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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상
몹시 더운 오후 막 퇴근 하려는 무렵 어느 중년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이주성 원장님이시죠.” 개업 초기 간호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그 당시 25세의 처녀였던 분으로 일본에서 일시 귀국해 전화를 걸었단다.
아들은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고 남편과 재미있게 살고 있다고 한다.
1년 정도 근무하다가 결혼한다며 사직한 팝송을 좋아하던 아가씨였다.
환자도 없던 개업 초기에 항상 이어폰을 끼고 팝송을 들으며 노랫말의 의미를 나에게 설명해 주던 발랄한 아가씨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동안 여러 명의 간호사가 우리 병원에서 근무했다.
대부분 젊은 여자 간호사들은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게 되면 그만 두었고,
결혼을 한 여자 간호사는 보통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병원을 떠났다.
병원을 사직하고 수녀가 되기도 했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목회를 하는 친구도 있고,
음악을 전공해 찬양 사역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개업 초 5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는 어느 간호사 가족 모두는 얼마 전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갔다.
이렇게 많은 간호사가 근무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12년 전에 27살 되는 남자가 취업을 위해 병원을 찾아왔다.
한 달 후에 아내는 출산예정인데 일하던 병원이 부도가 나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그는 우리 병원에서 가장 힘들고 바쁜 시기를 함께 보냈다.
우리 병원에 취업 후 한 달 만에 출산한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고, 후에 출산한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10년 동안 섭섭한 일도 많았을 텐데 항상 감사하고 늘 기뻐하는 모습은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친구에게 나는 병원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한 것 같다.
어느 날 그는 병원을 떠났다.
편지를 보내왔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상세히 기록한 10년의 시간들을 마치 영사기를 돌리듯 써내려갔다.
소질도 없는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애쓰신 일,
눈이 많이 내린 날 병원 문을 닫고 산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온 기억,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삶을 나눈 일, 환자 때문에 겪었던 어려운 일, 병원에서 강아지를 키우던 일,
병원 식구들과 회식했던 일들 소상히 풀어놨다.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도시 빈민으로서 산동네에서 지내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이었다.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그 당시 우울한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집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시장에 가서 생선 머리나 내장을 얻어다가 끓여 주었다. 방학 때는 매일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캐리(진도개 이름)와 함께 올라갔다.
어느 날부터 캐리는 피부병이 생겨 털이 다 빠지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게 되었다.
나는 수의사에게 물어보고 백과사전을 뒤적여 피부병 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먹을 것을 마련해 병세를 고치려고 애써보았으나 차도는 없었다.
갑자기 캐리는 집을 떠났다.
누군가가 그 볼품없는 개를 가져갈 리 만무했으므로
짐작해보건대 캐리가 나에게 부담감을 안겨 주지 않기 위해서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다.
남자 간호사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병원의 수입이 줄어드는 상태에서 본인이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떠난 것이리라.
내가 쉽게 병원을 정리하고 은퇴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본다.
내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챘을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가족과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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