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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따라 떠나는 시간여행
작성자 강화영 작성일시 2017-12-27 17:14:02.0 조회수 82 연월 201712




도성 따라 떠나는 시간여행

이용옥 : 서울한양도성해설사
취재 글 강화영 / 사진 김승범





한양도성은 1396년부터 현재까지 대도시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문화유산이다. 축조 당시 모습은 물론 보수, 개축한 흔적까지 간직하고 있어 역사의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혼자 걸어도, 함께여도 좋은 한양도성 여행은 편한 신발과 생수 한 병, 여유로운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특히 혜화문에서 시작해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낙산 구간’은 고지가 낮고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추천할 만하다. 도심에서 즐기는 시간여행, 한양도성 낙산 구간으로 지금 떠나보자.

ⓒ 강화영

한양도성을 돌며 풍류를 즐기는 순성놀이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전통문화다. 조선 초기에 성을 돌며 감시하는 ‘순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도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전시 상황이 아닐 때는 주로 도성 주변의 정취를 느긋하게 감상하며 걸었고 ‘순성놀이’로 발전했다. 백성들은 도성을 한 바퀴 걸으며 향긋한 꽃향기와 맑은 새소리,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고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조선의 풍류객이 되어 홀로 유유자적 둘러볼 수도 있지만, 한양도성해설사와 함께 곳곳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한양도성투어’는 도성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무료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중 ‘낙산 구간’은 유일하게 성을 중심으로 양옆에 마을이 형성돼 역사와 서민의 삶이 한데 어우러진 특색이 있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고갯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왼쪽에 도성 진입로가 나타난다.


각자성석

태조 이성계는 적의 침략에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 높은 산까지 도성을 쌓고자 했다. 한양도성은 총 18.6km로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을 이어 축조했고 전국에서 19만 7천 4백여 명이 동원됐다. 단 98일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성을 만들기 위해 백성은 밤중까지 횃불을 들고 작업했다. 사상자가 872명에 달했는데 그야말로 백성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도성이다.
성돌 중 까만 것은 조선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한양도성이 오랜 시간 꿋꿋하게 자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공사 실명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공사 구간을 97개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마다 책임자를 세워 성돌 하나에 자기 이름이나 고을 이름을 적게 했다. 이 돌을 ‘각자성석’이라고 한다. 문제가 생긴 성벽은 책임자가 곤장을 맞았기 때문에 밤낮없이 성벽을 쌓고 점검해야 했다. 낙산 구간에는 오늘날 충청북도 영동과 충청남도 홍성이 적힌 각자성석 두 개를 볼 수 있다. 낙산 구간 끝자락에 있는 동대문성곽공원에는 빼놓았던 11개 각자성석이 모여 있다.

낙산 구간은 600여 년이 넘는 성벽의 변천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태조 때의 성벽은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사용하거나 흙으로 돌 모양을 만들어 토성을 쌓아 성돌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이후 세종 때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는데 이때 사용한 성돌을 ‘옥수수돌’이라고 부른다. 동그랗게 깎아내 마치 옥수수 알이 꽉꽉 들어찬 모양이다. 숙종 때는 성돌 크기를 규격화해 더 견고하게 만들었고, 거중기가 만들어진 영조, 정조, 순조 때는 크기가 더욱 커진다. 돌이 클수록 상하좌우를 다듬어 성돌끼리 퍼즐처럼 꼭 맞물리도록 해 빈틈이 생기지 않게 했다. 성벽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한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한참 성벽을 바라보며 걸어왔으니, 이제는 성벽 맞은편 전경에 눈길을 돌려보자. 낙산 정상으로 향하는 순성 길은 성 바깥으로 나 있어 오른쪽으로는 높은 성벽을 감상하면서, 왼쪽으로는 성곽 주변의 마을을 볼 수 있다.
장수마을을 기점으로 낙산 구간에서 가장 힘들다는 오르막, ‘마의 4분 길’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완만한 길만 걸었으니 이 오르막이 까마득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참 올라가다 고개를 돌리면 성북구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삼청각과 북악 팔각정까지 보인다면 어느새 정상 부근이다. 여기서 낙산 공원으로 연결되는 ‘암문’을 만나는데, 군사 물자를 들여오기 위해 낮에는 돌로 막아 위장했다가 밤에만 개방한 비밀의 문으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본래 기어들어 가야 할 정도로 작았지만, 몇백 년 후 확장해 성벽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지게 짐을 지고도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암문을 통과해 낙산공원 놀이광장을 지나쳐 조금 높은 지대로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사방이 훤하게 보이는 전경에 가슴까지 확 트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수도 서울은 서북쪽으로 북악산, 서남쪽으로 남산을 비롯해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다. 남산을 등지며 걸어야 하는 흥인지문 쪽이 아닌 한성대입구역 쪽에서 여정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흥인지문으로 가기 위해 전망대에서 성벽 쪽으로 내려가 보자. 남산 서울타워,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비롯해 대도시의 고층 빌딩이 빼곡히 보이고, 멀리 높이 솟은 롯데월드타워까지 보인다.

성벽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이화동 벽화마을에 닿는다. 벽화마을이 되기 전 이 지역은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이었다. 재개발을 최소화하고 동네를 다시 살리기 위해 2006년에 낙산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시행되고 지금의 벽화마을로 변신했다.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멀어진 한적한 마을 곳곳에 벽화 찾는 재미가 발길을 끈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탐방객이 내는 소음과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곳을 둘러볼 때는 주민을 배려하는 태도를 잊지 말자.


출처 / 한국관광공사

한양도성의 밤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해가 지면 낙산 구간에 설치된 480개 화강암 조명이 일제히 불을 밝힌다. 여기에 휘영청 보름달까지 뜨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마지막 주 금요일에 해설사와 함께 걷는 한양도성 달빛기행도 진행된다.

성벽을 내려오다 보면 한양도성박물관에 이어 동대문성곽공원, 길 건너로 대한민국 보물 제1호 흥인지문이 보인다. 흥인지문을 감싸 도는 도로는 자동차로, 거리는 인파로 넘쳐난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던 여행자가 길을 건너 다시 현재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한양도성에 올라 오도카니 앉아 쉬기도 하고 일부러 느릿느릿 걷기도 하며, 그 옛날 이 길을 앞서 걸었던 이들을 상상해본다. 낯익은 도시, 몇 번이나 설명했던 길이건만, 처음 보는듯한 풍경에 가슴 설레고 조그마한 발견에 반가워하며, 오늘도 천천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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