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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7-09-25 14:06:51.0 조회수 163 연월 201709




나는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함석헌 | 베이스 성악가, 인천 계양구청 예술감독
취재 글 김문영 / 사진 김승범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인간 본성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부르짖음이 있다. 고립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그래서 홀로 가두어 두는 것은 가장 잔인한 형벌로 간주된다. 인간의 심연에는 누군가와 친밀해지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의 고립과 공백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의 언어’로 채우려고 노력하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데,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아닌 관객의 사람’이라는 함석헌 감독은 클래식계에서 유례없이 친근한 캐릭터로 사랑받는 성악가다. 2013년 KBS1TV <클래식 오디세이>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동굴 목소리로 A.코플랜드의 익살맞은 민요 “난 고양이를 샀다네”를 한국적 감성으로 불러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5년 ‘우울할 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팬들의 요청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이 이십만 이상 조횟수를 기록하고 계속 퍼져나가, 왕성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계양구청 예술감독으로 ‘찾아가는 스쿨락콘서트’ ‘구민을 위한 오페라 공연’ 등 지역 클래식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마음을 담은 노래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 그에 호응할 때마다 감동은 증폭된다. 무대와 객석이 사랑의 언어로 상호작용하는 동안 잔인한 고립과 황폐한 정신은 물러난다. 어느 삶의 자리든 “내가 누군가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니까 슬픔과 절망도 해맑은 웃음으로 바뀌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의 길에 꼭 필요한 두 가지 ‘선물과 웃음’을 생각해본다.

나의 가여운 아버지
지난 5월,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최근, 어머니에게 주셨다는 7천만 원과 관련하여 어떤 망상에 사로잡히면 몹시 난폭해지셨고, 그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어머니는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지경이었다. 분노 조절에 문제가 생긴 줄로만 알고 약을 처방받으러 겨우 아버지를 모시고 정신과에 갔는데, 의사가 단호하게 ‘바로 입원시키라’고 권했다.
일순간 무언가 파열음을 내며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내 손으로 입원동의서에 사인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죄송할 것 같아서 집으로 모시고 돌아왔다. 의사는 ‘어차피 올 텐데’ 하는 표정이었다. 이틀 후 새벽, 또다시 아버지의 망상 증세로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러 입원하시게 했다.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새벽마다 첫차 타고 나가서 종일 고되게 일하고 들어오시던 아버지. 이제 한시름 놓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면 좋을 텐데…. 아버지를 병원에 두고 집까지 운전하며 돌아가는 동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모두를 위한 선물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이 누그러드신 아버지를 앞으로 어떻게 모셔야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어머니는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아내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고, 두 여동생도 각자 사정이 있으니… 객관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나마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나밖에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다가 문득 ‘내가 우리 집안의 선물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더니 이내 명료해졌다.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상황을 이겨내리라는 믿음이 나를 격려하고 있다.
얼마 전 어린 아들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통영으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다. 예전에 아버지와 여행을 가면 아무 때나 버럭 화내고 갑자기 사라져서 무척 싫어했는데, 이번에는 서로의 다른 점에서 재미를 찾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알뜰하게 보냈다. 가끔 엉뚱한 말씀을 하셔서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속도 상하지만, 하루라도 정신이 맑으실 때 부지런히 좋은 구경시켜드리고 싶다.


웃음을 주라고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국립오페라단 주역 가수로 활약했다. 나름대로 국가대표 성악가로서 묵직하게 자리매김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뜻하지 않게 그만두고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여 안 하던 새벽기도까지 나가서 ‘난관을 헤쳐 나갈 지혜’를 간절히 구했다. 사실 소프라노는 아름답고 알토는 우아하고 테너는 시원하고 바리톤은 남성스러운 데 비해 베이스는 바리톤에 끼어 주목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독창적인 베이스가 될 수 있을까?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웃겨라!’는 단 한 마디 소리가 뇌리에 떠올랐다.
도대체 이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갸우뚱하고 있을 때, 마침 부산시립교향악단으로부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에 사기꾼 약장수인 돌카마라 역이 들어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약장수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굉장히 익살맞은 이탈리아 가사가 거의 랩 수준으로 많고, 부르기도 까다로워서 다시는 이거 안 한다고 진저리치던 노래다. 게다가 한국말로 번역된 가사를 보니 조사에 강박이 붙어 도무지 입에 붙지를 않았다. 어차피 실업자라 시간도 많으니 직접 번역도 하고 공들여 준비해 무대에 섰는데,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이구나! 정말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셨다.

난 고양이를 샀다네
첫 번째 인생 곡을 뒤집은 운명의 노래가 바로 ‘난 고양이를 샀다네’이다. 이 곡은 동물들 울음소리가 재밌는 서민적인 미국 민요로, 2013년 우리 정서에 맞게 수정해서 방송에 나가 불렀다. “난 고양이를 샀다네 저 나무 아래서 길렀네 내 고양인 야옹야옹… 난 마누라를 얻었네 저 나무 아래서 만났네 내 마누란 여봉~ 여봉!(이하 생략)” 촬영하던 분들이 웃음을 참느라 입을 막고 자기 손을 깨물었다(?)는 후문까지 들었다. 그 후, 많은 사람이 나에게 웃기는 역할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나의 재미있는 캐릭터는 이렇게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제 무대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상에서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남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 자연스럽다. 괴로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웃음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가장 나답기 때문이다. 눈물을 모르고 진정한 웃음은 없다. 슬픔과 절망을 농축해서 짜내면 근사한 웃음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지난번 요양원으로 봉사 연주회 갔을 때 한 할아버지가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째려보고 계셨다. 왜 저러실까? 신경이 쓰였지만 마지막 순서까지 잘 마치고 앙코르곡으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그분이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게 아닌가! 무슨 회한에 잠기셨는지 모르지만, 그 눈물도 웃음 못지않게 고맙고 소중했다. 다만 돌아가는 길엔 속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오시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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