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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은수와 677일의 세계 일주
작성자 강화영 작성일시 2017-11-30 18:01:02.0 조회수 43 연월 201711




마을버스 은수와
677일의 세계 일주

임택 | 여행작가
취재 글 강화영 / 사진 김승범



쉰다섯에 세계 일주를 떠난 남자가 있다. 그것도 폐차 직전의 마을버스를 타고. 장장 677일간 5대륙 48개국 147개 도시를 누빈 임택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여행이 좀 더 특별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품어 온 ‘여행작가’의 꿈을 이루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꿈을 이루기 늦은 나이는 없다!”

오십이 되기를 학수고대하다
내 고향 김포는 뒷동산에 올라가면 곧바로 김포공항 활주로가 훤히 보였다. 소년 시절, 온종일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먼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 무렵 ‘여행의 신’이라 불리는 故 김찬삼 씨가 세계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해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 그 장관을 본 순간 ‘여행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간절한 꿈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 때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다음 해에 아이가 생겼다.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려면 여행작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족의 행복과 안정도 소중했지만, 나의 꿈 역시 간절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서른이 됐을 무렵, 아내와 마주 앉아 ‘내가 50살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계를 안정시켜놓을 테니 여행작가의 길을 갈 때 막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아내는 흔쾌히 찬성하고 응원해주었다. 그 후 휴대전화번호 끝자리 4개를 항상 ‘5060’으로 정했다. 5, 60대에 여행작가로 사는 꿈을 되새기며 잊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은행에서 송금 전표에 전화번호를 쓸 때마다 ‘5060’은 다섯 번씩 꾹꾹 진하게 눌러 썼다. 오십이 되기를 학수고대하며 산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오십이 되던 해, 사업을 정리하고 드디어 내 꿈을 이루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마을버스 은수를 만나다
여행작가가 되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주위에서는 ‘잘하던 사업이나 계속하지 왜 그런 걸 하려고 하냐’ ‘패기는 좋은데 나이 오십이면 여행작가도 은퇴할 나이’라며 만류했다. 주저하다 보낸 시간이 2년, 의기소침해 있던 어느 날 평창동 고개에 앉아 쉬고 있을 때다. 저 밑에서 마을버스 한 대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비틀비틀 달리는 모습이 마치 인생 다 산 노인 같았다. 순간 ‘마을버스와 내 인생이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루도 못 쉬고 정해진 노선만 오가다 10년이면 폐차되는 버스처럼, 나 역시 가족 부양의 책임감으로 살지 않았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 그때 결심했다. ‘이제부터라도 폐차 직전의 버스를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나자. 이 여행으로 도전을 이야기하는 여행작가의 꿈을 실현하는 거다.’
나와 동행할 마을버스로 은수교통에서 폐차 6개월 남은 종로 12번 버스를 찾아냈다. 은수교통의 교통 두 글자를 빼고 ‘은수’라고 이름을 짓고 물었다. “은수야, 소원이 뭐야?” 은수가 대답하는 듯했다. “고속도로 한번 달려보는 게 소원이야.” “좋아, 우리 전 세계 고속도로를 달려보자. 그리고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주자. 10년 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지만, 꿈을 잊지 않으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고!”

시속 60km밖에 못 달린다고요?
고속도로를 달릴 생각에 신이 났지만, 마을버스 은수는 과속 방지 장치로 시속 60km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속도 제한을 풀어도 시속 70km가 넘어가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힘들어했다. 속도를 높이려는 나와 은수의 싸움은 계속됐다.
우리가 처음 페루 리마에 도착해 본격적인 남미 여행을 시작했을 때도, 은수는 속도가 늘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은수의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한 지 4개월쯤 됐을까? 은수는 어느새 시속 90km까지 속력을 내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팜파스 대초원을 지날 때, 마침 앞에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은수야, 우리 과속딱지 한 번 떼보자. 조금만 힘내라!” 하고 힘차게 액셀을 밟자 120km까지 속도가 오르며 앞 차를 추월해냈다. 동네에서 60km로 운행 구간만 돌았는데, 다른 차를 앞지르다니! 여행 중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꼽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은수가 한계를 벗어나 당당히 도로 위를 달린 것처럼, 나와 은수는 더 이상 나약하지 않았다.

길 위의 천사들 덕분에
2014년 10월 23일 임진각을 출발해 평택항에서 은수를 배에 싣고 페루로 건너갔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남미, 북미를 돌고 뉴욕을 기점으로 유럽,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발적인 사건들이 여행 내내 발목을 붙잡았으나, 역경이 클수록 여행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리라는 생각에 힘을 냈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낯선 이가 다가와 우리를 일으켜 줬다. 마치 천사처럼.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호수에 가기 위해 사막을 지날 때, 비포장도로가 갈수록 험해졌다. 연료는 동이 나고, 설상가상 모래폭풍으로 숨쉬기조차 어렵고,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우리는 죽기 살기로 길을 헤쳐 가다가 사막의 건설 노동자들이 머무는 임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인부들에게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더니, 은수의 연료통을 채워주고, 구운 소고기에 하얀 쌀밥을 차려줬다. 사막에서 그 귀한 목욕물까지 내주어서 고생이 몽땅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한번은 멕시코 국경에서 입국을 거절당해 위험하기로 소문 난 마을 ‘이달고’에 고립되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때, 영어에 능통한 ‘파비’라는 아이가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해줬다. 한 사흘 정도 지나니 ‘아부지, 파파’라 부르며 나를 따랐다. 그의 가족이 하는 타코스 가게 일을 돕고, 어린 막내딸 등굣길에 동행했다. 우리는 어느새 가족이 되어 있었다.
파비의 식구처럼 곳곳에서 나의 가족이 되어 준 사람들, 길 위에서 만나 은수에 올라탄 40여 명의 청년 여행자들, 따뜻한 이들 덕분에 677일 동안 총 7만km의 대장정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다.



우리의 여행은 계속된다
은수와 떠난 세계 일주 이야기를 담은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를 출간하고, 방송에도 출연해 용기를 북돋는 강연을 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여행작가’로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은수와 ‘마을버스의 마을여행’을 시작했다. SNS를 통해 신청자를 모집하고 은수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어떤 곳으로 어떤 사람들과 가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 ‘북극에서 남극까지’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알래스카 북극점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개 썰매를 타고 400km를 내려온 다음 차 두 대로 남극까지 횡단하는 3개월의 일정이다. 내년 7월쯤 대학생 4명과 5, 60대 시니어 4명을 선발해 아버지와 자식 세대 간의 소통을 주제로 떠날 예정이다.
수익의 일부분은 ‘여행 장학금’으로 적립하고, 형편이 어려운 청년을 뽑아 여비를 지원한다. 여행은 인생을 기름지게 하는 길 위의 학교다. 젊은 날의 여행이 인생을 풍성하게 한다는 사실은 다 알지만, 어떤 청년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400여 일 동안 여행한 어느 청년의 여행기에 “너는 금수저니까 여행이나 다니지, 나는 지금도 알바한다”라는 댓글이 있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참 아팠다. 내 나이 58세, 우리 사회의 책임과 의무를 지닌 아버지로서, 젊은이에게 기회를 선물하고 싶었다. 앞으로 청년 1,000명의 항공권을 지원해주는 것이 목표다. 여행 장학생 1기는 장애인 친구가 33일간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왔고, 2기는 뇌 병변 3급 고등학생과 그의 절친을 라오스 여행에 보낸다.

내가 꿈꾸던 길에 한 발 내디뎠더니 지혜가 생기고, 길이 보이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았다. 더는 ‘이 나이에 될까?’하고 주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도전하는 한 언제나, 어느 누구나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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