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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에서 배우다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7-09-25 15:12:48.0 조회수 102 연월 201709




인생학교에서
배우다

백만기 | U3A 분당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취재 글 김문영 / 사진 김승범


일상이 날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생활에 불과할까? 주어진 현실을 담담하게 인정하면서도 항상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그 가능성을 전개하는 사람의 일상에 무미건조한 반복이란 없다. 일상을 새롭게 보는 첫 번째 시선으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지혜’가 넘치는 ‘아름다운인생학교’를 주목해보았다.

사십이 되었을 때 딱 쉰 살까지만 직장생활 하고, 10년 동안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 근검절약하여 돈을 모으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필요한 공부를 하다 보면 무엇이든 구체적인 그림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금융회사에 다니던 삼사십 대, 워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월간<객석> 사옥에서 여는 작은 음악회에 자주 다녔는데, 점차 그런 대안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소원이 간절해져 ‘우선 커피와 와인에 대해서 알아야지, 화랑으로도 개방하려면 미술사 공부가 필요하겠군, 혹시 직접 건물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니 건축도 배워두자’ 하고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꿈을 향한 공부에 몰입하니 뻔하고 지루한 일상이라든가, 너무 바빠서 정신없는 생활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은퇴 후
2004년 분당구 서현동에 국내 최초 만화 단행본 작가이자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 영화감독, 고전음악 해설가로도 유명한 故 신동헌 화백님을 모시고 ‘고전음악클럽 필하모니’를 열었다. 하지만 다음 해 성남아트센터가 생기면서, 이제까지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지역사회에 돌려주자는 생각에 만들었던 필하모니를 내려놓고 또 다른 길을 모색했다. 이후,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다른 봉사자의 경력을 보니 매우 훌륭한 분이 많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활약하던 분들이라 자기 전문성을 살려 봉사하면 좋을 텐데, 너무 단순한 작업만 주어져 봉사 만족도가 낮은 점이 아쉬웠다. 그들의 필요를 채울 방법을 고민하다 영국의 시니어대학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에 대한 기사를 읽고, 우리 지역사회에도 이런 학교가 절실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차곡차곡 성실하게 살아온 노인들의 지혜가 한데 모이면 어떨까? 하여 2013년에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순환 학습의 장으로 ‘U3A 분당 아름다운인생학교’를 열었다. 우리는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 도서관’에서 어느 시절보다 반짝이고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아름다운인생학교는 서로에게 스승인 동시에 제자이다.
개설 강좌만 해도 바이올린, 우쿨렐레, 미술사, 문화답사, 사진, 심리학, 와인클럽, 서양음악사, 부동산 연구,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금융교육 등 30여 개에 달한다. 모두 전문 강사 수준이라서 대충 가르치는 법이 없고, 설렁설렁 배우는 사람도 없다. 스페인어 반은 4개월간 열심히 공부하더니 올봄 스페인 여행까지 다녀왔고, 우쿨렐레반은 성남 다문화센터에서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능동적으로 취미 생활을 향유하니 몸에 좋은 엔도르핀이 솟는 느낌이다.

“어머니는 과일 살 때, 작고 볼품없는 것만 골라서 산다.” 어느 회원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래서 장사하는 분이 매번 안 좋은 과일만 골라 가는 할머니에게 ‘반값만 내시라’ 해도 꼭 제값을 치르고 과일을 사 오신다고 한다. 그분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인생이란 많이 배웠느냐, 못 배웠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할머니는 못 배우셨어도 그런 지혜로운 인생을 살고 계셨다. 우리는 그런 지혜를 배우며 어떻게 살 것인지 자주 이야기 나눈다.

우리 학교에서는 자기 소개할 때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만 이야기하는 원칙을 정했다. 시니어들 모임에 가보면 자기소개 시간에 어느 기업 임원이었고, 무슨 업적을 쌓았다는 과거 행적을 나열하는데, “지금 무엇을 하십니까? 앞으로 무엇을 하시렵니까?” 물으면 대답을 못 한다. 과거 이력에 연연하거나 나이로 서열을 정하려고 하면 모임이 잘 안 될뿐더러 더불어 배우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어떤 분은 앞으로 화가가 되고 싶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이제 그림을 배울 거라면서 ‘의지가 약해질까 봐 3년 후 전시할 장소도 예약해 놨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지가 굳으면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이 주변에 모여들어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노인이 될 것인지
어른이 될 것인지
매일 선택해야 한다.
어른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부단히 온 사람이
진짜 어른으로 살 수 있다

일상, 내가 내쉰 숨을 누군가 마시고 누군가의 숨을 내가 마시면서 산다. 나의 숨결이 아내와 아이들, 내 뒤에 올 누군가에게 미친다고 생각하면 하루를 허투루 살 수가 없다. 나이 오십이면 산 정상에 서 있을 나이일지 모른다. 그 꼭대기에서 자기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면, 두 갈래의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하나는 ‘노인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이 되는 길’이다. 노인은 자기만 아는 사람,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른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노인은 아무 준비 없이도 시간만 지나면 되지만, 어른은 부단히 젊을 때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노인이 될 것인지, 어른이 될 것인지 매일 선택해야 한다. 어른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부단히 온 사람이 진짜 어른으로 살 수 있다.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전문 교육을 받을 때, 임종 전문 간호사가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대로 죽는다. 대체로 의미 있는 일을 해 오신 분들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다”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은 ‘조금 더 있다가’ 하면서 미뤄왔던 작은 소망들을 가장 아쉬워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 가기로 했던 일, 누구를 도와주기로 결심한 일, 조만간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 죽어갔다. 그 작은 일을 지금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은 80세에 이르지만 혼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나이 즉 건강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 만약 60세에 은퇴한다면 자신에게 10년이 남아있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10년이란 세월이 유수처럼 지나갔다.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막연히 살다가 임종을 앞두고 후회하는 일은 적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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