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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디자인하는 선택
작성자
정현철
작성일시
2019-08-23 16:28:58.0
조회수
21

삶을 디자인하는 선택오인숙님의 책을 읽고서

정현철 집사

 

 

우리의 인생이 순간의 선택들로 이어져 있다는 것에 둔감합니다.

내 삶의 패턴이 내 생각, 내 감정, 내 행동에 대한 선택을 결과이며 앞으로의 선택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내 삶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삶은 비극으로 끝날 것입니다.

운명은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운명을 바꿀 선택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의 남겨진 산택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지혜와 평강이 있기를

오인숙

 

누구로 살아갈 것인가?

 

사람의 자아 정체인 를 아는 것은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를 아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로 살아갈 석인가?’의 선택이 자신에게 있음을 방관하거나 의심합니다.

자신을 환경이나 운명에 끌려다니는 사람으로 방치하기도 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내 삶을 남에게 귀속시켜 를 잃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모세의 찾기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따르는 홍해를 가르는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2. 빈 그물을 내려놓을 때

 

실패한 어부들이 좌절한 그 자리에 예기치 못한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실패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실패로 좌절하고 있을 때 모두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그 때 그분은 잠잠히 실패한 어부들 곁에 그리고 실패한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시몬은 그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누가복음 5:5)

 

스스로 어부로서는 자부했기에 실패가 쓰디쓰기만 했던 그 어부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실패의 빈 그물질을 계속할 것인가?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을 것인가?

그는 씀을 따라 갚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방향성을 잃고 흔들리는 갈대 같은 실패의 삶을 살던 시몬이 든든한 반석 같은 존재의 베드로도 선택받은 것은 무엇 대문이었을까요?

완벽한 기술과 경험을 가졌기 때문도 그가 성공했기 때문도 아니잖습니까?

오히려 실패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해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할 줄 모르니까요

자신의 나함을 모르는 사람은 그 삶의 배에 동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채울 수 없는 물동이

 

수가성의 여인은 그 우물가에서 자신의 갈급한 삶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로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목마른 삶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 앞에서 그녀의 사생활은 발가벗겨지듯 드러났지요.

자신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며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토록 목마르게 했던 갈증과 모호한 결핍감과 갈망과 좌절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가 인간의 영혼 속에 새겨둔 영원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그 갈증은 오직 생수이신 예수 그리소도만이 해갈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직감하였습니다.

 

4. 보는 대로 그리는 삶

 

여리고 성을 눈앞에 두고 정탐꾼 두 사람에게는 스스로 보기에도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관점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관점입니다.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실상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바라보는 관점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민수기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5. 떨리는 손

 

우리도 살면서 육체의 병으로 긴 세월 고통당하기도 하고 거절당한 마음의 병으로 자신을 가두고 살기도 합니다.

거절당하는 것이 십이 년 동안 앓는 육체의 병보다 더 무서워서 누구에게든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고 움츠릴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나 자신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자신까지도 거절하며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와 남을 학대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있지요.

자신을 방치하고 미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가할지도 모릅니다.

아마 혈루병 여인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들과 부딪쳐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들로부터 어떤 거절을 당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과 수치심이 그녀를 자꾸 주저앉혔습니다.

그녀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거절되고 외면당하고 가치 없는 버려진 인생을 살 것인가?

거절과 수치를 당하더라도 사람들과 부딪쳐볼 것인가?

 

6. 눈물의 고백

 

베드로와 유다의 눈물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가 만약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 죄책감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편없고 쓸모없고 비겁한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비난하게 하고 책망을 할 것입니다.

침울하고 자포자기 하게도 하겠지요.

자신의 행복을 절대 용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기에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베드로의 첫 번째 고백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고백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세 번째 고백은 죄사함을 믿는 고백이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회개의 눈물을 흘려보지 않는 사람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베드로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는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7, 사랑의 기억

 

우리가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한다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그에게 잊혀져서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그의 기억 속에 다른 것이 가득차서 내 존재조차 잊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질투하기까지 내가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을 두렵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잊혀지는 것, 그분의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을 우리가 잊을까 두려워하셨습니다.

그래서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라.”

 

8. 장님이 된 태양의 사람

 

삼손의 이름에는 태양의 사람이란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는 태양의 빛으로 살도록 선택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함께 자신의 민족을 절망의 어둠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는 선택받은 자였지만 사명보다 쾌락을 선택했고 그 대가는 참혹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삼손의 머리카락 보다 아니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인생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주어진 오늘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스물네 시간입니다.

주어진 삶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입니다.

 

9. 괴로운 여인

 

언제까지 울고만 앉아 있을 갓인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릴 수 없다면 또 다른 선택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포기하기에는 그녀의 남은 인생도 소중했습니다.

나오미는 두 번째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오미의 며느리 중 롯은 어머니를 따라가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롯의 선택은 어머니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노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한 나오미에게 롯의 선택은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슬픔의 고통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지만 아직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무언가가 있고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약속의 땅에 함께 갈 사람들이 잠잠히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상실의 회복을 위해 다시 일어서기를 선택한다면 새롭게 예비된 삶으로 인도함을 받은 나오미의 축복이 기다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자신은 소중합니다.

무엇보다 슬픔과 분노로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 불뱀에 물린 사람들

 

우리 역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핍을 채우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고 행복이라면 과연 채워질까요?

결핍감의 구멍 난 주머니를 꿰맬 특수바늘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란 것이 없어지기 전에는 특수바늘은 효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결핍은 채우느냐 채우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어디에 우리의 가치를 두고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이미 가장 중요한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아닌가요?

 

11. 개가 된 여인

 

개 취급을 받는 순간 그녀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버리는 산택을 했습니다.

사랑을 위해 개가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주여, 옳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자존심 같은 것은 버리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겠다는 그녀의 선택은 예수님이 주신 자존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시험에 통과하자마자 그녀의 땅을 무가치하게 하려했던 귀신이 멀리 떠났습니다.

 

12. 나무로 올라간 사내

 

키가 작은 사람은 자신을 감추려고 하자 않았습니다.

키 큰 방해자들 앞에서 방어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해 버리라고 부추키는 검은 인물을 팔꿈치로 밀쳐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열등감에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키고 작고 나쁜 세리다.

 

그렇지만 못할 것은 없지

그 사내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낼 용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돌무화과 나무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혹시 우리가 나무에 오르는 그를 보고 체신없다고 한다면 우리도 곁에 아직 열등감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13. 가슴속의 불덩어리

 

디나가 세겜에서 강간을 당한 후에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함으로 세겜과 그 성의 사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믿음의 용사로 우리의 성을 지키려면 우리도 훈련을 받아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감정이 훈련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분노와 같이 위험한 감정은 감정을 더디하는 법이나 다스리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분노 인식하기, 자제하기, 담담하게 표현하기, 원인 살펴보기, 용서하고 잊어버리기 등을 말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한계를 깨닫고 있으니까요.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아무 때나, 아무 사람에게나, 어느 곳에서나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처럼 주변의 사람을 상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분노는 늘. ‘나는 피해자이고 너는 가해자라고 생각하는데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상대 쪽에서 보면 우리가 가해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14. 동굴 속에 갇힌 정욕

 

무서운 탐욕과 정욕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는가?’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 때 해결되는 게 아닐까요?

삶의 목적이나 뚜렷한 소명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탐욕이나 쾌락에 중독되기 쉽습니다.

 

롯이 스스로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선택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아브라함의 산택을 주관하셨고 그는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곳에서 처음으로 한 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성공은 자신의 선택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에게 받은 삶의 목적과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15. 절벽으로 떨어진 마음

 

그들을 낙심케 했던 것은 세상적인 기대와 열정과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거였습니다.

성공에 눈이 가려졌던 그들은 메시야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거지요.

성공에 도움을 될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고만 알고 있었던 겁니다.

동행자는 그들에게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의 비밀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들의 눈이 밝아지자 동행자가 예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달랐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낙심이 영광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6. 나귀에게 당한 망신

 

만약 우리가 길 아닌 험한 곳을 가게도 되고 담장에 내 발을 짓이겨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될 때 말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채찍질을 해대고 싶을 때 탐욕에 장님이 된 내 눈의 책임을 충직했던 사람들에게 돌리고 싶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내가 가고 있는 길을 막아서는 것은 아닌지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기 원하시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탐욕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남의 소유와 내 것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미덕은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는 풍족한 마음에 탐욕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지요.

탐욕을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나귀의 등에 올라타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나귀가 아니더라도 당신의 애완견이 어느 날 입을 열어 당신의 탐욕을 책망하는 망신은 당하지 않기를.

 

17.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 있느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붙들고 기뻐해도 좋을 시간들을 염려로 망치고 있는 것이지요.

삶은 동전의 양면같이 두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면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던진 동전의 한 면이 염려할 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몸을 움직여 다시 던져야 합니다.

 

염려는 행동하기 전에 생기는 마음의 현상이기 때문이지요.

움직이지 않고 염려만 하고 있으면 염려는 새끼를 칩니다.

열려한 나쁜 면이 나올까봐 염려가 되십니까?

벌떡 일어나 다시, 또 다시 던지십시오.

움직이지 않고 하는 좋지 않은 생각을 염려는 좋아하고 움직이는 결단과 추진력을 염려는 싫어합니다.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18. 사탄의 비밀 병기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불행을 초래한 왕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선택을 무시했습니다.

생각한 후 감정과 행동을 선택하는 신중성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선택할 시간을 갖기보다 행동을 선택하는 데 빨랐습니다.

충동은 행동을 절제하지 않고 폭발해버리도록 자극했습니다.

사울 왕은 충동의 선동에 끌려 다녔습니다.

 

충동은 사탄의 비빌 병기입니다.

충동에 의한 선택을 하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30분만, 20분만, ... 5분 만이라도.

충동은 강력하고 조급하게 우리를 몰아붙이니까요.

, 우리는 사탄의 비밀 병기에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

 

19. 새끼 빼앗긴 암곰 같은 사람

 

르호보암 왕은 백성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찾아온 백성에게 늙은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젊은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왕은 백성을 짐승같이 다스리겠다고 했습니다.

약한 자들을 밟으면 밟힌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마음이 짓밟힌 백성은 격동했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왕과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는 관계라고 선포했습니다.

 

열두 지파 중 열 지파가 르호보암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나라는 찢어졌고 백성은 그를 떠났습니다.

미련한 왕의 선택이 빚은 참혹한 결과였지요.

인생길을 가면서 새끼 빼앗긴 암곰 같은 사람은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새끼 빼앗긴 암곰 같은 사람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우리의 관계에 축복이 있기를.

 

20. 갑옷을 입은 자의 선택

 

순종은 자신의 교만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는 교만의 갑옷을 벗고 요단강에 몸을 담갔습니다.

믿음과 순종이 겸손의 증거로 나타났습니다.

썩어가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부드럽고 깨끗해졌습니다.

거듭 난 그는 엘리사 앞에 돌아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나아만의 영적 교만이 떠나갔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교만은 없을까요?

교만은 놀랍게도 겸손의 갑옷 뒤에도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겸손까지도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을요.

 

21. 가면 속의 얼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압살롬의 최후는?

가식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그의 아름다웠던 몸은 구덩이에 던져졌고 그 위에는 돌무더기가 쌓였습니다.

가식으로 얻는 성공과 명예와 자랑이 펴놓은 구덩이에 자신을 던져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가식이 진정한 자아를 잃게 한다는 것을, 가식이 진정한 자신의 아름다움을 돌무덤에 묻을 수 있다는 것을 압살롬이 알았다면 가식의 내면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압살롬을 애도하기 전에 가식의 내면을 쓴 우리 자신을 먼저 애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22. 서로 얽힌 덩굴같이

 

칡덩굴처럼 왼쪽으로만 오르는 것이 옳다는 사람과 등나무 넝쿨처럼 오른 쪽으로만 오르는 것이 옳다는 사람이 서로 나와 같아지고 나처럼 살라고 하는 데서 갈등이 일어난다면 창조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에게는 서로 획일성을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연역한 자를 너희가 받으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놓느라 쏟는 에너지를 걷어버리고 이제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살롬이 넘치도록

23. 소리가 이긴 그 뜰

 

지금 우리도 빌라도의 뜰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무리에 휩쓸려 거기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빌라도가 되어 무리의 소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빌라도의 뜰에서 손을 씻고 있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신앙의 본질을 십자기에 못 박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 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리와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리는 오늘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뜰 앞에 설 것입니다.

그 곳에서 우리의 선택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시간이 오기 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선택의 표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그곳에 부끄러운 선택이 새겨져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24. 하나님의 제비뽑기

 

다윗은 답답할 때마다 우림과 둠밈 앞에 섰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음모 앞에서 거처를 떠나 엔게디로 피할 것인지를 물을 때도 아멜렉에게 침략당해 백성의 자녀들이 포로로 잡혀간 절망과 좌절의 위급한 상황에서도 추격하면 자녀들을 찾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를 하나님에게 물었지요.

하나님은 기꺼이 대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길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다윗은 믿었고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의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선택은 우리가 한다 해도 일을 작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선택의 완성은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것이 선택하는 자의 겸손이 아닐까요?

 

 

우리에게 축복이 있기를

사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의미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나에게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고 상처도 있겠지만 그런 선택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나약

함을 알아가기도 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선택의 지혜도 배우는 게 아닐까요?

 

우리의 선택이 복되고 지혜로우려면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의 인도자 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선택으로 더욱 복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로마서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