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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무쇠 한스와 떠나다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7-10-26 17:24:28.0 조회수 109 연월 201710




독서여행1
출처 로버트 블라이 『남자의 책 무쇠 한스 이야기』

왕이 있었다. 그는 사냥꾼에게 거대한 숲에 들어가 사슴을 잡아 오
라고 보냈다. 그러나 사냥꾼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실종된 사냥
꾼을 찾으러 두 명을 보냈으나 그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셋째 날 왕
은 모든 사냥꾼에게 “세 사람을 찾아오라”고 명령했지만, 역시 누구
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아무도 감히 숲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몇
년 뒤 한 사냥꾼이 나타나 숲으로 들어가겠다고 나섰다. 왕은 허락
하지 않았지만, 그는 두렵지 않다며 개를 데리고 숲으로 갔다. 얼마
안 가서 개가 짖으며 깊은 연못까지 달려갔는데, 연못에서 손이 올라
오더니 개를 움켜잡고 들어가 버렸다. 사냥꾼은 성으로 돌아가 장정
을 데리고 와서 연못의 물을 한참 퍼냈다. 그 바닥에 녹슨 쇠처럼 붉
은 털로 뒤덮인 거인이 누워 있었다.
장정들은 거인을 꽁꽁 묶어 성
으로 데려왔다.

왕은 거인을 철창에 가두고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엄명했고 열쇠를
왕비에게 맡겼다. 어느 날, 그의 여덟 살 난 아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철창 안으로 공을 떨어뜨렸다. 소년이 공을 달라고 했지만, 거인은 문
을 열어 줘야 돌려주겠다고 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는다
며 달아났다. 셋째 날 왕이 사냥을 나가고 소년이 와서 “열쇠가 없어
요”라고 말하자 거인은 “열쇠는 어머니 베개 밑에 있다. 어서 꺼내 와”
라고 말했다. 소년이 달려가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려고 애를 쓰다가
손가락을 찧었다.
거인은 문이 열리자 공을 건네주고 나왔다. 겁먹은
소년이 “아저씨가 없어진 걸 알면 난 얻어맞을 거예요!”라고 외쳤다. 거인이 돌아서더니
소년을 어깨에 태우고 숲으로 데리고 갔다. 거인이 소년에게 말했다. “이제 넌 부모를 다
시는 볼 수 없지만, 내가 너를 보살피마. 나는 누구보다 부자인 한스니까.”

그가 아침이 되자 소년을 데리고 샘으로 갔다. “너는 황금 샘 속으로 무엇이 떨어지지 않
나 잘 지켜봐라. 무엇 하나라도 들어가면 못 쓰게 되거든. 저녁마다 와서 확인하겠다.” 소
년은 연못을 살펴보다가 다친 손가락이 쑤셔서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물속에 넣었다.
황급히 손을 뺐지만 손가락은 이미 황금으로 변했다.
그날 저녁 한스가 “손가락을 적셨
구나! 한 번은 그냥 넘어가지. 다시는 그러지 마라”고 했다. 다음날, 소년은 가만히 연못
가를 지켰다. 그러나 잠시 후 머리를 쓸어 올리다 머리카락 한 올이 물속에 떨어졌다. 건
져 올렸지만, 머리카락은 이미 황금으로 변했다. 한스가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아차렸다. “한 번만 더 샘물을 욕되게 하면 너는 나와 같이 지낼 수 없다.” 셋째 날 소년은
물 위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다 눈을 똑바로 보려고 몸을 숙여 긴 머리가 물에 빠졌다.
황급히 머리를 젖혔지만 머리가 온통 눈부신 태양 같은 황금으로 변했다.

소년은 놀라 수건으로 머리를 감췄는데, 한스가 “너는 여기 머물 수 없다. 세상으로 나가
라. 가난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거다. 나는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어려울 때마
다 “무쇠 한스”를 부르면 도와주러 가겠다.”
그래서 왕의 아들은 평탄한 길과 험한 길을
걸어 큰 도시에 이르렀고 소년은 궁궐에 가서 일자리를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요리사가
그를 데려다 나무와 물을 져 나르고, 석탄재 치우는 일을 시켰다.

 

소년,
무쇠 한스와 떠나다

서동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취재 글 김문영 / 사진 김승범



우리 독서여행은 ‘왕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무쇠 한스를 만나고, 그와 함께 길을 떠나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어머니의 품에서 아버지의 세계로, 결국 ‘진정한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나에게서 떠나야 진정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신비한 여행이다. 저마다 깊은 사연을 안고 오르내린 인생길을 이해할 수 없다면 진정한 나와 너, 우리를 찾기란 어렵다. 서동은 교수와 함께 한 소년이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여덟 단계의 여정 가운데 1~3단계의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Q1 신화가 현대를 사는 우리 삶에 무슨 영향이 있을까요? 곰이 백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인내’를 얼마나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해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속담도 수없이 듣고 자랐다. 신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 가족과 사회, 민족, 문화를 이해하는 길이다. 고대로부터 이야기는 끊임없이 전해졌고, 시대에 따라 각색을 거치면서 삶을 풍성하게 하는 재료로 쓰인다. 신화는 삶의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지, 책상머리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해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여행이다.

Q2 책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남자의 슬픔과 그늘’을 본다. 남자의 가치가 경제능력에 따라 매겨지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남자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는지 분석했다. 그는 “산업지배 체제에 남녀 모두를 속박하는 불구의 신화”를 간파하면서 새로운 신화를 모색한다.
저자는 “여자 안에 있는 남성다움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남자의 가슴에 있는 현을 공명시킬 수 있는 ‘남성다움이라는 말’을 정의 내리고, 남자 안에 있는 여성다움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여자의 가슴에 있는 현을 공명시킬 수 있게끔 ‘여성다움이라는 말’을 만들기 위해” 책을 썼으며, “남자든 여자든 어디선가 ‘인간다움’의 특성이 들릴 때 온 가슴을 전율시키는 나지막한 현이 있다는 사실, 그 인간다움의 특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펄펄 뛰는 감수성을 되찾는 일”이 절실하다고 보았다.

Q3 소년이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여덟 단계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베개 밑에서 열쇠를 훔친 소년, 야성인의 목말을 타고 떠나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본문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야성인을 찾아서 : 저자가 주장하는 ‘남성의 야성’이 일깨워지는 장면이다. 연못을 파헤쳤을 때 발견한 털북숭이 거인이 ‘야성인’인데, ‘야성’ 하면 포악하고 잔인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저자는 야성을 ‘도량, 관대함, 총명, 자발성’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야만인은 ‘어디가 다쳤는지 진찰하지 않고 치료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상처를 돌보지 못하니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없는 사람이 야만인이다. 반면 야성인은 ‘상처를 진찰하고 회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살피고 가꾸는 ‘생명력’과 연결된다. 저자는 이제 ‘유약하고 부드러운 남자, 귀여운 소년’을 선호하는 시대의 이면을 비판하면서 야성성의 부활을 시도한다.

물을 퍼내라 :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물을 퍼내는 작업을 누구나 다 하지 못한다. 모른척하거나 지나쳐가거나 도망간다. 물론 자기 관심 분야에 따라 물 퍼내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만, 낯설고 어색하고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쉽게 도전하기 어렵다. 전에 몰랐던 정보나 지식, 경험 앞에서 멈칫하는 태도가 그렇다. 연못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물을 퍼내는 작업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점이다. 찾고자 해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공을 잃어버린 소년 : 왕의 아들이 가지고 놀던 공이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소년의 공은 ‘내가 모르고 있는 나의 소중한 가치’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소년이 ‘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지점’을 ‘소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첫 단계로 본다. 이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를 의식한다. 부모의 품에서 살던 소년이 봉착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무쇠 한스는 그냥 공을 내주지 않고 ‘자기를 풀어주면 공을 돌려주겠다’고 하니, 소년은 더욱 심란하다. 이야기에서는 단 하루지만, 현실에서는 공을 돌려받기 위해 10년, 20년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고, 아예 못 찾을 수도 있다.

어머니 베개 밑에서 열쇠를 훔쳐라 : 소년이 공을 찾으려면 어머니의 베개 밑에서 열쇠를 훔쳐야 한다. 애착관계에 있는 어머니의 은밀한 공간에서 열쇠를 훔쳐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제가 주어졌다. 금기를 깨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심기가 불편한 게 사실이다. 우리 시대 문화기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평생 부모의 지원 아래 살 수 있다면 ‘복 받은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인간으로서 성숙을 향한 첫 걸음부터 발목 잡힐 가능성이 크다. 자녀가 부모 품을 떠나기 쉽지 않고, 부모도 떠나보내기 뼈아픈 일이지만, 아이가 독립할 기미가 없으면 엉덩이라도 뻥 차내야 한다. 적당한 일탈은 어느 정도 모른척하고, 바로 잘잘못을 따지고 야단치기보다 그 일을 통해서 아이가 얻은 게 무엇인지, 잃은 것은 무엇이고 느낌은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면 아이가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면서 독립군으로 성장하는데 격려 받는다.

야성인의 목말을 타고 떠나라 : 어머니와 결별 후, 아버지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데 소년은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다. 아버지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그 대체물을 찾아 나선다.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해줄 어른 남성, 멘토를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어머니의 세계와 결별하기 어렵다. “융의 심리학에 따르면 자신의 남성됨에 대하여 여성의 시각, 즉 어머니의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의 『아버지 없는 사회』를 인용하여 부자관계의 위기를 말한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낮에 그리고 일 년 열두 달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면 아들의 영혼에는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은 사악하다고 속삭이는 악마들로 채워진다(59쪽).” 아버지를 보다 정확히 보고 다가가려는 생물학적 욕구는 40~45세 정도에 생기는데 그는 지금껏 받았던 남자에 대한 시각을 던져버리고 ‘아버지가 무엇이고 남성됨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페르소나와 그림자 : 전체적 맥락에서 저자는 융의 심리학용어로 ‘드러난 페르소나 (가면을 쓴 인격)와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그림자를 통합해야 한다’는 점을 견지한다. 내 안에 아버지의 숨겨진 그림자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그림자를 배제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림자를 수용할 때라야 성숙한 인격을 이룰 수 있다.

Q4 두 번째 단계입니다. “소년의 상처가 황금으로 변하고, 거울을 응시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장면”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상처가 황금으로 변할 때 : 모든 삶의 과정에 상처가 수반된다. 상처는 욱신거려서 물에 담그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상처가 있는 곳이야말로 그의 비범함이 있는 곳이다(90쪽).”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는데, 상처였던 일이 지금은 아닐 때가 있다. 어떤 이의 행동과 말이 상처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내가 막상 그의 입장에 서게 되면 그를 이해하고, 양쪽 입장을 통합하는 시선이 생긴다. 사태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의 도약이다. 그때 내 안의 상처도 삶의 일부분으로 보듬는 품, 방(room)이 만들어진다.

거울을 응시하는 사람 : “자기의 다른 절반, 그림자, 숨은 사람을 알게 된다. 그 숨은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통과의례의 참된 목적이다(103쪽).” 나는 타자, 바깥을 응시하면서 나를 발견한다. 나는 타자를 향해 바깥으로 나갔다가(원심),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면서(구심) 일대 자각이 일어난다. 탈무드의 ‘굴뚝 청소부 이야기’를 보면, 두 소년이 굴뚝을 청소하고 나왔다. 하나는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나왔고 다른 소년은 묻지 않았다. 누가 얼굴에 묻은 검댕을 씻으러 갔을까? 얼굴에 검댕을 묻히지 않은 소년이다. 상대를 거울삼아 자기 얼굴을 보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흩어지는 구름을 바라보며 자신을 응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사람들을 본다. 인간 갈등의 대부분이 자기중심성의 충돌이다.

세상으로 나가라 : 알을 깨고 나와야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 한스도 자기 품에 소년을 가둘 수는 없다. 엄마의 세계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그런 사랑이 필요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위험하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붙는다. 아들은 그런 조건이 싫지만, 그런 사랑이 없으면 자기애에 빠져 살게 된다. 아버지의 조건을 수용해야 자기 성취에 힘쓸 수 있다. “야성인의 임무는 소년에게 자신의 남자다움이 얼마나 풍요로우며 다채로운지를 가르치는 것… 어른의 임무는 소년, 소녀에게 그들이 단순한 살덩어리와 피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109쪽).”

Q5 세 번째 “재와 하강과 슬픔의 길”입니다. “너는 황금에 대해선 많이 알지만 가난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너는 올라가는 데 대해선 많이 알지만 내려오는 데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가난, 내려오는 길에 대해서 : 소년은 세상에 나가자마자 ‘부엌’으로 내몰린다. 나는 독일 유학시절, IMF가 와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야 했다. 머리로만 살아왔는데, 손과 발을 써야 하는 상황에 처음에는 굴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점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다. 하강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삶의 비극과 어두운 측면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강의 경험이 없는 남자, 퇴각해 보지 못한 남자, 비탄에 빠져 충분히 재의 길을 걸어보지 않은 남자는 “전망 없이 살고, 이상한 자기 고립 놀이를 무심결에 즐기고, 달걀조차 병아리로 키우지 못하고, 교묘하게 거짓말하고, 배반하고, 기만하며, 수동적이고, 무감각하다(120~125쪽 참조).”

슬픔을 일구라 : “구약의 정의로운 인물 욥은 지난날 안락하게 살았던 욥의 죽음을 선포하기 위해 자기 얼굴을 재로 덮었다. 살아있는 욥은 죽은 욥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죽음, 상실, 병, 광기, 가난, 무기력, 불행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불어넣기 위해 쇼핑센터와 위락시설을 짓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그늘진 구석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는가? 디즈니랜드는 재의 반대말이다(146쪽).”
욥처럼 “소년은 자기의 슬픔을 일구어야 한다. 슬픔을 일구고 상처를 파고들다 보면 그는 자기 아버지도 똑같은 슬픔과 상처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영혼이 손에 와 닿는다. 일단 감각이 살아나면 그는 아버지의 상처를 냄새 맡을 수 있다. …아버지의 세계로 가는 것과 어머니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단순한 소년, 안일만을 좇는 소년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157쪽).”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통렬하게 맞닥뜨리지 않으면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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