부분이 있어서 어느 순간 터져 나와 사고를 치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 변화하지 않는 정서를 찾아야 한다. 그 2%가 나머지 98%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성장 과정에서 내면에 잘못 심겨진 정서를 직면해야 한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어떤 나를 쌓아왔는지 들여다보고, 나의 삶에 어떤 힘이 작동하기를 바라는지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부드러운 힘이라는 것은 자기 내면이 건강해야 나온다. 정서적으로 내면이 건강해야 모든 일에 대한 반응을 여유롭게 할 수 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완벽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하지 않고, 거친 면을 들여다보면서 하나하나 변화하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부드러운 영성’으로 거듭난다. 자기를 합리화하지 않고, 아픔이든 상처든 고난을 당할 때 성숙하게 대처하면 그것이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하게 대처하면 고난은 그저 고생에 지나지 않고, 고생을 많이 할수록 사람이 세지고, 독해질 뿐이다. 고난을 통해서 성숙해진 사람은 부드러워지고, 주변에 감화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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