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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 가운데 외치는 소리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7-10-26 16:55:10.0 조회수 102 연월 201710




어두움 가운데
외치는 소리

김복동 서양화가

취재 글 김문영 / 사진 김승범



예술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는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현대예술의 사명은 현재 지배하고 있는 폭력 대신 신(神)의 세계, 즉 우리 모두에게 인간의 최고 목적으로 간주되는 사랑의 세계를 건설하는 일”로, 프랑스 소설가 로맹가리는 “나는 오로지 하나의 걱정밖에 없다. ‘포착.’ 세계를 포착하고, 나의 인물을 포착하고, 독자를 포착해서 나와 함께 끌고 가서 강렬하게 살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삶과 인간에게 신성한 것을 옹호하는 것”이라 했다. 인간에게 예술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디고, 아름답고도 추한 나와 너, 세계를 포착하고, 뜨겁고 강렬하게 살아가는 분투다. 주목할 것은 예술이 인간의 현재, 오늘의 삶에 다양하게 응답한다는 점이다. 오늘이라는 삶의 자리에 무감각한 예술은 별로 우리에게 해 줄 말이 없으며, 허공을 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은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성’을 유감없이 구현하며 인간 문제를 포착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이에 바로크 시대 대표적 화가 ‘카라바조’와 ‘조르주 드 라투르’의 성화(聖畵)를 현대적 요소로 재해석한 작품 ‘구원 시리즈’로 주목받는 김복동 작가를 만나보았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꿰뚫는 명화의 생생한 감각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의 그림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깊은 어두움 가운데 촛불 하나 밝혀진 것이다.

김복동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 과정. 규랑문화재단 2014년 우수작가 ‘규랑상’ 수상, 금보성아트센터 2016년 ‘올해의 우수작가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목우공모미술대전, 한국수채화공모전, 서울미술대전, 무등미술대전, 울산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 바로크시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와 프랑스 조르주 드 라 투스 등의 성화들을 현대적 요소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대표적. 2017년 ‘구원’을 주제로 개인전 다수. 1999년 서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후 한일작가 5인 초대전, 한국·프랑스 작가 7인 초대전, 일본 순회 개인전,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초대전 등에서 활약.



Salvation 2014-5 oil on canvas & wood, 290.9×193.9cm / 라투르의 ‘목수 요셉과 어린 예수’와 기도하는 현대여성을 재구성함.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화면 중심에는 365개의 나무 조각들이 퍼즐처럼 십자가를 이뤘다. 매순간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구원의 빛을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한 작품.

2005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그해, 유명애 수채화가님이 프랑스로 미술선교를 다녀오자고 권하셨는데, 평소 존경하는 분이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파리 주택가 골목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현지 유학생들이 연주회도 마련했다. 공연과 전시를 즐기러 온 프랑스인들이 교회 안을 꽉 채웠고,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잔잔한 감동을 나누었다. 그리고 교인 중 한 분이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보베이지라는 작은 마을에 농가를 구입하여 ‘로뎀의 집’이라는 펜션을 지었다. 유학 온 한국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언제라도 와서 편히 쉬라고 마련한 집인데, 우리가 가서 예배실과 갤러리 공간을 꾸미는 작업을 맡았다. 그곳 풍경을 담은 그림도 그려 한 점씩 기증하고, 오픈식에 마을 주민을 초대했는데, 시골이라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 많은 분들이 오셨다. 오래된 성당의 주임 신부님도 초대받아 오셔서 한국 크리스천들이 작은 마을까지 와서 예술 활동하는 것을 보시고 감명을 받으셨다. 그렇게 나는 미술 선교 일정 가운데 나의 재능을 어디에 써야 할지 마음에 새겨두었다.
일정 마지막 날, 우리를 안내하던 박신호 선교사님이 “화가들이 프랑스까지 왔는데, 루브르박물관은 꼭 가봐야 하지 않아요?”라고 해서 모두 박물관으로 향했다.

Salvation 2014-6 oil on canvas & wood, 290.9×193.7cm / 라투르의 ‘저주하는 욥의 아내’ 와 고난 받는 남성을 재구성함. 오른쪽 남성은 김복동 작가의 선배 화가로, 군복무 중 폭발물 사고로 한쪽 눈과 한쪽 다리를 잃고, 후유증으로 매일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고통을 견딘다. 그런 중에도 열정적으로 그림 작업을 하고 있어 주변에 귀감이 되고 있다.

라투르의 방에서 만난 숭고한 빛
이쯤에서 프랑스에 오기 3개월 전으로 돌아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당시, 어느 날인가 EBS TV방송을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화면에 루브르박물관이 나오고 이어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라는 화가의 <목수 요셉과 어린 예수>
라는 그림이 등장했다. 짧은 순간, 그의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방송은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로 프랑스에서 400년 동안 묻혀 있다가 1960년대에야 발굴되어 루브르박물관에서 공개했는데, 작품이 전시되자마자 관람객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런 일이 있고, 프랑스를 향했던 것이다.
일행과 서둘러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바로 그 ‘라투르의 방’을 발견했다. 40여 평 되는 공간에 10여 점 남짓 작품이 걸렸는데, 거기에 <목수 요셉과 어린 예수> 원화가 있었다. 촛불을 든 어린 예수의 환한 얼굴과 그를 바라보는 요셉의 눈동자가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어 숭고한 빛을 발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영성은 더욱 깊고 고요하게 빛난다. 내면에서 무언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수십만 점이 걸린 박물관에서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볼 여유가 없는데, ‘촛불의 화가’라 불리는 라투르의 원화를 마주한 순간 전율을 느꼈다. <저주하는 욥의 아내>를 볼 때는 붉은색의 강렬한 색감이 가슴에 박히는 듯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잊지 못할 감동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와 라투르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자료를 찾다보니, 라투르가 영향을 받은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카라바조(1571~1610)였음을 알게 되었다.



Salvation 2015-14 oil on canvas & wood, 160×130cm /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과 순수한 어린 소녀의 기도를 대비하여 재구성한 작품

예술의 진정한 사명을 외치는 자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이후 화려한 기교에 빠져 구태의연함을 벗지 못한 미술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김상근 교수의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에 따르면, 카라바조는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재편한 인물’ ‘테네브리즘(Tenebrism, 명암대비 화법)의 창시자’ ‘평범한 풍속을 화폭에 담아 진정한 성스러움의 의미를 재평가’ ‘현실을 비틀어서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비출 수 있는 등불과 같은 예술을 추구’하였다.
나는 특히 카라바조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림 속 다윗과 골리앗의 얼굴 모두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얼굴에서 다윗은 보아도, 골리앗을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환희에 찬 다윗이 아니라 슬픔과 연민으로 일그러진 다윗을 묘사하고, 포악하고 오만한 또 다른 자기 얼굴(손에 든 골리앗의 머리)을 바라보는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작가 자신과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내 안의 골리앗을 보았는가?” 나는 이처럼 강렬한 인상과 대비하여 ‘순수한 어린 소녀의 기도’하는 모습을 곁에 두었다.
문경 작업실에서 6년에 걸쳐 카라바조와 라투르의 작품과 대화하며 ‘구원 시리즈’ 20점을 완성했다. 오늘날 현대미술이 성화를 폄하하는 분위기지만, 내 삶의 목적이 여기에 있으므로 그만두고 싶지 않다. 그저 작품을 위한 작품, 독창성에 대한 강박에 매이기보다 예술의 진정한 사명을 외치고 싶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고. 흙으로 돌아갈 운명을 생각지 않는 인생은 오만에 빠지기 쉽다고. 마음에 우글거리는 우상을 파괴하고 참된 신앙으로 날마다 거듭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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