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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춤을 추고 싶은가요?
작성자 김문영 작성일시 2017-09-25 13:55:47.0 조회수 177 연월 201709




당신은 어떤 춤을
추고 싶은가요?

취재 글 김문영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옛말이고, 꿈이란 현실을 외면한 몽상이라 폄하되곤 한다. 이런 시대,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영화로 인생 공부하기 아홉 번째 영화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 제이미 벨(빌리 엘리어트), 게리 루이스(재키 엘리어트) 주연의 <빌리 엘리어트>다. 소년 빌리가 탄광촌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향해 날아오르는 성장영화로 ‘꿈과 현실’이 어떻게 갈등하고 화해하는지 보여준다. 숭례문학당 영화토론모임의 한창욱 강사와 함께 좋은 영화가 주는 감동을 느껴보자.

줄거리 빌리는 치매 앓는 외할머니와 광부인 아버지(재키), 형(토니)과 함께 산다. 광부노조 파업 사태로 마을은 일촉즉발 긴장감이 돌고, 빌리는 아버지 뜻에 따라 권투도장에 다니지만 영 소질이 없다. 어느 날 권투도장에서 발레 수업이 진행될 때 흥미를 느끼고 연습에 슬쩍 낀다. 발레강사 윌킨슨 부인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런던 로열발레학교 입학 오디션 참가를 독려하며 개인교습을 시작한다. 하지만 빌리는 아버지와 형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마는데…. 화가 난 아버지 앞에서 빌리는 자기의 꿈을 춤으로 표현한다.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손꼽아 기다리던 빌리의 합격 소식에 온 가족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세월이 흐르고, 빌리가 주연을 맡은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러 재키와 토니가 서둘러 공연장을 찾는다. 빌리가 무대 위에서 도약하는 일순간 정지했던 화면은 다시 소년 빌리가 침대 위를 펄쩍펄쩍 뛰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막을 내린다.

★★★★★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으로 꼽힌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백조의 호수’는 탄광촌에서 날아오른 주인공 빌리의 가슴 벅찬 도약과 겹쳐 비극적 현실을 넘어서 비상하는 인간을 묘사한다. 빌리의 성장영화라 할 수 있지만 배경인 1984년 북동 잉글랜드 더럼 주가 “영국 역사상 가장 긴 파업으로 기록된 광부들 투쟁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놓칠 수 없다.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영국의 대처 수상이 “파업을 선도하는 노조를 ‘내부의 적’이라고 매도하면서 경찰 간 폭력 사태가 불거졌다”고 한다. 이런 정치, 사회적 배경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 그 나라와 사회, 문화, 역사와 함께 성장 사멸한다. 영화의 배경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춤을 췄어요
빌리가 형이 애지중지하는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침대 위에서 펄쩍거리는 도입부에 1960대 남성 록그룹 티렉스의 ‘코스믹 댄서 Cosmic dancer’가 흐른다. “나는 12살 때 춤을 추고 있었죠.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춤을 췄죠. 태어나자마자 춤을 췄어요. 난 죽을 때까지 춤을 췄어요.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춤을 췄어요.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이해한다는 것이 잘못된 건가요?” 개구지고 천진난만한 소년의 몸 안에 ‘춤’이 있다. 그는 12살 때부터 춤을 추었고, 아니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춤을 추었다. 밖에 나가서도 췄고, 죽을 때까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는 춤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이해했는데, 그것이 뭐 이상하고 잘못된 일인가?
몸은 말이나 글보다 훨씬 정확하고 역동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화, 문명화를 거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의 언어를 잃어버린다. 문명을 상징하는 말과 글로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지배하기 위해, 자연적인 몸의 언어를 원시적인 것이라 치부하고 억압했다. 그러면서 인류는 거침없이 문명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늘 자신에게 충실하라
영화는 빌리가 자기 몸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투병 중이던 엄마가 죽기 전에 18살 빌리에게 미리 남겨놓은 편지에 “늘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듯 말이다. 따라서 단지 가난한 탄광촌에서 자란 한 소년이 역경을 딛고 발레리노로 성공했다는 스토리로만 감상하기엔 무척 아쉬운 일이다.
영화는 빌리를 통해 사회통속적인 언어, 지배적인 남성의 언어(영화에서는 권투)가 아니라 가장 자기다운 언어를 지향한다. 그러니 몸의 언어를 아직 잃지 않은 소년 빌리가 선이 아름다운 발레에 매료된 일은 필연이라 하겠다. 빌리는 춤으로 자기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때 가장 정직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근사하다. 분노는 말이나 글로 표현되면 남을 공격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해석이 덧붙여지고 왜곡될 수 있다. 만일 자기 몸의 언어, 춤으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면 감정 해소는 물론 예술적 승화로 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빌리가 발레에 대한 열정을 춤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이 움직인다.

데비는 어디로 갔을까?
빌리가 윌킨슨 선생님의 딸 데비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다. 데비가 막대기로 담벼락을 긁으며 지나가는 장면으로 가보자. 그러다가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죽 서있는 구역을 의식 없이 지나친다. 영화는 뒤숭숭하고 복잡한 사회상을 화면 곳곳에 경찰의 모습을 배치함으로써 묘사한다. 노동자와 경찰이 대치하는 실상이 삶의 배경처럼 아무렇지 않게 깔려있다.
그리고 데비와 함께 걷던 빌리가 길 건너편으로 뛰어가면서 화면 밖으로 빠진다. 이어 경찰차가 데비 앞을 지나가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경찰차가 지나갈 때, 데비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영화는 그 장면을 한두 프레임 정도 아주 짧게 보여준다. 그 짧은 순간 데비는 어디로 갔을까? 경찰차에 납치된 것은 아닐까? 우리 삶이 어느 순간 돌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징적 이미지일까?
또한 빌리가 막 가로질러 달려가는 곳이 경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풀밭이다. 윌킨슨 선생님이 빌리에게 백조의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배경에도 경찰이 있다. 항상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마을의 불안이 일상에 스며있다. 이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위협적 요소는 아닐는지?

꼭 성공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나?
빌리가 로열발레단 무대 뒤에서 ‘가족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처럼 우아하고도 힘차게 도약하는 순간, 그 경이롭고 황홀한 자태에 모두 숨이 멎는듯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정말 현실에서 맛보고 싶은 결말이다. 아버지의 눈물겨운 희생이 충분히 보상받는 순간이리라.
하지만 반드시 ‘성공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을까? 빌리처럼 좋아하는 걸 해서 성공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탁월하지 못할 수도 있다. 비상할 수 없다면 꿈꾸지 말아야 할까? 영화는 성공의 자리에 빌리를 올려놓아 아버지의 보상 심리를 채워주고 있다. 빌리의 꿈은 그냥 빌리의 꿈인데, 아버지의 희생을 보상하는 도구처럼 쓰여야만 했을까? 삐딱해 보여도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멋진 장면이 마지막에 없었으면 어땠을까? 아무런 보상 없이 영화가 끝났다면? 그저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길을 걷는 것으로 끝났다면, 영화적 재미는 떨어져도 가장 현실적일 수 있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보상을 바라는 게 꼭 성숙하지 못한 태도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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