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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묻지 않으면 묻혀버린다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8-03-13 17:02:03.0 조회수 522 연월 201803

역사에 대해
묻지 않으면 묻혀버린다


기획 진행 김문영 / 이미지 제공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이원태 감독, 조진웅 주연의 <대장 김창수>는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청년시절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이후, 김창수에게 벌어진 625일간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어떻게 조국을 맹렬하게 끌어안는 인물로 거듭났는지를 그렸다. 단재 신채호는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혀 바로 알게 해야 할 것”이라 했다. 천수림 디렉터와 함께 <대장 김창수>를 통해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의 급변을 감지하고, 우리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줄거리] 1895년 10월 8일 구한말, 쇠락해가는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청나라, 러시아와 다투던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이어 정권을 잡은 친일 내각이 단발령을 시행, 백성의 분노가 극에 달한 시점. 1896년 3월 9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김창수가 ‘국모 시해’에
대한 복수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다. 5개월 뒤, 김창수는 사형수로서 인천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옥중학교’를 열어 문맹퇴치에 힘쓴다. 고종 특사로 사형 집행은 정지되지만, 미결수로 남아 일본이 ‘한반도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시작한 경인선 철로 건설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재소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1898년 탈옥을 감행하는데….

기억하려는 의지와 역량
현대문화사학자 안드레아스 후이센이 “데이터 뱅크와 이미지 트랙에 더 많은 기억이 저장될수록 우리 문화가 기억하려는 의지와 기억할 수 있는 역량은 점점 줄어든다” 했다. 우리에게는 의식적으로 거듭 떠올리며 재조명해야 할 기억들이 있다. 거기서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고, 사람들 이야기가 존속하기에 해마다 기념일을 챙기고 그날의 의미를 되새긴다. 인간에게 ‘망각’은 ‘기억’보다 잔인하고 비극적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사건이라도 잊지 않겠다는 몸부림, 환희에 찬 바로 그날을 기억하려는 의지가 ‘역사’를 만든다. 단지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을 넘어서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현재의 역량과 미래를 향한 지표를 세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어떤 권력이나 이념에 종속되었다면? 그리고 어떤 의문부호를 붙이거나 성찰할 기회조차 빼앗겨왔다면?
일본은 숙종 21년, 문신 유성룡(柳成龍)이 임진왜란 동안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징비록』을 몰래 입수해 번역 발간하고, 그를 통해 우리나라를 철저히 분석한 후 침략했다. 일제는 애민정책이 빠진 조선의 성리학 체계와 양반과 상놈으로 계급을 가르는 뿌리깊은 정치 이념을 식민사관으로 이용한다. 즉 조선의 전통적인 세계관은 건드리지 않고, 왕은 상징적 존재로 내버려두고, 기득권을 쥐고 흔들던 관료에게만 적당히 먹을 것을 주면서 백성을 수탈했다. 그러면서 “왕이 무너지면 나라와 민족이 다 무너진다”는 의식을 주입했다. 참담하게도 1905년 을사조약이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역사를 스스로 축소하게 만드는 식민사관의 정체를 정확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묻는 자에게 대답하는 역사
역사는 의문문으로 풀어야 한다. 역사는 묻는 자에게 대답하며, 묻지 않으면 묻혀버린다. 진짜 삶을 찾으려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오랫동안 역사에 대해 질문할 기회가 없었다. “왜?”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역사에 관해서 질문하는 자를 없애려는 수많은 시도와 강제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는 본연의 길을 찾는다.
<대장 김창수>의 시대적 배경인 일본의 ‘경인선 철도 건설’만 해도 그렇다. 일본은 경인선을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며 생색을 내고 가르쳤지만, 실제 러시아와의 전쟁 통로를 열기 위한 야욕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안 해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차분히 근대화의 과정을 진행했을 텐데, ‘근대화를 시켜주겠다’며 덤벼들어서는 괴이한 역사관을 심어놓은 것이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일본의 가쓰라와 미국의 태프트가 회담을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상호 승인한 밀약이다. 극비에 붙여졌던 협정 내용은 1924년 미국의 역사학자 타일러 데넷이 밝혀내어 알려졌다. 이런 정세를 두루 읽지 못하고,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로 알지 못하면 나를 잃고 나라를 잃는 것이다.

아베 신조의 평화헌법 개정
2차대전에서 히로히토 천황의 명령으로 연합국에 항복한 일본은 전후에 마련한 헌법에 전쟁 포기를 명기해 ‘평화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오로지 방어만 한다는 ‘전수방위’와 ‘평화주의’ 원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전쟁가능국’으로 변신할 개헌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사실상 아베 신조 정부가 재출범한 2012년부터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2014년에는 “공산주의 국가나 분쟁지역 국가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무기 수출 금지 3원칙을 폐지했고, 2015년에는 안보법을 개정하여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을 바꿔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에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게을리 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불행한 역사를 써내려갈 수밖에 없다.

상해 임시정부의 혁신
중국의 최대 도시 상하이에 갈 기회가 있다면 상해 임시정부를 꼭 들러보자. 우리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된 공간에서 당시 시대상을 그려보면 좋겠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포악한 지배에 맞서 우리 국민의 저항과 분노가 터져 나왔다. 몇 달 간 전국에 만세의 물결이 계속되었는데, 당시 세계 식민지국가에서는 최초로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3·1항쟁은 일본의 무자비한 진압과 학살에 짓밟혔다.
김구는 국내에서 더 이상 독립운동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국제화된 도시에서 독립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하기 위함이다.
그 당시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던 중국의 국민당 장제스가 임시정부에 주목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장제스는 중국혁명의 지도자인 쑨원의 ‘민족, 민주, 민생주의’라는 삼민주의 사상을 이어받았고, 김구도 이와 사상적으로 연결된다. 임시정부 독립운동은 조선왕조와 결별하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내세웠기에, ‘나라의 주인은 왕’이라는 조선말기 관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의식은 단 한 번도 백성이 주인인 적 없는 한반도에서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었다. 임시정부가 ‘백성의 손으로 만든 나라’를 만들고자 했으니 친일파나 왕족 편에 선 자들에겐 무서운 존재였다. 또한 왕정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캄보디아, 라오스 등 식민지 시절을 겪었던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임시정부는 개혁의 방식 자체가 완전히 혁신이었다.

나의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
인천감옥에서 김창수가 제 이름 석 자도 못 쓰는 재소자들을 위해 ‘옥중학교’를 열어 한글을 가르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요즘이야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당시 문맹퇴치는 민족을 깨어나게 하는 힘이었다. 세계정세를 읽을 줄 아는 관료, 지도자가 딴짓을 하고 있을 때 백성마저 깨어있지 않으면 눈뜨고 나라를 빼앗길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를 분별해야 한다. 참으로 우리 근현대사를 읽기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역사를 쓸 수 있다.
우리가 백범 김구 이전의 이름 ‘김창수’를 불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역사 속 묻혔던 이름들을 꺼내어 부르고,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일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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