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홈회원가입고객센터사이트맵English
전체 980px
left - 204px
center - width:460px;margin-left:10px;
right - width:296px;margin-left:10px

회원가입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커뮤니티

HOME 커뮤니티 상임이사
커뮤니티 > 상임이사
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 · 1
작성일시 2018-03-06 12:46:27.0 조회수 253

 

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 · 1


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이었다. 
이 말없는 사랑이 아버지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으뜸 이유일 거라는, 내 생각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표현하지 않으니 드러날 리 없고 드러나지 않으니 다가올 리 없다. 아,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래서 애달프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지 않은 게 더 많다. 또렷하지 않아도 내 안에 깊숙이 스며있기에 더욱 사무치는 듯하다.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신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천연한 사진을 보노라면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어머니께 저녁마다 전화를 드리면 내 심중을 알아 차리기라도 하신 듯, ‘내 걱정 말라’는 얘기뿐이다. 

입대할 때였다. 읍(邑)에까지 따라오신 아버지는 내가 직행버스에 올라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손사래 치고는 무어라 하실 말씀도 있을 법한데 그냥 골목으로 총총히 사라지고 말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진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그 마음을 나는 비로소 두 아들이 입대할 때 깨달았다. 나야 신식 교육을 받았으니 따뜻이 안아주고 연병장에서 넙죽 큰절하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아마 나보다 더 크게 우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다. 부상을 당하여 생사의 고비도 두어 차례 넘겼다. 그 모질고 아픈 기억이 입대하는 아들에게서 되살아난 지도 모른다.

당시 논산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마쳤어도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들을 만나러 왔다가 배출되는 훈련병 대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되돌아오셨다고 한다. 고향집에서 거기까지 버스로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혹시나 먼발치에서라도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더라면, 그 간곡한 바람을 왜 모를까. 짐작하는 바 크다. 하지만 찐한 이 이야기도 아버지는 직접 들려주지 않았다. 제대하고 한참을 지나서야 우연히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훈련을 마치고 후방에 자리한 자대에 배치되었다. 나는 신병으로 부대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 날 소대장이 찾더니 서둘러 복장을 갖추고 따라 오라고 하였다. 소대장은 나를 데리고 부대 앞 다방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 거기 남루한 차림의 내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어떻게 내가 여기에 온 줄 알았을까? 나중에 알았지만 부산에 친척 분이 살고 있어서 손쉽게 알게 된 듯하였다. 내친 김에 아버지는 아들을 보러 나섰고 면회시간도 아닌 그 저녁에 위병소에서 아들을 찾았던 것이다. 자상한 소대장은 신병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크나큰 배려를 해 주었다. 그 때도 별 말씀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나를 덥석 안아주고 고생이 많지, 따뜻한 위로라도 해 줄줄 알았다. 그저 몸성히 지내고 상관 말 잘 들어라, 라는 정도였다.

나는 여러모로 아버지를 닮았다. 드러난 외모 가운데 앞이마며 정수리언저리까지 머리숱이 없으니 이런 대머리는 차치하더라도 유달리 긴 손톱과 겨울이면 발바닥이 갈라져 때마다 발바닥을 깎아내던 아버지의 굳은 살 박힌 발바닥까지 닮았다. 이 ‘닮음’은 유전이라는 말보다 운명의 생태적 틀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이렇게 말없이 불쑥불쑥 당신 따뜻한 속내를 드러내는 애틋한 성품은 아버지를 닮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이렇게 아버지를 추억하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더듬는 까닭이 있다. 아버지를 여의고 후회스럽기 한이 없지만 오롯한 기억이 날 때마다 묵은 숙제를 하듯 정리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안과 밖 약한 내 모습을 진즉 알고 있기에 한발 앞선 내딛음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표현해야 사랑이다. 이런 주제를 명징하게 일러주는 명시(名詩)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아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 오스카 햄머스타인 ‘사랑은’


내게 남은 날을 이런 일에 더욱 힘쓸 참이다. 아버지처럼 사랑하되 나아가 표현하며 살겠다는 다짐이다. 다시금 고백하거니와 아버지 사랑은 따뜻한 침묵이었다. 바로 그 몸이 사랑이었으니까 …. 

아, 아버지! 그립다.

 

목록
아버지학교소개 후원안내 지역지부장 오시는길 고객센터 사이트맵 이메일 무단 수집거부
페이스북 트위터
우 06752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27길 7-11 6층(양재동 70-2 대송빌딩 4층)      대표전화 02)2182-9100      Fax. 02)529-9230
Copyright © 1995-2008 (사)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All rights reserved.father@father.or.kr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cms/board/jsp/column/read.jsp]
gConfig.imageSvr=[] sessionScope.user.level=[10]
servlet_path=[/board/read.action]
queryString=[id=column&category=128&no=386&sm=050500]
queryString=[id=column&category=128&no=386&sm=050500;jsessionid=6099CA6E2E40281CF1CECCC0E5379ECB]
[%2Fboard%2Fread.action%3Fid%3Dcolumn%26category%3D128%26no%3D386%26sm%3D050500]
jsp=[/cms/board/jsp/column/read.jsp]
CONTEXT_PATH=[]
admin_page=[false]
sessionScope.user.userid=[]

T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