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홈회원가입고객센터사이트맵
left
center
right

회원가입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 높이 설정
  • 상단 고정
  • 폰트
  • EMBED 를 사용하니 보이는 위치가 아래에 몰려서 자바스크립으로 수정
HOME 지식센터 월간아버지
지식센터 > 월간아버지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이만수
작성자 송현영 작성일시 2010-07-20 22:19:23.0 조회수 152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역사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이만수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첫 안타 첫 홈런을 기록한 최강 포수, 한국 프로야구를 빛낸 전설.
한인 최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 삭스팀의 코치, 2005년 미국프로 야구 월드시리즈 팀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등극한 야구계의 영웅. 팬들이 원한다면 망가져도 괜찮다며 팬티만 걸친 채 경기장을 누빈 슈퍼스타.“ 야구는 곧 재미”라고 말하는 SK 와이번스 야구팀 이만수 수석 코치의 즐거운 야구 인생과 가족 사랑을 들어보았다.


취재 글 송현영(편집부) 사진 김기현(편집부)


야구스타, 집안에서도 슈퍼스타

SK팀의 홈구장, 인천문학야구장에서 만난 이만수 코치와 부인 이신화씨, 그리고 큰 아들 이하종 씨를 만났다. 지난 겨울, 그는 한 예능방송프로에 출연해 경상도 사투리로 파란만장한 그의 야구인생을 이야기하며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그 중 1990년 라이벌 해태 팀의 관중이 던진 음료깡통을 되받아 던져 경기가 중단되고 사과를 해야 했던‘대구야구장 캔 투척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당시 담임선생님과 경기장을 찾았던 큰아들 때문에 무척 미안했다고 겸연쩍어 했다. 의젓하면서도 꽃미남 외모의 하종 씨에게 그 당시 심정을 물어보았다.“ 너무 어려서‘아빠가 왜 그랬나?’하는 원망도 있었지만 곧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한테 삶의 모범이자 존경의 대상이구요. 어렸을 때부터 제게는 영웅이시지요.”평상시 남편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는 아내 이신화 씨가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선수들 사이에서도 친근하고 인자하다고 하지만 집에서도 장난도 잘 치고 재미있으세요.”하며 칭찬했다. 이 코치는 평소에 측근들에게‘이만수는 야구와 아내, 교회 밖에 모른다’고 놀림을 당할 정도로 대학시절 만난 동갑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실 남편이 한국에 나와 코치 생활을 하게 된 것은 하종이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된 일이예요. 아이들 말이라면 정말 잘 들어주거든요.”

명성보다 더 소중한 아들의 부탁
그는 2005년 미국 월드시리즈에서 화이트 삭스 팀이 88년 만에 우승을 하도록 이끌어낸 장본인으로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탄탄대로를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의 간곡한 부탁이라지만 한국행을 결정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제 생각에는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충분히 계셨고 미국의 선진야구를 배우셨으니 한국에도 전달할 기회가 된 것 같아서 아버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인데 아들의 의견을 따라주신 아버지가 존경스럽습니다. 아버지께서 미국에서도 성공하신 것을 봤기에 한국에서도 잘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하종 씨를 보니 이만수 코치는 야구 선수로서나 아버지로서나 모두 확실하게 성공한 것 같다.
TV프로에서 SK 와이번스가 우승하면 연지 곤지를 찍고 여장을 한 채 운동장 한 바퀴를 돌겠다고 덜컥 약속해버렸는데, 올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예정되고 있어 야구팬들은 다시 한 번 그의 신나는 이벤트를 기대하고 있다. 살갑게 음료수를 권하는 이 코치를 보니, 온 국민들을 웃게 만든 2007년 팬티퍼포먼스가 떠올랐다. 아내 이씨가“아휴, 처음에는 정말 많이 말렸는데 이이가 팬들과 함께 경기장을 돌 때는 가슴이 뭉클해서 그날 밤에‘당신이 최고!’라고 칭찬했어요. 이번에도 아빠가 너무 심하게 망가지는 것이 아니냐면서 아이들은 걱정하지만 저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요.”남편의 퍼포먼스가 야구팬들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내도 열심히 지지를 보낸다니, 듣고 있는 이만수 코치도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40년 몸담은 야구, 이젠 팬들을 위해 망가지는 것쯤은 두렵지 않은가보다. 앞으로 그의 퍼포먼스는 한국 프로 야구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야구스타를 뒤로하고 선택한 길

놀라운 그의 야구기록은 고교 선수시절에도 빛났지만 1982년 프로야구의 시작과 함께 활짝 꽃을 피웠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았던 이만수 코치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고, 1983년에는 최우수 선수상(MVP)을 수상했다. 또 1984년에는 타율, 타점, 홈런에서 1위를 차지해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등 타격 능력에 대해선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국야구 역사에서 아직도 홈런부문 최고의 타자로 기억되며 오늘날까지‘공격형 포수’의 대명사로 남아있을 만큼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사십이 될 때까지 현역 선수로 뛰고 싶었던 그의 희망은 구단 측과 이견을 빚었고 1997년, 16년 동안 몸담았던 팀에서 나와 도미, 1998년 미국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팀에서 코치연수 생활을 하게 된다.“ 제가 미국 가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신앙과 가족들 때문입니다. IMF사태 직후라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영어가 서툴러서 몇 달 동안 벙어리처럼 살았습니다. 그 때 마다‘큰 뜻을 품고 왔는데 가족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를 알아줄 것이다.’하고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버텼지요. 사실 가족이 없다면 그 모든 일들이 무의미합니다.”
언어, 문화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41세에 시작한 타국생활, 시합 후에 나오는 햄버거와 피자만 먹고 버텼으며 월급도 없었다. 모든 환경이 어설프고 힘들어 가방을 몇 번이나 쌓다가 풀고 샤워기를 틀어놓고 운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이 코치는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이만수다’하고 알아주어서 화려하고 이름난 내 모습이 저의 참모습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오랜 시간 혼자 있다보니 책도 읽고 많이 생각하면서 자아를 돌아보게 되었고 진짜 내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잊을 수 없고 감사한 곳입니다.”


뒤통수를 맞더라도 최선을 다해라
그중에서도‘한국의 베이브 루스’라는 그의 명성을 알고 타격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 선수에게 일대일로 개인지도를 해주었고, 그들의 성적이 오르자 팀의 코치에게 미움을 산 일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화려한 그의 경력을 의식한 흑인 코치가 자기 자리를 뺏으려는 줄 알고 심한 모멸감을 주고 텃세를 부렸다. 하지만 항상 웃으며 공손한 태도로 그 코치를 대하자 결국 그의 추천으로 2000년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 삭스 팀의 코치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낼 만큼 눈부신 활약을 했다. 14살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간씩만 잠자며 연습할 만큼 사랑한 야구, 남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 알아준다는 그의 믿음이 통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에 들어가기 전 1998년, 대구에서 대구아버지학교 1기를 수료했다. 이 코치는 아버지학교 세미나에서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꺼내놓기가 힘들었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유롭게 키운다고 했지만 26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되어서 가끔, 큰 아들에게 아버지가 했듯이 엄격하게 대하거나 화를 참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큰 아들은 가끔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안쓰럽습니다.‘ 어렸을 때 내가 네게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하고 이야기할 때마다‘아빠 이제는 괜찮아요. 그만 하세요’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미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미
안한 마음이 한국행을 결정하게 했나 봅니다.”독서광으로 알려진 그는 두 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 틈틈이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공부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최고가 되기보다는 즐겨라
그는 아들들이 아버지를 기억할 때,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던 사람으로 기억해주고 두 아들 역시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원하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교 때 만난 첫사랑 아내와는 한 번도 권태기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야구 역시 제가 중학교 때부터 40년을 했지만 권태기가 없었습니다. 열네 살 때,‘ 4시간만 자면서 10년을 내다보고 열심히 하자’그랬지요. 그래서 최고에 연연하지 않고 즐겼습니다. 어려운 적이 있었지만 야구는 제 인생의 펀(fun, 재미)이었고 아직까지도 재미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저는 야구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미국에서 성적 받아올 때‘졸업만 하면 된다. 즐겨라’그랬지요. ‘세상은 어려운 곳이 아니라 즐거운 곳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럴수록 재미있게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하고 평소에 이야기합니다.”이 코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워낙 성실하셔서 성공할 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너무 사람을 잘 믿어서 뒤통수를 맞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지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좋게 보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고 실망을 줄까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는 이만수 코치,“ 그래서 아이들에게 평소에‘진실은 언젠가 통한다. 바르게 살아라. 남을 밟고 올라간들 무엇 하냐? 남이 밟고 올라간다 하면 어깨를 내어주어도 괜찮다. 하지만 절대거짓말은 하지마라.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정직한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이렇게 당부합니다.”그저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이만수 코치를 보고 자란 아들들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아버지를 닮을 것이라 기대된다.

나는 복 받은 사람
“미국에서도 제 별명은‘한국의 베이브 루스’에서‘빅 스마일’과 ‘앰배서더 오브 삭스’로 팬들이 불러 주었습니다. 저를 인정하는 팬들의 사랑을 받으니 미국에서 9년 시간이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기쁨이 넘쳤습니다. 미국은 가족을 중요시 여기고 선수들에게 늘 좋은 점을 치켜세워주면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이 본받을 만합니다. 칭찬을 받다보면 선수 역시 창의적인 야구를 하게 되고 즐기는 경지에 이르니 팬들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야구를 만나서 아내와 두 아들을 얻었고,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 있으까요. 또 선수 출신 코치로서 제가 어렵게 터득한 것을 나눠 줄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그 어려움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하며 연신 웃었다. 그의 믿음대로 걸어간 길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그의 야구 인생이 활활 타오를 것을 기대한다.

이만수 1958년생, 대구상고를 거쳐 한양대학교 졸업. 1977, 1978년 청소년 국가대표 팀 포수, 1978년부터 1981년 국가 대표팀 타자, 1982년부터 1997년까지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팀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도미. 199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마이너리그 싱글A팀) 프로야구팀 코치연수 후 1999년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트리플 A팀인 샤롯트나이츠의 객원코치로 활동. 2000년부터 2006년 10월까지 시카고 화이트 삭스 메이저리그 팀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불펜 코치를 맡아 2005년 11월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인정 받음. 2006년 11월부터 한국 프로야구 SK와이번스 수석코치로 활약 중.

기록 1982년부터 1997년 16년간 통산 1,449 게임에 5,034타석, 625득점, 1,276안타, 252개 홈런, 861타점의 기록 보유. 올스타 게임 출전 12회(최다득표 4회), 골든글러브 수상 5회, 최고 타격상 연속 3회 수상. 홈런 타이틀 연속 3회 수상. 최고타점 타이틀 3회 수상. 한국 프로 야구 첫 번째 안타, 타점, 홈런으로 기록됨. 한국야구 역사에서 홈런부문 최고의 타자로 기록됨. 1983년 MVP. 1984년 트리플 크라운 수상.

 

목록
아버지학교소개 후원안내 지역지부장 오시는길 고객센터 사이트맵 이메일 무단 수집거부
페이스북 트위터
우 137-130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70-2 대송빌딩 6층      대표전화 02)2182-9100      Fax. 02)529-9230
Copyright © 1995-2008 (사)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All rights reserved.father@father.or.kr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cms/board/jsp/zine/read.jsp]
gConfig.imageSvr=[/father] sessionScope.user.level=[10]
servlet_path=[/board/read.action]
queryString=[id=zine&sm=060300&no=3047]
queryString=[id=zine&sm=060300&no=3047]
jsp=[/cms/board/jsp/zine/read.jsp]
CONTEXT_PATH=[]
admin_page=[false]
sessionScope.user.userid=[]

Trace

fieldErrors
Key Value

Request Attributes
Key Value
CONTEXT_PATH
javax.servlet.forward.context_path
javax.servlet.include.request_uri /cms/trace.jsp
admin_page false
struts.valueStack com.opensymphony.xwork2.util.OgnlValueStack@1f600eb
javax.servlet.forward.query_string id=zine&sm=060300&no=3047
template templateSub.jsp
struts.view_uri /cms/template/template.jsp
curYear 2010
javax.servlet.include.context_path
javax.servlet.include.servlet_path /cms/trace.jsp
IE false
javax.servlet.forward.servlet_path /board/read.action
struts.request_uri /board/read.action
javax.servlet.forward.request_uri /board/read.action

Session Attributes
Key Value
user

ValueStack Objects
Objects
fscms.board.action.ReadAction@9de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