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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셋의 반란, 즐거운 나의 학교
작성자 강화영 작성일시 2017-11-30 17:57:08.0 조회수 37 연월 201711




일흔셋의 반란,
즐거운 나의 학교

임원철 | 한남대학교 도시부동산학과 15학번
취재 글 강화영 / 사진 윤동혁




한남대학교 15학번 임원철 학생은 두꺼운 전공교재를 들고 캠퍼스를 누빈다. 수업 후에는 학우들과 당구치고 노래방도 가고, 좋아하는 랩으로 자기소개도 한다. 여느 학생과 다르지 않은 일상이지만, 단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총장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미팅 빼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겠다는 당당한 일흔셋 대학생, 임원철 씨를 만났다.

65세 늦깎이 중학생
나는 1945년 5월 8일에 태어난 해방둥이다. 7살 때까지 포탄 소리에 아버지 품으로 도망치며 6.25 전쟁을 겪었다. 가난하고 고달픈 피난살이로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농사일을 해야 했다. 땔나무 하러 가다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창피하고 부러워 숨어서 눈물을 훔치기도 여러 번이었다. 공부 못한 한이 사무쳤지만, 가족 부양하며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새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해 서울 살던 딸이 ‘어느 노인의 수기, 95번째 생일에 흘린 눈물’이란 글을 메일로 보내왔다. 95세 생일을 맞이한 한 노인은 65세 정년퇴직하고 인생 다 살았다며 그저 죽음만을 기다린 30년의 삶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리고 더는 후회하며 살지 않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이 메일 한 통이 내 인생을 뒤집어 놨다. ‘그래, 좋다. 나도 공부 한번 해보자!’ 지금까지 일궈왔던 사업체를 동생에게 넘기고 예순 다섯에 대전예지중학교에 입학했다. 50살 차이 나는 손자뻘의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사실 입학할 때만 해도 졸업이나 할까, 중간에 그만두지 않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다녀보니 재밌어서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어 교과서에 한글로 발음을 하나하나 써가며 밤새워 공부해도 행복했다. 1학년 때는 반장으로 뽑히기까지 했다.

가슴 벅찬 두 글자 ‘수능’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까지 갔지만, 대학 갈 생각은 아예 안 했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고3 말쯤 되니 욕심이 생겼다. ‘이 나이에 중고등학교 다녀서 얼마나 행복한가. 대학도 한번 가볼까?’ 담임 선생님 찾아가서 수능 원서를 써달라고 했더니, 무슨 수능이냐, 30점도 못 맞는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빵점 맞으면 어떻습니까? 이 나이에 그 의자에 한번 앉아보고 싶습니다.” 강한 의지를 보이자 선생님도 결국 원서를 써주셨다.
수능시험 보는 날, 실내화 가방과 도시락을 들고 교문을 들어서는데 마음이 벅차올랐다. 교문 앞에서 왁자지껄 응원하는 아이들 사이로 수험생이 되어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살면서 가장 가슴 떨리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수험표는 보고 또 봐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험이 시작되고 1교시 국어시간, A4용지보다 훨씬 큰 시험지에 작은 글씨가 빡빡하게, 그것도 여러 장이었다. 내 실력으로는 시간 내에 다 읽어보지도 못할 판이었지만, 이렇게 높은 수준의 시험을 본다는 게 너무 좋아서 하늘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 시험이 다 끝났지만 같은 교실에 있던 애들한테 가지 말고 대화 좀 하자고 붙잡았다. 수능 날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게 너무나 아쉬웠다.

랩 하는 삼촌이라 불러다오
수시로 한남대학교 도시부동산학과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 신입생 연합엠티가 있었다. 선배, 후배 나와서 장기자랑을 하기에 나도 무대 가까이 다가갔다. “나도 무대에 좀 나갈 수 있을까?” 했더니 운영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대에 오르자 사회자가 “죄송하지만, 몇 살이세요?”하고 물었다. 그 순간 갈고닦은 랩 실력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대전 하고도 가양동 사는 임원철, 내 나이 육십 하고도 열한 살, 내 손에 MIC, 내 맘에 비타민씨,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 그러자 ‘와’ 하고 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여기 올라온 것은 우리 15학번 기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좋으나 싫으나 4년 동안 같이 지내야 하는데 그냥 삼촌이라 불러줘요.” 그러고 나서 한 곡 더 랩을 했더니 난리가 났다. 무대에서 내려와 내 자리까지 돌아오는 동안 학우들이 계속 파도타기를 해줬다. 난생처음 느끼는 황홀함이었다.
애초에 랩은 출퇴근길 운전 중에 졸음을 쫓으려고 시작했다. 잠 깨려고 가요를 점점 빠르게 부르다 보니 어느새 랩처럼 바뀌었고 취미가 됐다. 그 덕에 대학 생활의 로망이었던 힙합 동아리 ‘토네이도’에 가입해 젊은 친구들과 랩을 하며 놀기도 한다. 거기다 엠넷 TV의 <쇼미더머니 5>라고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나갔다. 심사위원이었던 힙합의 황제 ‘도끼’가 내 랩을 끝까지 듣고는 악수를 청하면서 “명쾌하게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줬다.



좌충우돌 대학 생활 적응기
입학 초반에 우리 과 15학번 모임이 있었다. 20명 정도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도저히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젊은 애들 쓰는 은어가 하도 많아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자마자 인터넷에서 은어를 찾아 공부했다. 우리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희한했다. 외운 은어로 랩도 하고, 대화 중에 한 번씩 써먹으면 “삼촌은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요?” 하며 친구들이 깜짝 놀란다.
처음 몇 달은 강의실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었다. 수업마다 강의실이 다르고 캠퍼스가 하도 넓어서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 건물 사이를 허둥지둥 다녀도 결석, 지각 한 번 안 했다. 수강 신청할 때는 교수님이 올려놓은 수업 계획서를 하나하나 출력해서 몇 날 며칠 꼼꼼하게 계획을 짠다.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업을 신청해 낭패를 볼까 싶어 찬찬히 살핀다. 중·고교와 달리 학업 수준도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1학년 때는 교수님 말씀 하나라도 놓칠까 노트 필기를 빼곡히 하며 따라가기 바빠서 다른 학생보다 2배, 3배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3학년이 되어서야 슬슬 수업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F만 면하자’고 편하게 생각하니 강의 듣기가 한결 수월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대학교에 와 보니 방학을 알차게 보내는 학우가 많았다. 특히 배낭여행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래서 작년 여름방학 때 우리 부부와 친구 내외까지 넷이 미얀마로 20일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처음이라 어려운 점도 있고 고됐지만, 앞으로 패키지여행은 안 가겠다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삼색 볼펜 백 개와 한국 과자, 사탕을 챙겼다. 미얀마 시골 지역에 가서 만나는 사람에게 볼펜을 주고 어린아이가 모여 있으면 과자와 사탕을 나눠줬다.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배낭여행 아니었으면 이런 경험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올 여름방학에는 손주까지 몽땅 데리고 단양 옥순봉에 올라 패러글라이딩을 탔다. 강사와 함께 힘껏 달려서 지면을 발로 탁 차고 몸을 날렸는데, 정말 하늘을 훨훨 나는 것 같았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도 찍고, 큰소리로 평소 좋아하던 랩을 외치면서 하늘을 날았다. 무섭기는커녕 신이 나서 착륙이 아쉬울 정도였다.
꿈도 안 꿨던 일에 하나하나 부딪쳐보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지금만 같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 내 생이 얼마나 주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시간을 나이 의식하며 덧없이 보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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