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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작성자 김경호 작성일시 2018-01-26 19:26:20.0 조회수 146 연월 201801

COVER STORY

중림장 김경호 대표


사진 김승범

음식은 정성이 반이라고 정성이 안 가면 금방 티가 납니다.
손님들이 먼저 맛을 아시니 꾀를 부릴 수가 없지요.
1972년 개업했으니 햇수로 46년입니다.

원래 중림동 일대가 조선 시대 칠패시장이 있었고,
수산시장이 유명해서 장작불 지펴가며
상인들이 새벽 시장을 열던 곳이지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우리 4남매를 위해
어머니께서 생선을 파셨는데 노량진이나 가락동으로
상인들 대부분이 떠난 후에 식당을 여셨어요.
당시는 경찰청 신문사 관청 학원이 밀집했고
서울역 근처라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상인들과 경찰, 학생들이 허기를 달래러 왔지요.
지금은 다 없어지고 우리 집만 남았는데,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식사 때면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시는데
하루는 경찰청의 고위 간부가 직원들과 오셔서
따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손님들처럼 줄 서고 겸상하시라 하면서
밥상 앞에선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집은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배불리 먹고 가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저렴한 가격을 고수하시면서 특별히
학원생, 기사님, 경찰, 군인은 천 원씩 할인해주셨어요.

어머니께서 네가 와서 도와다오 하시는데
늦둥이 아들이라서 어머니 따라다니며
항상 식당에서 손님들 보며 자랐으니
그 청을 외면하기 어려웠지요.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파 다듬기만 일 년
한 2년은 고기 선별과 다듬기, 그리고 3년은
고기만 썰었어요. 그리고 국물 내기로 들어가서
질 좋은 고기를 잘 끓이면 될 줄 알았는데
깊고 담백한 맛을 내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어머니 때부터 오시던 어르신들이 자제들과 오시고
종로학원생이었다는 중년 손님도 오셔서 감회가 새롭다고 해요.
작은 골목도 한옥도 사라지고 점점 옛 모습을 잃어가는데
우리 집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좋아하시는 분들 보면서 변함없는 맛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설렁탕 한 그릇이지만 우리 집을 찾은 손님은 누구라도
배불리 먹이시려던 어머니의 마음이 잘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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