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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자리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시 2017-07-27 16:33:06.0 조회수 76 연월 201707




파도가 지나간 자리

취재 글 편집부

 



다발성 인지기능 장애로 일상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는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은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절망에 빠진다.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그와 함께 희비애환을 겪고 있는 가족의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의 저편
김경희 (여 50세)

7년 전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친정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병원으로 급히 모셔서 수술을 받으셨지만 이미 뇌혈관이 막혀 뇌기능을 상실하셨다. 마비된 오른쪽 신체는 재활 치료로 거동이 좀 가능해졌지만, 판단력이나 인지력은 현저하게 떨어지셨다.
아버지가 전과 달리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고집 부리셔서 참 낯설고 슬펐다. 우리 아버지가 아닌 듯 전혀 다른 사람이 되셔서 가족을 난감하게 하니, 내가 무능하다고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족들이 아버지를 어찌 대할지 몰라 할 때 20대 중반의 딸은 할아버지를 차근차근 설득하며 비위를 잘 맞췄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은 딸아이, 얼굴 한 번 안 찌푸리고 모두 감탄할 정도로 할아버지를 잘 보살폈다. 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다가도 손녀의 말은 순순히 잘 따르셨다.

아버지의 병을 얻고 제일 힘든 점이 외출해서 자꾸 쳐다보는 낯선 이의 시선을 견디는 일과 예전으로 되돌리기 힘든 아버지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다. 처음 일이 년 동안은 치료 잘하면 회복이 될 거라 믿고 열심히 매달렸다. 그러나 점점 엉뚱한 말을 하시며 아이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인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과거는 잘 기억하시는데, 최근 일은 기억 못 하시는 아버지, 요즘 어렸을 때 살았다는 대구의 넓은 집을 되찾아야 한다며 고집 부리시는데 달래느라 애를 먹는다.
사리 판단 명확하시고 자기관리가 철저하셨던 만물박사 아버지,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만 하셨다.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시던 아버지가 한 시도 눈 뗄 수 없는 어린애가 되어버리자 처음 몇 년간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으셨다. 나도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어머니도 아버지의 상태를 받아들였다. 이제 어머니는 은행 일도 스스로 처리하실 정도로 마음을 다지셨다.

어머니가 작년 위암 수술을 받을 때 잠시 요양원에 아버지를 모셨다. 첫날 아버지를 침대에 누이고 돌아설 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머니께 계속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모시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완강히 거부하시고 몸이 회복되시자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매우 걱정스럽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들이 수시로 찾아와 밑반찬을 주거나 부모님의 말벗이 되어주셔서 고맙다.

오늘도 아버지는 아침부터 7살까지 살았다는 집을 찾으러 대구에 가자고 하신다. 아버지의 기억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버지 손을 잡고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감사해요” 말하고 싶지만 입안에서만 맴돌 뿐…. 7살 기억의 저 끝에서 나오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눈물이 왈칵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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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5분 만이라도
김지훈 (남 45세)

어느 날 아버지께서 늦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거동도 불편하시고 말도 어눌하셔서 병원에 갔더니 알코올성 치매라고 했다. 칠순도 안되셨는데 치매라니 기가 차고 황당해서 눈물이 나왔지만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모실 형편이 안돼서 요양원을 알아봤는데, 다행히 근교의 깔끔한 요양원을 찾았다. 친절한 직원들이 아버지가 고집을 부려도 짜증 없이 잘 대해주셨다. 집에서 아버지는 끼니를 거르시고 술만 드시는 일이 잦았는데, 식사도 잘 챙겨 드시니 혈색도 좋아지시고 얼굴도 편안해 보여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4년쯤 됐을 때 거리도 가깝고 비용이 덜 드는 서울 도심의 요양원으로 옮겼는데, 아버지를 뵐 때마다 안색이 어두웠다. 여자 원장님이 염려 말라고 했지만 한 달 반쯤 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침대에서 떨어져 고관절이 부러지셨으니 입원시키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술 후 끙끙 앓는 아버지를 보며 무척 속상했다. 요양원의 부당한 대우가 의심스러웠지만, 제대로 따질 수 없어서 더 화가 났다. 아버지가 퇴원하시자 예전의 요양원으로 다시 아버지를 모셨다.
올해로 아버지가 병원 생활하신 지 10년째, 요즘 아버지는 부쩍 엉뚱한 말씀을 하시고 아들인 나도 못 알아보는 일이 잦으시다. 이대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의 둘째로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셨고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평생 궂은일만 하셨다. 한때는 중동까지 가셔서 일하다 오셨고 귀국해서는 구청의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다. 아버지는 손수레를 끌고 청소하셨는데, 겨울이 되면 한두 번씩 나와 남동생에게 도와달라고 참 어렵사리 부탁하셨다. 폭설이 오면 나와 남동생은 새벽에 아버지의 청소구역에 나가 같이 쓰레기를 치웠다. 누가 볼까 창피했지만,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와 청소하고 나란히 컵라면이나 짜장면을 먹던 그 시간을 지금 그리워할 줄은….

퇴직 후 무기력하게 집에서 술만 드셨던 아버지를 답답해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버지 역시 노력한 만큼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참 속상하셨겠구나 하고 공감했다. 우리가 아버지의 노고를 인정해 드리지 못해 외로우셨다고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단 5분 만이라도 기억이 돌아오셔서 날 알아보신다면 참 애쓰셨다고 위로하고 눈이라도 맞추고 싶은데, 아버지가 한없이 약해져서야 아버지를 이해하다니 죄송하다.

가족으로 치매를 겪어보니 치매 어르신을 위한 사회적 장치 마련과 시설 확충도 중요하지만 종사자의 자질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력이나 비용을 떠나 직원 교육이나, 치매 환자 대응 매뉴얼이 더 전문적이길 바란다. 비록 육체와 정신이 온전치 못하시지만 모두 한때는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의 부모님이시다. 뉴스에서 요양원의 부주의로 상해를 입은 어르신 이야기나 직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들으면 그 도심의 요양원과 아버지의 어두웠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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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후 맑음
강수현 (여 49세)

엄마를 집으로 모셔온 지 어느덧 3년, 기억력은 좀 더 흐려지신 것도 같지만, 걷기도 훨씬 좋아지시고 표정이나 말씀, 행동이 모두 나아지셨다. 잃으신 건강만큼 표정도 잃으시고 말수도 없어지셨던 엄마가 지금은 TV도 집중해 보시고 농담도 곧잘 하신다.

10여 년 전 오빠를 잃고 혼자 계셨던 엄마는 점점 세상과 단절된 당신만의 성에 스스로 가두고 사셨다. 혼자 있겠다고 고집 피우시는 엄마와 힘겨운 투쟁 끝에 우리 집에 모시게 되었지만, 이해하기 힘든 엄마의 행동들은 숨이 막히게 했고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다. 검사를 해보니 '중등도 인지장애'라고 했다. 진행을 늦추는 약을 드셨지만, 상태는 계속 나빠지셨다. 특히 중심을 자주 잃으시며 두 차례 골절상을 입고 입·퇴원을 반복하시다 아주 쓰러지셨다. 뇌경색으로 대학병원에서 한 달 동안 치료 후 재활을 위해 가까운 요양병원에 모셨다. 좋은 시설이었지만 재활은 진전이 없었고 기저귀를 자주 갈지 않아 냄새가 심했다. 가까이 사는 언니와 번갈아 방문하며 목욕과 운동도 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혈혈단신 외롭게 자란 엄마는 열아홉에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해 시장에서 장사하시며 우리 오남매를 키우셨다. 알뜰하게 모을 줄만 알고 쓸 줄은 몰랐던 엄마, 나이 차이 많은 아버지는 심성은 선하지만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내셨고,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 바빴다. 오빠와 아버지의 오랜 불화에 가슴앓이하며 쓸쓸한 중년을 보내셨을 엄마, 그러다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고, 이제 노년을 병원에서 눈치를 보며 지내신다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집에서 내가 모시겠다고 고집했다. 처음 몇 개월은 무척 힘들었다. 오전에 요양보호사가 올 때까지 내가 엄마를 챙기고 5시부터는 구순이 가까운아버지가 나의 퇴근을 기다리며 엄마를 돌보셨다. 퇴근 후 부리나케 저녁을 준비하고, 무엇보다 밤잠을 설치며 기저귀를 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아버지도 나도 지쳐갔다. 가족회의 끝에 둘째 언니가 저녁 시간을 맡고 남동생네가 김치와 밑반찬을 해오면서 한결 수월해졌다. 그리고 요령도 생겼다. 엄마를 모시면서 형제간에 우애도 더욱 돈독해졌다. 서로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마음을 표현하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먹을 거 외엔 아무 욕심도 미움도 없으신 큰 아기가 되셨다. 볼을 쓰다듬고 머리를 빗어드리며 “아이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버지도 엄마를 보며
“당신 정말 예뻐졌다!” 칭찬도 하시고 꽃도 꺾어 오시고 엄마와 화투도 재미있게 치며 놀아주신다. 한편 생각하면 치매라는 게 예쁘게 걸렸을 땐 오히려 갈등을 덜어줄 수도 있는 것 같다. 정신이 온전하시면 서로 기대하고 섭섭함도 많고 갈등도 커지지 않을까? 고비를 잘 넘기니 소소한 행복이 있다. 아버지는 같이 맛있는 것을 드실 때 “엄마랑 같이 있어서 참 좋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문득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지금 행복해?” “그럼 행복하지.” 내 인생에 가치를 더하는 순간이다. 엉뚱하지만 우리가 “엄마, 아빠 못됐지?” 슬쩍 떠보면 “아냐, 엄마 신랑이야! 아빠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데” 아버지를 감싸고, 또 시도 때도 없이 문득문득 “우리 딸 예쁘죠?” 하고 아버지한테 내 칭찬을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은 엄마를 이야기하며 웃는다. ‘엄마 이대로 오래오래 같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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