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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칼럼 (따끔합니다)
작성자
이진영
작성일시
2018-10-24 11:04:26.0
조회수
499

따끔합니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용에 몰입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벼락 치듯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얼핏 정신이 수습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분명 우리 집이었다.

 

 불이 났든지 무슨 큰일이 난 게 틀림없었다. 허겁지겁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웬 젊은 남자가 민소매 바람으로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날 보더니 대뜸 하는 말이 왜 복숭아씨를 아래로 던졌느냐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누군가 복숭아를 먹고 나서 씨를 아파트 아래로 던졌는데 급히 문을 닫는 걸 보니 우리 집 층이라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히고 놀라서 우리는 복숭아를 먹지도 않았다고 하니 그럼 아래층인가 하며 다시 씩씩거리며 내려가는 것이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다시 생각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봉변을 당한 것인데 제대로 항변도 못 하고 그 작자를 보낸 게 되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인간은 보이지를 않는데 내가 쫓아내려 가려 하니 더 봉변당한다고 아내가 말렸다. 그러고 보니 민소매 어깨 위로 문신도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하도 험하여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심장이 되었지만 이젠 방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봉변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주사 맞기는 다 싫어한다. 그 통증이 개인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픔을 덜 느끼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주사를 놓기 전에 간호사가 엉덩이를 톡톡 치거나 주사 놓는 부위의 옆 피부를 꼬집기도 한다. 주의를 분산시켜 통증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이다.

주사 맞기 전 긴장해 몸에 힘을 꽉 주면 주삿바늘이 잘 안 들어갈뿐더러 통증도 심해질 수 있으므로 이러한 방법은 꽤 유용하다.

 

 더 좋은 방법은 따끔합니다라고 미리 말해주는 것이다. 통증은 무엇보다 환자의 태도가 중요한데 이를 직접 위로해 주고 배려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보다 통증이 훨씬 덜하다.

 

 우리는 지금 분노 조절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 천박한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 갈등 구조가 점점 심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도 이런 배려의 한 마디나마 있으면 좋겠다. 따끔하지만 따끔합니다라고 말하면 조금 덜 따끔할 것 같고 주사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이런 처연한 기대나마 하는 것인데 글쎄 그렇게 되려나 모르겠다. 이미 이 사회는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닐까?