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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대와 왕에 대한 갈망
작성자 송현영 작성일시 2017-10-26 17:19:06.0 조회수 109 연월 201710




독서여행 2
출처 로버트 블라이 『남자의 책 무쇠 한스 이야기』

우리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왕은 옛날에 살해되었다. 편안히
눈을 감는 왕은 없다. 그는 쓰러져 죽는다.
야성인의 숲을 떠나 다른 궁전의 요리사 밑으로 들어간 소년은 부엌
에서 요리사의 일을 돕는다. 어느 날 일손이 없자 요리사가 소년에게
왕의 식탁까지 음식을 나르라고 명령했다. 소년은 황금 머릿결을 숨
기고 싶어서 작은 모자를 쓰고 왕 앞에 나간다.
왕은 “내 앞에 올 땐
모자를 벗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소년은 “전 그럴 수 없습니다. 제 머
리에 심한 종기가 났거든요”라고 말했다. 화가 난 왕은 요리사를 불러
호되게 나무란 다음 당장 내쫓으라고 명령했다.

요리사는 소년을 정원사의 조수로 보냈다. 소년은 정원에서 나무를
심으며 물 주고 땅을 일구고 나무와 꽃을 가꾸며 사나운 비바람과 싸
워야 했다.
여름이 되어 혼자 일하다 너무 더워서 선선한 바람을 느끼
고 싶어 모자를 치켜 올렸다. 태양빛이 머리에 닿자 소년의 머리는 눈
부시게 타올랐고 그 빛은 곧바로 공주의 방에 가서 박혔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려고 공주가 일어나 밖을 내다보다가 소년이 보이자 말
했다. “얘, 꽃을 한 아름 가져다주렴.”
소년이 모자를 쓰고 들꽃 야생화로 꽃다발을 만들어 계단을 올라가
다, 정원사와 마주쳤다.
“그리 흔해빠진 꽃을 공주님께 바치려고?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바
꿔오너라.”

소년이 “아니에요, 공주님은 짙은 향기를 뿜는 야생화를 더 좋아하실 거예요.”
소년이 방에 드니, 공주가 말했다. “네 모자를 벗으렴. 내 앞에서 그걸 쓰면 못써.”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 머리에 심한 옴이 있어서요.” 하지만 공주는 그의 모자를 낚아
채 확 잡아당겼다. 그 순간 소년의 금발이 어깨 위로 출렁 내려덮었다. 매우 수려하고 아
름다운 모습이었다.

뛰쳐나가려는 소년을 붙잡아, 공주가 금화 한 줌을 건네주었다. 금화를 받은 소년은 정원
사에게 가져갔고 아이들에게 주라고 했다. 다음날 공주는 소년을 불러 더 많은 야생화를
가져오라고 했고 소년이 꽃을 가지고 들어가자 손을 뻗어 소년의 모자를 찢어버리려했
다. 소년이 한사코 버티자 다시 금화를 주었지만, 소년은 이번에도 정원사의 아이들에게
주었다. 셋째 날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소년의 모자를 벗겨내지 못했고 소년은
금화를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 없는 세대와
왕에 대한 갈망

박성덕 정신건강의학전문의·연리지부부가족연구소장
취재 글 송현영 / 사진 김승범



숲을 떠난 소년은 궁정 요리사의 보조로 왕 앞에 나가지만 곧 정원으로 쫓겨나간다. 정원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만난 소년의 인생 여정 4, 5단계를 박성덕 소장과 따라가보자. 아버지 없는 세대의 굶주림은 우리 안에 어떤 그늘을 드리우는지, 아버지의 부재로 제대로 된 통과의례를 겪지 못한 소년이 어떻게 성숙한 남자로 거듭나는지 집중해보았다.

Q1 소년이 남자가 되기 위한 인생 여정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야성인의 숲을 떠나 궁에 들어가 새로운 왕을 만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속의 왕은 살해되고 : 무쇠 한스 이야기는 인간이 자신의 지표, 인생의 본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부재로 생긴 상처를 메우기 위해 한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인생 과정을 동화를 빌어 풀이했다. 저자는 남성의 통과의례 4단계를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왕은 옛날에 살해되었다”는 말로 연다. 이는 삶을 이끄는 지표이자 나침반이 사라져버렸다는 뜻이다. 나는 왕이 사라진 배경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왕정과 가부장 사회의 몰락 후 산업화 사회의 아버지는 생계에 얽매여 자신의 일에서 가치를 갖기 어려워졌다. 남자는 일에서 자존감을 얻는다.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한 아버지들이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니 자녀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 가정보다 돈이라는 가치를 좇아 자신을 상실한 아버지는 집에 있어도 자기 역할을 다 하지 않고 ‘누구의 아버지도 아닌 이 Noboddady(169쪽)’가 되어 아들을 더 외롭게 하고 분노를 심어준다. 가치가 몰락한 사회, 왕이 사라진 사회는 아버지의 부재를 더욱 부추길 수밖에 없고, 아들은 아버지의 부재, 결핍을 더 민감하게 느끼고 힘들어 한다. 현대인들이 유례없는 정신적 공황을 겪는 것도 사라진 왕, 아버지의 부재가 이유다.

소년은 궁정에 들어가 : 저자는 “아버지의 노동을 보며 새로운 주파수에 맞추는 기회를 갖지 못한 남자는 평생 아버지에 굶주려 살아간다(165쪽)”고 말한다. 아버지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자녀는 부성을 못 느낀다. 남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니 삶의 지표, 원천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아버지는 일하며 창조적인 능력, 강인함과 부드러움, 세상을 꿰뚫는 안목과 다양한 경험을 보여주고 지혜와 지식, 기술도 물려준다. 그런데 산업화 사회에서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고 아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늘 지쳐있고 집에서 짜증만 내니, 부성애에 굶주린 아들들은 젊은 나이에 술, 여자, 게임, 도박 등 중독에 빠지거나 기성세대를 불신하고 자기 또래에게 어처구니없이 관대해져 속임수나 모욕을 용납한다.

Q2 왕 앞에 나갔지만 모자를 벗지 않은 소년은 결국 정원으로 쫓겨납니다. 우리는 왜 왕을 찾을까요? 내면의 왕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왕을 찾아서 : 몇 년 전 개인 연구소를 설립할 때 큰일 하나가 틀어지며 엄청난 여파가 몰려왔다. 혼자 감당하기 무척 버거웠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때 한가지만 떠올랐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결을 바라지 않아도 그냥 동네에서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아버지가 그리웠다. 남자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어머니나 아내가 메워줄 수 없는 존재감이다. 아들은 영혼의 허기와 분노를 달래고 정신적 공황을 메울 대체제, 왕을 찾아 이리저리 떠돈다. 굶주린 남자는 늘 외부의 칭찬과 인정에 연연하고 여기서 희망을 가지려하기 때문이다.

모자를 벗지 않아 정원으로 쫓겨나고 : 소년은 아버지의 궁이 아닌 다른 궁의 요리사 밑에 들어가는데 아버지의 가르침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을 때 자존감을 갖는다. 스스로 가꾸며 내 일을 익히는 과정은 남자의 자존감을 세우는 데 참 중요하다. 아버지에게 배운 적이 없는 소년은 아버지를 만족시킬 기술이 없어 삶의 무대에서 물러난다. 왕 앞에서 모자를 벗지 않아 쫓겨난 것은 자신을 떳떳하게 보여 줄 수 없어 관계에 실패한 것이다.
명문대에 갔지만 방에서 게임만 하는 청년을 상담했는데, 엄청난 분노가 있었다.
‘아버지가 일만 좋아했으니 아버지가 번 돈은 내가 다 써서 없애겠다’ 하는데 매일 고함치는 폭군 같은 아버지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분노만 쌓여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수치심에 시달린다. 그들의 특징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며 결단해야 할 때 망설이는 결정 장애가 나타난다. 가정에서 진정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좋은 상대를 만나도 사귀기 두렵고 판단력이 흐려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 신뢰하는 권위를 따를 때 소년이 남자가 되어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데, 이를 거치지 못하면 가정에서 아내에게 기대며 가장의 역할을 못해 갈등을 빚는다.

신성한 왕 세속의 왕 : “신성한 왕은 질서와 공간이 원천, 창조하고 축복을 내리는 영원한 왕이다. 전통사회에서 세속의 왕은 신성한 왕을 대신하는 권위를 일컬었다(181-184쪽 참조).” 왕이 사라진 시대의 아버지는 신성한 왕처럼 자녀를 축복하고 혼란한 시대를 다스릴 도덕적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신성한 가치, 질서, 창조, 축복을 잃어버리고 물질주의에 빠져 잘못된 가치를 좇고 가르치니 아이들이 권위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 가부장제를 다시 되살리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굶주리고 있음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왕을 찾아 나서기가 어려워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봉착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사실 왕의 부재다(202쪽).”

내면의 왕을 살리려면 : 나는 내면의 왕이 자존감이라고 본다. 요즘 아버지 때문에 인생 망쳤다고 원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은 그들 안에 내면의 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면의 왕을 살리려면 먼저 나를 이끌 나침반 즉 삶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세밀하게 들여다 보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위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돌아봐야 한다. 특히 내 마음에 아버지를 위한 방이 없다면, 관계가 나쁠 수밖에 없다.

마음속 아버지를 위한 두 개의 방 : “항상 옳기만 한 일은 없듯, 항상 좋기만 한 아버지는 없다(194쪽).”우리 아버지들도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아버지의 부정적인 기억을 수용하고 아버지도 몰랐던 내면의 왕, 긍정적인 기억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아버지를 부정하면 분노 아니면 단절이다. 신성한 내면의 왕을 살릴 수 없다. 이때 나의 작은 감정이라도 호응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스승이나 멘토가 있어야 힘을 얻고, 공감하고 지지할 사람이 있어야 내면이 자란다. 이런 논리에 공감하는 남자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자주 마련해보자.

Q3 아버지의 어두운 그림자를 위한 방을 마련하지 못한 아들들을 위해 아버지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고 싶나요?

일의 가치를 보여주라 : 저자도 “우리 사회에선 아들이 아버지의 남성적인 면에 대해 편견을 갖도록 부추기고, 아버지의 관대한 발언에서 이기적인 이유를 찾아내고, 아버지 또한 여느 남자처럼 늑대라고 믿게끔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198쪽).”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아버지 부재의 원인을 시대의 흐름 속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았다. 존경할 만한 스승이 사라지고 소년을 남자로 성장시킬 아버지가 사라지는 사회는 암울하다. 수많은 전통 사회에서 나이 많은 어른이 남자 아이를 보살피듯 아들들을 보살피고 남자의 세계를 맛보게 해줘야 한다(201쪽 참조).
책을 읽으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상담하는 나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직업을 아이들에게 가치있게 소개할 수 있나? 어떤 가치를 지녔나? 성인인 두 아들에게 이 일의 가치를 더 많이 이야기해줘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일을 선택할 때, 건강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지 좀 더 고려해보라고 해야겠다. 또 망설이며 결단하지 못할 때는 아버지로서 조언하고 함께 고민하겠다.

일상의 복원 : 이제 아버지들이 귀가하면 TV는 꺼두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자. ‘오늘 힘들었어’ 하고 아내와 대화하면 한결 마음이 가라앉고 힘이 된다. 그런데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워하고 공감할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들은 대화를 꺼리고,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적 구조 역시 허술한 점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게다가 유교주의 가부장제도가 통치집단의 구미에 맞게 이용되면서 오랜 시간 남자가 큰소리치고 가족 위에 군림해야 남자답다고 오해하게 했다. 사랑없이 도리만 강조하면 가정은 내면의 왕을 가꾸는 안식처가 되기 어렵다.
밖에서는 전사처럼 일하고, 집에서는 아내, 아이들과 일상을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자! 아버지도 가족에게 위로받고 사랑받아야 건강하게 설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남자들의 고독사, 자살이 늘어난 것도 일만 하다 가족을 등한시하고 관계가 깨어진 가장의 슬픈 현실이다.

Q4 다섯 번째 여정에서 소년은 정원을 가꾸다 공주의 눈에 띕니다. ‘정원에서 만난 경이로운 여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담을 두른 정원 : “피난처이며 산산조각 난 믿음을 회복하는 자리, 내부로 가라앉는 시간(211쪽)”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 바깥에서 돌아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말한다. 소년은 정원에서 자신과 누군가를 돌볼 준비를 갖춘다. 일정 시간 자신을 가꾸기 위해 전문 기술을 익힐 때 사람은 즐겁다. 누구나 자기만의 정원을 갖고 싶어한다. 사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정원에서 일어난다. 내가 찾고 가꾸는 일이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은 일의 소중함을 느끼는 때다. 그런데 “완
벽주의자는 정원을 못 가진다. 강박 때문에 시들고 수치심이 많은 이는 자기감정을 불신해서 … 잡초와 화초를 모두 꺾는(219쪽)” 것처럼 강한 아버지 밑에서 의무감을 강요당한 남자는 하나에 집착해 다양하게 볼 수 없고 섬세한 감정을 가꾸지 못한다. 밖에서 과업을 수행하던 남자도 집에서는 가족의 작은 감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금발 여인과 달콤한 혼돈 : “신화를 상실한 현대인이 걸핏하면 살아있는 여자와 금발 여인을 혼동하듯(222쪽)” 이상형 금발 여인에 집착하는 남자는 자기 안의 정원을 갖지 못하고, 자기 내면을 볼 줄 모르는 남자다. 남자가 만나야 할 여자는, 왕은 몰라보았지만 소년의 금발, 내면을 알아본 공주와 같은 여자다. “내면의 가치를 향해 단호한 발걸음을 내딛는 여성… 야성, 성숙한 남자의 세계를 볼 줄 아는 진실로 빛나는 존재(228쪽)”를 사랑해야 한다. 소년은 금화를 얻지만 모자를 벗지 않는다. 아직 때가 안된 것이다. 자기 안의 정원을 가꾸다 보면,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고 연인과 멋진 춤도 추게 된다(233쪽 참조).

왜 공주는 야생화를 좋아할까 : 남자의 남성다움은 여자를 통해 잘 이해된다. 공주는 소년의 모자를 낚아채 금발을 드러내는 경이로운 존재다. 공주의 야생화는 짙은 향기, 본질에 충실하다. 그녀는 남자들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규칙, 명령에 순응하느라 잃어버린 야성, 길들여지지 않은 본성을 깨우는 존재다. 삶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꿔가느냐 하는 과정도 몹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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