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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면 두렵지 않다
작성자 강화영 작성일시 2017-07-27 16:28:08.0 조회수 146 연월 201707




제대로 알면
두렵지 않다

홍창형 |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취재 글 강화영 / 사진 김승범
 



2016년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69만 명, 2025년에는 100만에 이르고, 2050년에는 세계 치매 인구만 1억 명을 전망한다. 치매 인구는 느는 것에 비해, 치매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지는 잘 모른다. 홍창형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를 제대로 알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기억과 함께 중요한 과거 기억이 사라지는 일
많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상태에서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나이가 들면 건망증은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건망증이 생겼다고 반드시 치매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특히 병원의 치매 검사는 인지기능검사, MRI 검사, 유전자 검사를 포함한 혈액 검사로 비용이 발생하니 내 상태가 단순한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구별해야 한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으로 뇌 기능이 손상되어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서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치매 초기 단계에서는 최근 기억을 먼저 잊어버린다. 보통 열 번 이상 반복된 경우에 치매를 검사한다고 보면 된다. 냄비,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잊어버려 열 번 태워 먹었는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집에 열 번 못 들어왔는지, 집 근처에서 길을 열 번 정도 잃었다면 검사를 받도록 한다.
좀 더 치매가 진행된 상태라면 과거의 중요한 기억도 사라진다. 나는 진료 때 주로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을 묻는다. 대통령 이름은 세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기억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은 누구죠? 그 전은요? 그 전은요?” 연속해서 역순으로 물어봤을 때 바로 맞추는 사람은 치매가 아니다. 갑자기 물어보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도 있다. 이때 “첫 번째 글자가 이 자고 마지막 글자가 박 자에요, 4대강 사업했어요, 서울시 시장이었고 청계천 관련 있습니다”라고 여러 가지 힌트를 줬는데도 대답을 못 하거나 그런 사람 들어본 적 없다고 하면 치매로 보고 검사에 들어간다.

문제행동 없는 예쁜 치매 될 수 있다
치매는 초기에 치료를 잘 받으면 사망할 때까지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치매라고 하면 대소변을 못 가리고 공격성이 심한 문제행동을 떠올린다. 이는 말기에만 나타나며 소수만 해당한다. 국내 환자 69만 명 중 60%는 초기 단계인데, 안타깝게도 치매 확진을 받고 자식에게 폐 끼친다며 자살하는 노인이 많다. 초기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해 치매를 제대로 알리는 교육이 시급하다. 초기부터 약을 잘 먹으면 치매 말기 상태까지 안 갈 수 있으니 꼭 알아두자.
설령 치매에 걸렸더라도 예쁜 치매를 유지할 수 있으면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은 현저히 줄어든다. 예쁜 치매란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기억은 잃어도, 식사를 준비해드리면 혼자서 잘 드시고, 밤에 이부자리를 펴 놓으면 잘 주무시는 등 문제행동 증상이 없는 상태다. 환청, 망상, 공격성, 수면장애, 불안증, 우울증 등 미운 치매 증상은 아주 소량의 약물로 조절할 수 있어서 예쁜 치매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며느리에게 내 보석이나 반지 지갑을 훔쳤다면서 얼굴을 할퀴고 목을 졸라 한집에서 같이 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의심증 없애주는 약을 반 알 정도 쓰면 된다. 이런 약은 비가 올 때 쓰는 우산처럼 문제행동이 있는 일정 기간에만 쓰고 증상이 사라지면 끊는다. 물론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꼭 필요할 때 소량만 사용하고,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약으로 문제행동 증상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을 환자와 보호자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 약을 쓰지 않더라도, 환자와 가족이 예쁜 치매로 함께 잘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치매를 수용하고 동반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예민, 냉소, 게으른 성격의 위험성
치매의 위험 요인으로 고혈압, 당뇨, 술, 영양 상태, 흡연, 운동 부족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4년 ‘성격이 치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1,671명의 노인을 22년에 걸쳐 추적 관찰한 결과 예민한 성격, 냉소적인 성격, 게으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3배 정도 높았다. 예민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어 뇌의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 뇌 신경세포를 녹여 버린다. 냉소적인 사람은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일종의 만성 분노를 보여 스트레스 호르몬이 만들어지며, 사회활동이 적어 치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또한, 성실함과 관련된 유전자에는 치매의 독성 물질을 없애는 성분이 있는데, 게으른 사람은 이 유전자가 없을 수 있다.
오랜 기간 형성된 성격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미소, 칭찬, 감사’를 생활화해보자. 마음을 잘 다스리는 연습으로 치매 발생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읽고 쓰는’ 뇌 운동이 중요하다
120여 가지 치매 중 발병 환자가 가장 많은 것는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 치매다. 우리 뇌는 백억 개의 뇌 신경세포가 연결돼있는데, 이 신경회로에 알츠하이머 독성 물질이 쌓이면 회로가 끊어져서 뇌 기능이 떨어지고 치매로 간다. 독성 물질은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에 가장 먼저 쌓여서 초기에는 기억력이 감퇴하고, 이후 뇌의 여러 부위로 퍼져 단어 기억 소실, 계산 능력 저하, 가면 장애(이상성격), 배설 조절력 소실 순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평소에 얼마나 두뇌 활동을 했느냐에 따라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확률이 달라진다.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의 로버트 카츠만 박사는 양로원 거주자 137명의 뇌를 사후에 해부한 결과,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정도의 독성 물질이 들어차 있었지만,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의 뇌는 독서와 토론 등 지속적인 뇌 자극 훈련으로 신경세포가 촘촘하게 연결돼있어 치매에 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치매에 걸렸더라도 문제행동 증상이 거의 없었다.
인간의 뇌는 전 생애에 걸쳐 계속해서 변화한다. 때문에 꾸준히 단련해주면 두뇌 노화를 늦추고 오히려 기능을 향상할 수 있다. 게임, 뜨개질, 영화 감상, 봉사활동 등 무엇이든 좋지만, 기본적으로 ‘읽기와 쓰기’를 추천한다. 신문, 잡지, 소설 어떤 것이든 읽으면 좋고,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중앙치매센터에서 매일 읽는 신문을 이용하는 ‘두근두근 뇌운동’ 인지훈련법을 안내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뇌 자극 훈련은 치매를 예방할 뿐 아니라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춘다.

술 담배는 멀리, 운동은 가까이
치매 치료 결과는 생활습관에 따라 다르다. 환자 중에 7년 전 치매에 걸렸는데 치매약을 먹으면서 “선생님, 저와 저희 가족은 7년 전하고 똑같아요”하는 분이 있다. 약이 잘 들어서 시간이 지나도 치매가 진행되지 않았다. 반면 치료를 해도 빠르게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나쁜 예후를 보이는 환자의 공통점은 ‘술’이다. 날마다 한두 병씩 술을 마신 경우 이른 나이에 치매가 발병하고 진행도 무척 빠르다.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는 표현처럼 기억을 못 하는 일이 생기는데, 알코올이 해마의 뇌 신경세포를 공격하는 현상이다. 수시로 공격당하는 뇌 신경세포는 빨리 파괴되기 마련이고 인지 기능 역시 떨어진다. 흡연도 마찬가지다. 담배의 성분이 혈액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혈로를 막는데 치매 발병률을 2.5배나 높인다. 게다가 치매약의 효능을 막기에 술과 담배는 하루빨리 끊어야 한다.
대신 하루에 20분씩 일주일에 3일 정도 땀이 나도록 운동해야 한다. 고령으로 관절과 뼈가 약해 격한 운동이 부담스럽다면 만보기로 5,000걸음 정도인 3km를 천천히 걷거나 이조차 어려우면 맨손 체조도 좋다. 운동을 하면 해마와 뇌세포가 건강해지며, 뇌혈관이 활발하게 순환하여 뇌세포 구석구석 노폐물을 제거하고 좋은 영양분을 전달한다.

치매와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치매에 걸렸다면 하루라도 빨리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치매에 걸린 자신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치매는 마음의 준비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된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 약이나 치료를 거부하다가 뇌 신경세포가 대부분 손상돼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병원을 찾는 분도 많다.
치매약은 살아있는 뇌 신경세포에만 효과가 있다. 진단 받은 즉시 약을 먹고 치료를 시작해야 진행 속도를 늦춰 치매 말기까지 이르지 않고 수명을 다할 수 있다. 만약 의사인 내가 치매로 진단 받는다면 치매약을 적극적으로 먹을 것이다. 치료에 매진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예쁜 치매로 살아가기 위해 영양제처럼 먹겠다는 뜻이다.
전 세계에 4천 6백만 명의 치매 환자가 있고, 3초에 1명씩 치매 환자가 늘고 있다.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제 곧 완치 약이 개발될 거로 예상한다.
환자마다 다르지만 보통 치매 진단을 받고 사망하는 데까지 평균 10년이 걸린다. 그 세월이 고통이 될 수도 있지만 환자와 가족이 치매를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조금 느리고 달라진 새로운 일상이 될 수 있다. 희망을 품고 주어진 시간을 꿋꿋이 견뎌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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