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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중심’은 무엇인가?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8-01-26 19:20:10.0 조회수 252 연월 201801


우리 사회의

‘중심’은 무엇인가?

김승휘 | 법률사무소 <중심> 대표 변호사, 국선, 마을변호사
취재 글 김문영 / 사진 김승범



개인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인간관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없다. 또한 사회관계 속에서 날마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오류’ ‘자기 위주의 편향’을 성찰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만 아니라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김승휘 변호사는 사회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를 맡아 수행하면서 ‘무엇이 중심인가?’를 항상 질문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사건을 본다
우리 법률사무소 이름을 <중심中心>이라고 정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객관적인 원칙을 중심에 두고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변론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만 들어야 하는데, 의뢰인이 ‘사실 그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고 유념한다. 본인 입장에서 유리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라 막상 다른 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관계 자체가 전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의뢰인의 말을 충분히 듣고 공감해주되, 다른 상대방의 시각에서 사건을 보면 그 중간 즈음에서 사실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변론의 중심을 잘 잡기 위해서 중요한 원칙이다. 또한 상대방의 시각에서 사건을 보면 상대방의 공격 수단을 예측할 수 있고, 그 공격을 어떻게 방어할지 미리 준비할 수 있다.

누가 소문의 전달자인가?
2017년 9월11일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민원게시판에 ‘240번의 한 버스기사를 조치해달라’는 민원이 올라왔다. 그에 따르면, 퇴근시간 때 버스는 승객으로 꽉 차 있었고 사람을 제치고 나와야 하차할 수 있는 혼잡한 상황이었다. 건대역에서 승객이 차례대로 내리는데 ‘5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내리고 바로 여성분이 내리려던 찰나 뒷문이 닫혔고, 아기만 내리고 엄마는 못 내렸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문 열어달라고 하는데 버스기사는 무시하고 갔다’ ‘앞에 있는 사람들도 내용을 전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울며 뛰어 나가는데, 버스기사가 뭐라고 욕을 했다’ 등의 내용이다. CCTV가 공개되기 전까지 인터넷상에서 240번 버스기사를 향한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니 정작 버스기사에게는 잘못이 없었고,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상당부분 허위 내용임이 밝혀졌다.
‘나는 이런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다’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소문의 전달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전달함으로써 한 개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감각하다. 나의 관점, 발언, 주장이 전부가 아닌데,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고 전달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거기에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다수가 어느 한 방향으로 몰려 갈수록, 오히려 다른 편에 서봐야 한다. 그것이 ‘역지사지의 정신’이 아닐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우리 사회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제도는 선진국과 견주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잘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상당히 많다. 최저임금법(2017년 최저임금은 6,470원, 2018년에는 7,530원으로 인상) 자체가 국민의 동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제도인데도 ‘줄 거 다 주면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면서 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자들이 무수하다.
남에게 잣대를 들이댈 때는 ‘갑의 횡포’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실제 내가 그 입장이 되면 ‘현실이 그렇지 않아’ ‘어쩔 수 없어’라는 자기중심적인 의식과 태도가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 가운데 완전 무죄인 사람은 간혹 있을까 말까 하다.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입증이 덜 되었을 뿐이지 털끝까지 깨끗한 사람이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형사 사건을 맡아서 변호를 진행할 때 이런 사람들까지 담당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강간, 살인 등을 저지른 흉악범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객관적 증거를 보면 누가 봐도 죄를 지었는데 “그런 적 없다”라고 계속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범죄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일단 설득을 한다. “양형의 측면에서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계속 부인하면 형량만 가중될 수 있다.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양형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판결이 나온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입장에서 변호할 수밖에 없다.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부인하는 모습이 내심 괘씸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변호사는 필요하다. 죄가 명명백백해 보여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뜻이다. 나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어떤 일도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것이 인간생활의 기본임을 배운다. 우리 사회가 마녀사냥 식으로 아직 죄가 있다고 판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바람직하지 않다.



그의 사정을 충분히 들어주기만 해도
최근 “담벼락이 어느 집에 속하느냐”라는 문제로 방문한 분이 있었다. 두 집이 담벼락 하나로 경계가 나뉘다 보니 발생한 문제다. 어느 날부터 옆집에서 담 위에 화분을 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분을 올려놓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옆집에서 귀담아 듣지 않은 모양이다. 급기야 바람이 불어 화분이 자기 집으로 넘어오는 등 이런저런 일로 심기가 불편해진 집주인이 ‘담벼락이 누구의 소유인지 확인하는 소송’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셨다.
법적으로는 경계선을 넘어서 화분을 놓으면 안 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선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측량 비용도 들고, 결국 담을 무너뜨려야 한다. 또한 소송을 하면 옆집 사람과 관계는 영영 틀어지고, 아예 누군가는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송을 걸면 경제적 시간적 감정적 소모가 많으니 서로 대화로 풀고 타협을 보시라고 권유했다. 이를 수긍하시고 ‘그렇게 해 보겠다’ 하고 돌아가셨다.
그깟 화분 하나로 무슨 소송이냐 하겠지만, 두 집 사이에 이미 오래 묵힌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 갈등이 화분으로 점화된 시점에서 당사자 스스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일을 하면서 느끼는 바로, 변호사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다. 현실적으로 법적 분쟁은 스포츠만큼 치열하고, 감정적인 대립이 첨예한 분야다. 보통 사람이 이런 과정을 직접 통제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법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 대신해서 싸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진행하고 싶어 찾아오는 분들 상당수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길 바라서 찾아온다. 그 사정을 충분히 들어주기만 해도, 소송 없이 사건이 해결되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우리 사회가 사람이 지켜야할 핵심적인 부분만 법을 만들어 지키도록 했다. 그런데 오늘날 법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소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처럼 남용되고 있다. 법이 개입하면 오히려 사건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고, 좋지 않은 결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이다.
물론 소송을 통해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고, 이런 식으로 관계가 끊어지면 단지 개인적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신뢰도가 그만큼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는 변호사 활동이 자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려서 가해 학생을 불러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 학생을 불러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한 후 가해 학생에게 적절한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최근 이 과정에서 가해자나 피해자 측의 의뢰로 변호사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와 구제, 가해 학생에 대한 훈육과 계도를 위해 마련한 제도인데, 교육의 정신은 사라지고 형사 재판 형식으로 학생들을 처벌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거듭 고민하면서 ‘신뢰관계’를 쌓아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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