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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은 힘이 없다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7-11-30 17:46:44.0 조회수 61 연월 201711




조롱은
힘이 없다

취재 글 김문영



열한 번째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로 정했다. “요즘 영화 시장에 절실히 필요한 창작물”이라는 등 호평을 받았지만, 전체 줄거리를 장악하는 ‘조롱’과 구석구석 이어지는 ‘모욕’에 힘이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묘한 거짓과 모순이 판치는 세상을 비판하는 시각이 문제가 아니라, 모멸감을 주고받는 사회 풍조가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 삼아 본 영화라도 영상 이미지는 뇌리에 박히고 알게 모르게 학습되기 마련이다. 숭례문학당 영화토론모임의 한창욱 강사와 함께 ‘우리 시대 진정한 비극이 무엇인지’ <옥자>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줄거리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다(틸다 스윈튼)가 ‘인류 생존을 책임지는 기업, 친환경, 생명, 윤리경영’을 표방하며 야심 차게 ‘베스트 슈퍼돼지 축제’의 서막을 알린다. 칠레 공장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한 슈퍼돼지 품종을 자연 교미 방식으로 26마리를 생산하고, 각각 해외지사로 보내어 전통방식으로 사육하도록 전폭 지원하여 10년 후 ‘베스트 슈퍼돼지’를 선발, 공개하겠다는 것. 루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는 대자연의 선물이요, 축산업계의 혁명”이라고 부르짖고, 대중의 흥미를 끌어오기 위해 동물학자 조니 윌콕스 박사(제이크 질렌할)까지 들러리로 내세우며 요란하게 홍보한다.
10년 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와 슈퍼돼지 옥자가 친자매처럼 평화롭게 지내는 청정한 숲속 풍경이 펼쳐지지만, 이윽고 옥자가 베스트 슈퍼돼지로 뽑혀 뉴욕으로 끌려가면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옥자를 이용해 기업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루시, 방송에서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조니, 자가당착에 빠진 동물해방전선(ALF) 무장 단체까지 덤벼든 상황에서 미자는 무사히 옥자를 구출할 수 있을까?

★★★☆☆
한국영화 진일보에 일조한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등에서 인간 심층과 사회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내어 주목받았다. <옥자>는 그런 세밀하고 탄탄한 연출 감각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해볼 만한 영화로 추천한다. 또한 ‘어디서나 어떤 기기로든 자유롭게 통신망에 접속하여 갖은 자료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기존 영화와 달리 넷플릭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에서 제작, 배급, 상영된 <옥자>가 어떤 가능성을 열었는지 살펴보자. 영화산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해도 평소 각종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홀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
2007년 뉴욕, 미란도그룹의 후계자 루시 미란다 대표의 취임식 날. 그녀가 초대회장의 비윤리적인 경영 방식과 전 대표인 쌍둥이 언니 낸시의 ‘인류’에 대한 개념조차 없고 골프밖에 모르는 우매함을 비꼬며 연설을 시작한다. 새 시대를 여는 기업 핵심가치로 ‘귀염둥이 슈퍼 아기 돼지 이야기’를 발표하는 그녀의 눈이 희번덕거린다. ‘친환경, 기업윤리, Non-GMO(유전자 변형하지 않은 식품)’ 등을 총망라하며 인류의 생존까지 책임질 어마어마한 프로젝트 ‘슈퍼돼지 콘테스트’ 홍보영상이다. 거기에 대중에게 깨방정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동물학자 조니 윌콕스 박사가 최고 전문가로서 그룹을 대표하는 얼굴로 등장한다. 그가 10년 후, 26개 나라에서 자연전통방식으로 기른 슈퍼돼지 가운데 최고를 선발하여 뉴욕으로 데려오고, 모든 과정은 낱낱이 공개될 것이다.
그들의 혁명적인 발명품 슈퍼돼지는 “크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사료도 적게 먹고 배설물도 적게 배출하고, 맛까지 끝내줘야 한다.”

탐욕의 악독한 두 얼굴
루시와 낸시가 쌍둥이로 나오지만, 사실 한 몸의 두 얼굴을 의미한다. 동생 루시는 기업 경영에 도덕적 결함을 느끼지만, 결단코 탐욕보다 크지 않은 죄책감일 뿐이다. 어쨌든 찝찝한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그럴싸한 ‘쇼 비즈니스’를 강행한다.
반면 언니 낸시는 루시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해결자로 등장하여, 옥자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버린다.
미자 할아버지가 옥자를 팔아넘긴 대가로 받은 ‘황금돼지’를 미자가 옥자를 사는 값으로 내놓자, “미란도 슈퍼돼지의 첫 구매자로군. 거래 즐거웠어”라며 흔쾌히 황금돼지를 챙겨 돌아선다.
루시가 악독한 탐욕을 은폐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낸시는 ‘어쭙잖게 쇼하지 말고 무슨 짓이든 돈만 벌면 끝!’이라고 본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쇼하고 있네
우리나라도 ‘살충제 계란 파동, 공장식 밀집 사육’ 등으로 시끌벅적했는데, 영화는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심각하게 훼손된 자연환경과 생명의 존엄성을 얼마나 얄팍하게 처리하는지 조롱한다. 즉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주요 작동방식은 “쇼 비즈니스(show business, 오락산업)”라는 것.
인류 생존을 책임지는 기업으로서 가상세계를 만들고,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황홀한 쇼가 이어진다.
루시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기업의 비윤리성, 착취 구조, 탐욕으로 추악해진 얼굴을 다른 얼굴로 바꾸려고 한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류애적인 기업 이미지 세탁이 이루어지는 구조와 그 현장을 비꼬는 장면을 보면 ‘쇼하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를 사랑해주세요
변종 슈퍼돼지가 귀여울 리 만무하지만,
‘옥자’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친근감이 더해졌고, 특유의 따뜻하고 귀여운 행동으로 호감 가는 캐릭터로 완성되었다. 더 나아가 미자가 옥자를 자매처럼 사랑하듯이 우리도 그런 사랑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산업화 사회에서 이런 캐릭터에 대한 ‘사랑’은 적극적인 ‘소비 행위’로 촉진, 강화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귀여움을 알게 모르게 소비하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젊음, 풋풋함, 사랑스러움을 붙잡고 싶은 심리가 소비하고 즐기고 절망하는 행위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 구조로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 <옥자>도 그런 틀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의식하면서 계속 비아냥거린다.

조롱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해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조롱이 후련하다기보다 뭉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조롱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을 ‘구경’만 하도록 내버려 두고, 냉소적인 결말로 끝내버린다.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믿으며 계속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농담’으로 본다. 그 모든 것이 허상이기에 오로지 그 더께를 벗겨내는 일만 남았다고, 어쩌면 그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일 거라고 혼잣말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추악한 현실을 살지만, 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기 원한다. 정답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달콤한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당장은 실패해도 일종의 균열, 추악한 세상에 균열이 생기는 지점을 보고 싶다.

한창욱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과정 수료. 현 숭례문학당에서 영화 관련 강의와 모임 운영 및 저술 활동 중. 공저로 『책으로 다시 살다』, 『당신은 가고 나는 여기』, 『이젠, 함께 쓰기다』, 『스탠리 큐브릭』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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