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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 6
작성일시 2018-10-04 09:27:24.0 조회수 82

  

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 6 

 

- 아버지, 라는 가을

 

아버지 없는 첫 가을이다. 아버진 내게 가을이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 절절한 그리움으로 깨닫고 있다. 아버지 생전에는 왜 이 사실을 몰랐을까? 그리움은 내 부끄러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 염원의 그림자였다. 느끼지 못하고 알아차릴 수도 없는 그림자, 내 마음 판에 짙게 깔려 있다. 아마도 나는 이 그림자와 함께 내 남은 세월을 흐를 것이다. 늦은 가을 해질녘 강물처럼.

 

강가에 섰다. 나는 여기 여주(驪州)라는 곳에 머문 지도 벌써 팔 년이나 되었다. 특별히 여주의 남한강은 이 지역의 명소(名所). 이 강()을 이곳 사람들은 여강이라고 부른다. 여강이라는 이름이 그리 정겹다. 나직하게 여-, 이라고 부르면 강물은 소리 없이 내 곁으로 바투 다가온다. 이런 강물과 다정한 벗으로 지내고 있다니.

 

여주에 머무는 동안 나는 틈틈이 여주의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주로 강물을 따라 위쪽의 강천보와 중간쯤에 위치한 여주보, 또 아래쪽에 이포보는 견고한 강둑을 만들어 나름 특색 있게 꾸며 놓았다. 다분히 인위적인 것이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임에 어쩌랴. 아무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더구나 새롭게 발견한 강천섬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천섬에 가려면 강천보를 건너야 하는데 그 둑을 자전거를 타고 건너노라면 마음이 되우 설렌다. 이윽고 강천섬에 이르면 하늘이 내려앉은 강물에서 지극한 평안이 스며든다. 강물은 그리 높지 않은 아담한 산을 품고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강물을 물끄러미 보노라면 정말이지 어머니 가슴 같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쉬이 자리를 뜰 수 없는 것이다.

 

이 저녁 가을 강가에서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일생은 아버지도 모르는 가치를 지녔다. 섣부르게 아버지의 일생을 평하자면 아버지의 삶은 한 마디로 근면과 절제의 삶이었다. 하긴 이라는 시대의 고약한 허물을 떨쳐 버릴 순 없었어도 아버지는 그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지금에 와서 못내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기꺼운 마음으로 아버지, 술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못해 술을 따라 드리긴 하였었다. 나는 아예 술을 배우지 않았고 신앙적인 윤리를 넘어서 금기(禁忌)처럼 여겼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아침은 찬 이슬에 늘 젖어 있었다. 먼동이 트기 훨씬 전 새벽부터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섰다. 아침 이슬이 얼마나 차가웠으랴. 논둑이며 밭둑이며 쇠꼴 한 짐 베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방으로 갈라진 논둑길을 걸어 논배미 곳곳에 물고를 매만지고 돌아설 때면 잠방이가 이슬에 푹 젖어 허벅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윽고 마당가에 쇠꼴 지게를 작대기를 세워 바쳐놓고 이마에 성근 땀을 훔쳤으리라. 거친 노동에 지쳤어도 음식도 그리 많이 드시지 않았다. 한 숟가락 더 먹으면 될 것도 꼭 남기곤 하였다. 마지못해 밥 한술 억지로 들지 않으시던 아버지셨다. 투철한 절제력이었다. , 한 가지 더 아버지의 겸손은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당신이 전혀 배움이 없는 탓도 있었겠지만 내 기억 속에 오만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아버지를 반기던 흰둥이 진돗개는 무척 영리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먹이를 주어도 한 사흘 먹지 않더란다. 신통하기도 하여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할아버지는 이제 안 오신다. 서운하겠지만 그만 너도 밥 먹어라라고 했더니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 녀석은 지금도 아버지의 큰 아들인 나를 몇 달 만에 마주해도 짖지 않고 꼬리를 치며 두 발을 들고 여간 반가워하는 게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가 멍에를 씌운 어미 소의 고삐를 잡고 쟁기질을 하던 모습이다. 또 가을날 볏단을 지게에 지고 논둑길을 걸어오시던 장면이다. 아버지는 그 일을 사명처럼 여겼다. , 아버지의 건강한 그 모습을, 꿈속에서라도 한번 뵙고 싶다. 이렇듯 아버지는 나에게 참 넉넉한 가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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